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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Sep 01. 2023

4년 만의 직관

<사춘기 딸과 함께 야구장을! 2>

  

처음 오는 고척 야구장에 우린 왜 차를 끌고 왔을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다 짐도 많고 비도 와서 ‘에이, 우리 차 주차할 곳 하나 없겠냐.’란 생각으로 차를 가져왔다. 혹시 몰라 주차 장소 여러 곳을 검색해 놓았다. 그러나 이런. 검색한 주차장은 모두 만차이고 주차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근처를 몇 번이나 돌다 점점 더 먼 곳 또 더 먼 곳까지 주차 자리를 살펴보다 결국 아주 먼 곳에 차를 대고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야구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쳤다. 남편과 나는 사춘기 딸의 눈치를 본다.

“우리 치킨 살까, 치킨? 방방아, 치킨 맛있겠지?”

딸의 관심을 치킨으로 돌려본다.      



야구장에서는 응원 소리가 들린다. 들어가니 벌써 2회 말.

“1회부터 볼 필요 없어. 어차피 야구는 9회까지니까.”

남편은 분위기를 띄우려 애쓴다. 우리 자리를 찾고는 더 밝은 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이야, 우리 자리 엄청 좋아.” 

“오, 정말이네. 진짜 잘 보여.”

나도 같이 맞장구를 쳤다. 응원석 왼쪽 자리다.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로 응원 단상이 있다. 이 자리는 응원단과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살짝 부담이 됐다. 오랜만에 직관이라 응원가도 응원 동작도 잘 모르는데. 특히나 더 신경 쓰이는 건 딸이다. 집순이인 딸이 과연 이 시끌벅적한 공간을 좋아할지. 스피커도 바로 옆에 있어서 응원가 소리가 상당히 큰데. 그러나 아이가 아직 짜증 내지 않은 걸 보면 그럭저럭 괜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뭐 롯데 조지훈 단장 바로 옆자리라고 볼 수 있다 


남편은 야구장에 오기 전부터 4년 전 아이가 야구장에 왔을 때 찍은 사진과 똑같은 포즈로 아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사진 속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자이언츠 모자를 거꾸로 쓰고 빼빼로를 입에 물고 손으로 브이자를 하고 있다. 남편의 제안에 아이는 ‘그걸 왜 하는데?’, ‘그걸 꼭 해야 해?’라고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게 웬일. 딸은 남편의 말을 듣고 ‘재밌겠다’라고 한다. 아이는 (아빠가 이미 다 준비해 놓은) 빼빼로를 입에 물고 아이는 모자를 거꾸로 썼다.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사진을 찰칵찰칵찰칵.


      

그러나 남편은 찍어도 너무 많이 찍어 결국 아이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그만 좀 찍지?” 

아이는 그 한 마디를 던진 후, 모자를 제대로 쓴다. 나도 아이의 편을 들었다. 

“그래, 오빠, 찍을 만큼 찍었어.”


     

어느새 우리 팀의 공격. 응원석 옆이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일어나서 어정쩡하게 응원 동작을 따라 하는데 남편이 나에게 귀속말로 묻는다 

“방방이가 야구장 좋아하는 것 같아?”

“아직 잘 모르겠어.”   


  

아이가 5학년이 된 후, 가족 여행을 가도 나들이를 가도 아이에게선 예전 같은 적극적인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비교적 활동적인 남편과 내가 “이거 할까?”, “저거 할까?”라고 제안하면 “그거 꼭 해야 해?”라는 말로 먼저 받아치고 “난 숙소에 있을게.”란 말로 결론을 지었다. 


     

이제 아이는 주말에도 친구들과 따로 약속을 잡고 엄마 아빠와 함께 노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아이와 같은 나이였을 때 엄마, 아빠보다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좋아했다. 아이가 자라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부모에게서 서서히 독립해 가는 과정. 그러나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마음은 서운하다. 아니, 서운하다기보다는 아쉽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아이와의 한 시절이 또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아쉬움. 육아 집중기를 지나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 이제 조금 말이 통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사춘기가 되어버렸네, 하는 섭섭함.


      

그런데, 6회였었나, 시끄러운 응원가를 어설프게 따라 하고 있는데, 엉거주춤 서서 응원 동작을 따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내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엄마, 야구장 재밌다.”

“그래? 엄마도.”

난 아이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리고 바로 아이의 말을 옆에 있는 남편에게 귓속말로 전했다. 
 “방방이가 야구 재밌대.”

“그래?”

남편도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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