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여자친구

by 백은월

서한의 고백에 유현은 얼어붙었다. 아무리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라지만 직접 그 말을 상대의 눈을 마주한 채로 듣는 것은 더 이상한 기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이파리 사이에 서 있는 듯 온몸이 간지럽고 싱그러운 기분인 것 같기도 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앞에 서서 열기를 온몸으로 맞는 기분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 기분이 싫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느끼고 더 뛰어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서한의 느낌도 유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고 연습했던 고백인데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유현의 눈을 바라보고 고백을 했다는 것 만으로 서한은 꽤 만족했다. 그리고 유현의 반응이 꼭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딱 들어맞아서 귀엽다는 생각도 했다. 서한도 유현의 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에서 오는 불안감은 비대하게 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몸이 달아올라 호수에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유현이 왜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충분히 알면서도 그 말을 듣는 것이, 그 말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상황이 미치도록 피하고 싶고 낯간지러웠다.

"나도 너 좋아해, 서한아. 엄청 많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목소리, 그렇지만 여전히 눈을 바라본 채로 자신과 똑같이 대답해 주는 유현에 서한의 웃음이 터졌다. 빵빵하게 부풀던 긴장감이 터지고, 안도감과 기쁨이 둘의 사이를 맴돌았다. 눈꼬리를 해사하게 접어가며 웃는 서한의 모습에 유현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서한이 가장 좋아하는 조용하고, 부끄러워 하지만 절대 숨기지 않는 그 미소였다. 볼을 살짝 붉히며 웃는 유현의 모습에 서한의 눈가에 애정이 서렸다. 서한에게 유현은 아주 조그만 아기 고양이였다. 하얗고 똘망똘망한 눈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잘 다가오는, 평생 아기일 것만 같은 그런 고양이.

유현의 팔에 있던 서한의 손이 다시 유현의 머리로 향했다. 아주 작고 소중한 것을 보듬어 주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서한에 유현의 볼이 점점 더 붉어졌다.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던 눈동자도 조금씩 떨리고, 어디에다 둘지 모르겠다는 듯 서한의 얼굴 이곳저곳을 방황했다.

"왜 눈 안 봐줘."

"아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아직 부끄러워?"

장난으로 한 자신의 말에 어쩔 줄 모르는 유현의 반응에 서한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놔주지 않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지만 그보다 유현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서한의 말에 유현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유현도 서한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아는지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서한의 옷소매를 쥐고 약하게 잡아당겼다. 그 손짓 하나하나가 서한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현은 옷 끝을 놓지도 않고 붙잡고 있었다.

"알았어 안 놀릴게. 내가 미안해."

웃음이 서려 있는 서한이었지만 안 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더 유현을 놀렸다간 진짜 토라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진짜 이유는 끓어오르는 자신의 열망 때문이었지만.

유현의 반응에 조금 내려가 얄쌍한 어깨에 걸쳐 있던 손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숙이고 있던 유현의 머리가 콩, 하고 서한의 가슴팍에 닿고, 뒤로 기울어져 있던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다. 무슨 일인지 파악도 전에 등 전체를 감싸는 손길과 옷 끝을 붙잡고 있던 손을 덮어오는 따뜻함에 유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아까 전에 먼저 안긴 것은 생각도 안 나는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현에 서한이 한술 더 떠 덮고 있던 유현의 손을 뒤집어 조심스레 맞잡았다. 한 손에 다 들어오고도 남는 유현의 손에 놀란 것도 잠시, 작은 손이 꼬물거리며 자신의 손을 감싸는 느낌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어렵게 자신의 손을 잡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자신이 애정하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유현에 하, 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

“내 여자친구가 너무 예뻐서.”

여자친구라는 말에 유현의 사고가 멈췄다. 처음 서한이 유현에게 귀엽다는 말을 했을 때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 유현의 표정에 서한이 가만히 그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던 유현이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사귀는 거야?”

화, 금, 일 연재
이전 05화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