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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Sep 01. 2023

시작은 거짓말

<사춘기 딸과 함께 야구장을 1>

결혼 전, 남편에게 한 거짓말 두 개가 있다.    


  

남편과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은 술을 즐긴다면서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전 식사하면서 맥주 한두 잔 정도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씨도 그런 걸 좋아하시나요?”

난 피부 알레르기가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가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 “네. 저도 맥주 한두 잔 하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해버렸다.      



그 뒤에 또 이어진 질문. 

“야구는 좋아하세요? 전 야구 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뇌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대답이 나갔다. 

“네, 좋아해요. 어떤 팀 좋아하세요?”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야구를 좋아하다니, 대체 누가? 내 동생이 옆에 있었다면 깔깔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었다. 난 자신을 합리화한다. 맥주는 특별한 경우에는 마시니 거짓말이 아니고, 야구는 이제부터 좋아할 거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재미가 있다.      



그 뒤 남자 친구는 남편이 되었고 난 남편의 응원팀인 롯데 자이언츠를 함께 응원했다. 응원의 기본은 유니폼이라는 남편의 말을 따라 롯데 유니폼을 사고 가끔 직관도 갔다. 만삭일 때도 야구장에 갔었는데 아기를 낳자 시들해졌다. 야구 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남편도 하이라이트로만 야구 경기를 시청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 후에야 다시 직관을 갔다. 아이는 조금 좋아하는 듯했는데 야구가 재밌어서라기보다는 치킨이나 과자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아하는 것 같았다. ‘기회가 있으면 또 오자.’ 했는데 그러고는 4년이 흘렀다. 끝날 듯 끝날 듯 3년간 이어진 코로나 때문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올해 봄, 갑자기 롯데가 잘한다. 9연승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람! 

“우리 팀이 이렇게 잘하는데 직관 한 번 가야 하지 않겠어?”

남편은 옷장 깊숙한 곳에서 신혼 때 샀던 가을 잠바를 꺼냈다. 산지 십 년이 넘었지만 입은 적이 없어 새것 같다. 남편이 말했다. 

“가을은 아니지만, 아직 좀 쌀쌀하니까 직관 갈 때 이거 입고 가자.”

“어머, 가을 잠바네! 이러다가 우리 팀 정말 가을 야구 가는 거 아냐? 하하하.”

남편도 나도 오랜만의 직관에 들떴다. 집순이인 딸이 싫다고 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치킨 등 먹을 걸 많이 사주겠다고 하니 홀라당 넘어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많이 왔지만, 우린 걱정이 없었다. 고척돔 경기였으니까! 

비가 와도 걱정 없는 고척 스카이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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