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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커피 Nov 15.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담임이었으니까

유난히 눈맞춤이 안되던 아이가 있었다.


내가 칭찬을 해도 웃거나 맞장구 치는 일이 없었다.


매일 흘려적던 글자를 반듯하게 적어온 어느 날,

바른 글씨가 너무 예쁘다고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눈길한번 안주던 아이.


내 칭찬은 허공에 맴돌았고 그 아이는 빼앗듯 공책을 채가기 바빴다.


뻘쭘한 나를 살피는 40개의 눈동자들을 마주치며 싱긋 웃어 넘겼다.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불러 예의바른 행동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짝의 책상을 반이나 차지하고 있는 그 아이를 보면서

어떤 말을 할지 한참이나 말을 골랐다.


결국 내가 꺼낸 말은 그 아이가 아닌

불편해하는 짝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말이었다.


짝이 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할지 또 다시 말을 고르고 골랐다.


3시간이나 넘게 걸려 고른 말은

"의자를 책상 가운데에 두는게 좋겠다"였다.


남은 두 시간도 그 아이는 짝의 책상을 넘어 생활했다.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짝이 고마울 뿐이었다.


남은 2시간 동안 또 다시 말을 고르고 골랐지만

말을 고르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짝에게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말뿐이었다.


그 아이가 친구와 다툰 어느 날,


흥분한 둘에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야기 나누자고 달래던 나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 아이는 친구를 향해 끊임없이 삿대질을 하며 친구의 잘못을 나열했다.


그 아이와 다툰 친구는 이름을 잠시 잃어버린 채 "이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내가 두 사람을 중재하는 일을 그 아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 후에야 겨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현명하게 화해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가 교실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지적을 하는 말을 하려고 마음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면 그 아이 엄마가 내뱉은 칼날같은 말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그럴 때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재빨리 그 아이와 마주친 시선을 피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내뱉은 한마디는 나의 교직생활을 위협했고 나의 교육관은 부정당해야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동정의 시선과 위로의 한마디가 다였다.


그 아이그 아이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내 교직을 걸어야했다.


내 교직의 무게가 이토록 가볍다는 것을 알았다.


이토록 가벼운 나의 교직이지만 나에겐 생계가 달린 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옛말이 틀린 적이 없다.


우리 선조들의 혜안에 무릎을 탁 친다.


나는 그 해 포도청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교실에서의 내 모습은 점점 경직되어 갔다.


내가 내뱉은 어떤 말이, 내가 보내는 어떤 시선이 나의 교직을 위협할지 모른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누군가가 보고 듣고 있는지 모른다.


정선된 단어, 친절한 말투, 생긋 웃는 표정을 종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 때의 나는 그 아이그 아이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 아이는 모든 상황에서 배려받았고, 나는 어떤 잘못도 그 아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나의 경직된 생활은 스트레스로 돌아왔고,


내 스트레스는 다양한 약들과 맞바꾸었다.


그 아이가 결석한 어느 날, 교실에 들어서는 내 발걸음이 너무도 가벼웠다.


예전처럼 농담도 한다.


아이들과 깔깔거리고 장난도 친다.


그래. 아이들과 부대끼는 이 즐거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교직을 지키느라 입고 있던 몇 겹의 갑옷을 그 날만큼은 벗어두었다.


그래, 이게 학교갈 맛인데.

그래, 이게 수업하는 맛인데.

그래, 이게 담임하는 맛인데.


그 맛들을 애써 다 잊고 살았다.


내일이면 다시 입게 될 갑옷이지만 참 홀가분했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학기말이 다가오자 나는 그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은 채, 교실 속 온실을 만들어주었다.


애써 밀려오는 죄책감을 마음 한켠에 접어두었다.


그래, 내년에는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더 많이 성장하겠지.


나의 책임을 다른 동료에게 미뤘다.


그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 더해져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나도 어쩌면 이전 담임선생님이 넘긴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았는지 모른다.


이렇게 미뤄진 책임들이 쌓이고 쌓여 교사들을 사지로 내모는 거대한 폭탄이 만들어지는건 아닐까.

내가 그 거대한 폭탄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질문을 가장한 아린 마음이 들지만 애써 모른척 했다.


지금 그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른다.


몇 해가 흐른 후에 그 아이 엄마가 나를 향해 겨누었던 그 칼날이

본인에게 돌아갔다는 소문만 스쳐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가 잘 지내길 바란다.


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나보다 더 좋은 어른을 만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떳떳하게 자리잡고 살길 바란다.


진심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나는 그 아이의 담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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