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하자, 은퇴식
팀에 크게 기여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선수를 기리는 의미로 그 선수의 등번호를 결번 처리하여 팀 내에서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 번호를 의미한다. 프로야구의 최초의 영구 결번은 OB베이스의 백업 포수 김영신 선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선수로, OB 베어스가 추모하는 의미로 1986년 김영신 선수의 54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였다. 은퇴를 하면서 영구 결번이 된 최초의 선수는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렬 선수다. 해태 타이거즈는 1996년 선동렬 선수의 18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였다. 롯데 자이언츠는 최동원 선수가 쓰던 11번과 이대호 선수가 쓰던 10번이 영구 결번이다. NC 다이노스, KT 위즈, 키움 히어로즈는 구단 역사가 짧아 아직 영구 결번이 없으며, KBO리그 내 영구 결번 주인공은 모두 17명이다. (2024년 기준)
롯데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사직 야구장에 가면 메인 전광판 아래에 롯데의 영구 결번인 10번과 11번 번호판이 붙어있다. 한 구단의 레전드로 야구 인생을 마무리한 그들을 떠올리면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프로 선수가 되기도 어려운데 프로 선수로, 1군으로, 게다가 영구 결번이라니. 레전드 중의 레전드다.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칠뿐, 레전드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들과 같은 투지도 근성도 긍정 마인드도 부족하다. 게다가 은퇴를 해야 영구 결번 선수가 될 수 있는데 나는 은퇴가 없다. 프리랜서니까 일이 계속 들어온다면 죽을 때까지 은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일이 너무 드문드문 들어와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롯데자이언츠에서 최근에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선수는 2022년에 은퇴한 이대호 선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타격 7관왕과 한미일 프로야구 첫 9경기 연속홈런, 한국인 첫 제팬시리즈 MVP 등 이대호의 야구 업적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계속 롯데의 4번 타자로 남아 줄줄 알았던 이대호 선수가 은퇴했을 때, 눈물 흘리지 않은 롯데 팬들이 있었을까. 22년간 야구 선수였던 이대호가 은퇴하는 것이 마냥 아쉽다가도, 그가 이제 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대호의 마지막 경기가 생각난다. 롯데 선수단 모두 빨간색에 곤룡포를 본떠 만든 이대호 은퇴 유니폼을 차려입고 경기를 치렀다. 경기 전에 이대호 선수가 가족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가 나왔고 이대호의 아들과 딸이 시구, 시타를 했다. 경기 후에는 은퇴식이 이어졌고 은퇴식의 하이라이트는 영상편지였다. 이대호와 함께 야구를 했던 선배, 동료, 후배들은 물론이고, 가르시아 선수와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까지 영상에 나와 깜짝 놀랐다. 영상이 끝나고 이대호 선수의 아내가 나와 꽃 목걸이를 걸어주고 이대호 선수가 편지를 읽을 때는 내내 내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은퇴식을 하는 선수는 아주 소수다. 선수 생활 내내 한 팀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성적도 좋아야 한다. (꼭 한 구단에 있지 않았더라도 한 구단에서 오랜 기간 있었던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들만이 위와 같은 감동적인 은퇴식과 함께 자신의 팀 선수들과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 야구 선수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트레이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정말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뛰던 야구장, 동료 선수들, 그리고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를 갖는 것은 얼마나 귀한가. 선수 스스로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 자신의 초심을 떠올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새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힘을 얻는다. 두산에서 뛰던 선수 니퍼트는 7년 만인 24년 9월에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은퇴식을 했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홈구장이었던 곳에서 많은 팬들과 동료들과 만나 정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구단에서 은퇴식을 해주지 않고 선수와 팬들이 은퇴식을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키움의 이택근 선수다. 비록 야구장에서 진행된 은퇴식은 아니었지만 동료 선수들은 이택근의 현역 활약상을 담은 영상과 동료들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과 은퇴 기념패를 준비했다.
은퇴식의 영상에는 은퇴하는 선수가 야구를 하며 경험한 성취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다. 어쩌면 선수도 잊었을 자신의 멋진 플레이가 재생되고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업적이 세상에 드러난다. 아마도 선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정성스레 멋진 장면을 선택하고, 영상 편지의 대상들을 선별해 직접 찍고 편집했을 것이다. 고심하며 장면을 편집했을 그 누군가의 눈빛을 상상한다. 은퇴하는 선수가 보고 좋아할 생각을 하며 편집하는 내내 미소를 지었겠지.
난 은퇴식의 주인공에서 은퇴식을 준비하는 스텝으로 관심이 옮겨간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게 은퇴식은 없지만, 없으면 만들면 된다. 키움의 이택근 선수의 은퇴식을 후배들이 만들어 준 것처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고 기념할 일이 없을 소냐. 졸업도 있고 퇴직도 있고 환갑도 있고 칠순도 있으니 그중 한 때를 잡아 기념하면 그만이다. 나는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나아가는 기념식의 스텝이 되는 상상을 한다.
우선 옆에서 자주 봐야 하는 사람을 해야 하니, 딸과 남편으로 한정 짓는다. 딸의 성인식 또는 남편의 환갑 때 기념식을 할까? 우선은 기념식의 재료부터 모으자. 딸에 대한 글은 많으나 남편에 대한 글은 별로 없다. 남편에 대한 좋은 기억을 열심히 떠올려 본다.
남편과는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잘 맞았다고 생각했고 같이 있으면 편했다. 그러나 신혼여행에서 앗. 저런. 어쩌면 조금 힘든 결혼 생활이 될지도 모르겠는 걸, 하는 생각을 우리 둘 다 했다.
남편도 나도 단점이 있는 사람이고 연애할 때는 그게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단점은 쉽게 고쳐지지 않으나 더 나빠지기는 쉽다. 이제 결혼 14년째.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 둘 다 뾰족했던 부분이 조금은 뭉툭하게 변했고 남편도 나도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거니. 하고 산다. 기대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기대가 바닥이 된 후 오히려 ‘어쩌면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일지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 치앙마이 여행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코끼리 보호소에 잠깐 머물렀었는데 코끼리의 식사 시간인지 일하는 직원이 코끼리 우리 앞에 사탕수수 줄기를 쌓아 놓고 갔다. 엄마 코끼리는 빠른 속도로 먹는데 아기코끼리는 아직 코를 잘 가누지 못해 사탕수수 줄기를 잘 집지 못했다.
-엄마 코끼리 너무해. 자기 혼자만 먹고. 아기도 좀 주지.
내 말에 남편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아기가 코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 잘 못 먹네.
우린 그 장면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어느 순간, 남편은 사탕수수 줄기를 한가득 집어 아기코끼리에게로 다가갔다. 집기 좋게 사탕수수 줄기를 작게 접어 아기코끼리 코 쪽으로 내민다. 예상과 달리 아기코끼리는 남편이 내민 사탕수수 줄기에 관심이 없다. 남편은 계속 먹이 주기를 시도하다 결국은 사탕수수 줄기를 바닥에 놓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이 뭔가를 잘못했을 때 이 장면을 기억해야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떠올려야지.
추석 당일 밤이었다. 샤워한 후 자려고 이불을 펴는데 잠시 밖에 나갔던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날 찾는다.
-자기야, 자기야. 잠깐만.
우리 동 근처에서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란 말을 들었다고 했다. 40대 남자 목소리였다는 말도 덧붙인다.
-나랑 잠깐만 같이 밖에 가주면 안 돼? 혼자선 못 가겠더라고.
-어? 혼자는 무서워서 나랑 같이 가자고?
-응. 아파트 한 바퀴만 돌고 오자.
-아. 그래. 그러자. 나라도 혼자선 무서웠을 것 같아.
잠옷 바지를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잘 못 들은 거면 좋겠다.
솔직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난 남편이 공포영화도 잘 보고 무서운 액티비티도 좋아해서 겁이 없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우린 아파트를 천천히 돌았다. 나도 속으로는 다른 사람이 이미 도와주었으면, 남편이 잘 못 들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를 도는 동안,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나 어떤 수상한 낌새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난 안도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이 에피소드를 기억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선천적으로 용기가 있진 않지만, 겁이 나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애써보는 사람. 남편이 싫을 때 이 장면을 떠올려야지.
어쩌면, 아니 아마도 이런 장면은 더 많았을 것이다. 남편에 대한 높은 기대와 미운 마음이 그런 장면들을 못 보게 덮었을지도. 그러니까 어쩌면, 아니 아마도 이건 나의 시선의 문제다.
이런 에피소드를 모아 남편 환갑 때 선물로 줘야겠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생각은 많고 행동은 느린 스타일이다. 우선은 잊지 않게 기록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지.
**첨언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영구 결번과 레전드 선수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혼자 뿌듯해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남편이 일이 많지 않아 사무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한다고 하면 ‘헉. 그렇다면 내가 나가주마.’ 하고 업무를 싸들고 카페에 가는 현실. 사실은 오늘도 그런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은 카페. 으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