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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커피 Jul 14. 2023

JS는 말했다

쓰고 보니 사이다 혹은 고구마

얼마전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책을 읽었다. 드라마 보듯 스르륵 넘어가는 책장과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에 포옥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작은 동네의 편의점이 배경이다. 손님이 많지도, 트랜디한 상품이 많지도 않은 편의점. 이 편의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담담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책은 흘러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심야식당]이 떠오르기도 했다. 


암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지혜는 편의점을 드나드는 손님들 중 진상고객을 JS라고 불렀다. 편의점 직원이 하고 있는 일들에서 뭐하나 꼬투리 잡을 건 없는지 살펴보는 JS. 그리고 JS가 방문할 시간이 되면 시계를 보며 초조해지는 직원. 


나는 이 장면에서 학교에서의 내 모습이 보였다.


JS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 오늘도 전전긍긍하는 내가.



나의 JS들은 어디서 배워오기라도 한 듯 비슷한 말들을 한다. 


오늘은 나의 JS들의 이 주옥같은 어록들을 한번 적어보려 한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예민하니까 00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아이는 입맛이 예민해서 김치 못먹으니까 괜히 한번 먹으라고 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는 예민해서 밤에 선잠을 자니까 아침잠이 많아요. 지각 자주 하니까 참고하세요. 그렇다고 우리 아기 지각한다고 야단치실 건 아니죠?


우리 아이는 예민해서 짝이 말걸거나 딴짓하면 그대로 따라해버립니다. 짝이 말 걸거나 딴짓하지 않는 얌전한 아이로 바꿔주세요.


우리 아이는 예민해서 선생님 목소리가 크면 무섭대요. 목소리 크게 안내시면 안되나요?


우리 아이는 예민해서 글씨를 많이 쓰는 걸 싫어해요. 글씨를 쓰는 활동을 자제해주세요.


우리 아이는 점수에 예민합니다. 그러니까 받아쓰기 안하면 안되나요?


우리 아이는 예민해서 다른 친구들 앞에서 야단 들으면 밤에 경기를 해요. 그러니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할말 있으면 해주세요. 그렇다고 선생님과 단 둘이 이야기하는 건 피해주세요. 선생님과 둘만 있게 되면 안그래도 예민한 아이인데 더 예민해져서 힘들어하니까요.



선생님, 우리 아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우리 아이가 아무 이유없이 친구 머리를 때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우리 아이 말을 들어보셨어요?


우리 아이가 아무 이유없이 선생님한테 그렇게 심한 욕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가 우리 아이랑 이야기 나눠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우리 아이가 바닥에 누워 뒹굴며 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죠. 물어보셨어요?


우리 아이가 공부시간에 계속 돌아다닌 건 아마 이유가 있을거에요. 그간의 우리 아이 특성을 생각해보면, 공부시간 내용이 너무 쉬워서 지루했을 것 같네요. 제가 아이 이야기 들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우리 아이가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른 건 이유가 있겠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나요?



선생님, 결혼 안 하셨죠? 아이 안 키워보셨죠?


내가 이 말 안들으려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졌는지 모른다.



선생님, 학교에서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 거죠?



도대체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쳤길래 우리 아이가 친구를 때린거죠?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 교육을 안하는 바람에 집에서 내내 유튜브나 보려고 하네요.


학교에서 뭘 보고 배우길래 우리 아이가 욕을 한다는 거죠?


우리 아이가 학원가기를 싫어하네요. 학원은 가야하는 거라고 좀 말해주세요. 그리고 학원 숙제가 많아 힘들어하니 학교숙제는 내지말아주세요.


학교에서 급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우리 아이가 집에서도 채소를 먹으려 하지 않네요. 


아이가 요즘 버릇이 없어요. 어른에게 예의 있게 행동해야 하는 거라고 교육하셨나요?



선생님, 우리 아이만 미워하시는 거 아닌가요?



우리 아이가 집중력이 낮다니. 선생님, 우리 아이만 안좋게 보시는거 아닌가요?


우리 아이가 시험점수가 낮은데도 계속 단원평가를 치시네요. 우리 아이 스트레스받는 건 생각 안하세요?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신거죠?


우리 아이가 이유없이 다른 아이를 때리다니요.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만 부정적으로 보시는거 아닌가요?


우리 아이가 복도에서 뛰었다고 야단치셨다구요. 아니, 다른 아이들도 뛰는데 우리 아이만 야단치신거 아니에요?

우리 아이가 수업을 방해한다구요? 선생님이 우리 아이만 색안경끼고 보시는 건 아니구요?



놀랍게도 이건 내가 직접 들은 것, 목격한 것이다. 상상으로 쓴 것은 1도 없다는 것. 


쓰고 보니 더 놀랍다.


JS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한테 제발 함부로 하지마라.


제발.




그리고.


아이들은 혼나면서 크는거다.


그걸 알려주는 게 어른이고.


제발 어른답게 행동하자. 


잘 키워서 이나라의 기둥이 될 아이들이지 않니?




자, 이번 한주 잘 버텼으니 다음 한주도 잘 버텨보자.


이렇게 버티는 마음으로 교단에 설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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