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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May 22. 2023

18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책임

물속은 아무도 모른다

슬로바키아, 영국, 네덜란드에서 일할 때 나는 영어이름으로 불렸다.

물론 한국인 주재원이나 한국인들한테는 한국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공통적으로나 대외적으로는 Jayden이라는 영어이름을 썼다. 성씨인 Kim을 붙여 Jayden Kim, 제이든이라는 영어이름은 대학생 때 떠난 영국 어학연수 시절부터 써오던 것을 자연스럽게 그대로 쓰게 되어 명함에도 박히는 이름이 되었다. 의미는 확실하지 않지만 '감사할 줄 아는' 뭐 그런 비슷한 뜻이었던 것 같은데, 과연 내가 가진 것이나 경험에 감사할 줄 알며 살아오긴 했나 싶은 생각이 지금에야 들긴 한다.

나는 Jayden Kim 겸 김민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공식적으로는 김민준 대리가 되었다가 김 과장을 거쳐 새로운 회사에서 김민준 책임이 되었다.

이 회사에서는 과장부터 임원진 이하 부장급까지 동일하게 책임이라는 직급체계를 사용했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예전 직급체계인 과장 1년 차부터 부장n년차까지 나누어져 있는 책임 1년 차, 2년 차... n년차를 찍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 어쨌든 회사에서 명목상으로는 과장부터 부장까지 모두 책임이라고 불렸다.


새로운 직급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번듯한 건물에 입주한 회사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자체가 주는 뿌듯함, 해냈다는 기쁨 그런 것은 사실상 생각보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직의 이면에 필수적으로 뒤따라오는 최소 두세 달의 고통스러운 회사 적응 기간 때문이기도 했고, 여태까지 해오던 일과는 사뭇 많이 다른 업무에 새로 투입되다시피 하여 일을 해야 하기도 했기에 초반에는 힘에 부치기도 했다. 회사에는 새로운 사업부가 생기면서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거 새로 뽑았고, 운 좋게도 그 팀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새로운 사업부에서, 갖가지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내 목소리를 내며 주도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초반에는 눈치를 살피며 이 생태계가 돌아가는 약육강식의 법칙과 고도의 의 사내정치, 라인 같은 것을 파악하기에도 버거웠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 갑자기 떠밀려 들어왔으나 내 한 자리 고수하며 내 몫으로 떨어진 것을 쳐내기도 바쁜 하루하루였고, 텃새 아닌 텃새도 있어서 그간 쌓아온 능력을 보여주기는 커녕 나름 업계 전문가로 다져졌다고 생각했던 나의 의견이 묵살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다. 이 '거대 생태계에서 꼬리로 사는 것이 확실히 내 성격에 안 맞긴 한가보다.'는 것을 다시 하루하루 느끼는 나날이 이어졌다. 어느새 나는 그 속에 깊이 들어앉아 있었다. 인간 적응의 동물이다.


어쨌든 새로운 곳에 왔으니 최소한 만 1년,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래, 이곳에서 경력을 쌓고 버티는 것이 지금의 과제였다. 한국 온 지 5년 차에 벌써 3번째 회사로 이직했으니, 여기서 최소 2,3년은 버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나쁘지 않을 커리어 플랜이다. 너무 잦은 이직은 엉덩이가 가벼워 보이게 하고, 심지어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반년 가량이 흘렀고 대망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3년 여 년 전 분양받은 아파트의 입주일이 다가온 것이다. 서울의 전셋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여 이사 온 경기 남부의 전셋집 계약 만료기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1년 반 전, 연초에 이사했으니 꼭 2년을 채우고 입주하면 보통 3개월 정도를 신축 입주기간으로 주기에 딱 적기에 입주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말이다......


그 무렵, 가계 부채가 급등하여 정부에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하여 다양하고 새롭고, 우리 입장에서는 빡치는 부동산 정책들을 쏟아붓듯이 내놓고 있었고, 우리처럼 이사를 앞둔 사람들이나 계약 만료를 앞둔 사람,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집주인들 등 모두가 갑작스러운 패닉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뭐 하나도 쉽게 가지 않는구나. 급격히 늘어나는 대출 총액을 관리하기  위해 대출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다.  기준금리가 올라가자 시중 은행들에서도 당연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아파트 예비입주자들 단체채팅방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대출이 가능하긴 한 건지, 금리가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일지 걱정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불안에 휩싸였다. 3년을 기다린 새 아파트에 입주해보지도 못하고, 전세를 주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우리 같이 거의 우리 능력으로 대출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떤 수를 써서 입주에 성공하더라도 4%, 5%, 심지어 6%까지 치솟을 수도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입주 후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를 미리 계산하고 걱정해야만 했다.

내 월급으로 거대한 담보대출 이자를 매달 갚고 나서 남는 돈으로 과연 생활, 아니 생존이 가능할지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 되고 있었다.

이런 우리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지구적인 코로나 상황으로 경기 회복 태세가 보이지 않자 미국 금리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고, 한국은행은 그에 맞춰 따라가고, 시중은행이 그 뒤를 잇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매일 부동산 정책이나 금리, 경제 기사를 찾아보았다.


만약 이자가 도저히 감당 못할 수준이 되거나 우리도 2년 전세를 한 바퀴 돌리고 입주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또다시 이 전셋집을 벗어나 새로운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데, 2년 사이 이 동네도 호재 때문에 매매며 전세 가격이 잔뜩 올라 있었다. 혹시나 싶어 집주인에게 미리 연락을 해보았다. 만약을 위해 2년 재계약이 가능할지 선수를 쳐서 물어볼 요량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세입자입니다. 저희 계약이 내년 초까지인데, 혹시 2년 더 재계약할 수 있을까요?

혹시 입주하실 생각이신지 아님 다른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하여 미리 여쭤보려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러자 안타까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 안 그래도 저희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에요. 저희가 지금 사는 집 전세가격도 많이 올라 집주인이 들어와 살 거라며 계약 끝나면 나가달라고 해서요. 주변 가격이 많이 올라서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죄송하지만 저희도 저희 집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만일을 위해 대안을 생각하고 있어야 했다.

문제는 만일 서울 집에 입주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땡전 한 푼 없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1 주택자가 되어 전세자금대출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집을 주고, 받은 보증금으로 가용한 다른 전셋집을 구해야 했는데, 출퇴근 가능한 곳에서 금액대를 맞춰 알아보니 지금 사는 곳보다도 더 아래로 내려가거나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포기해야 했다. 겨우 이직에 성공해서 연봉을 높이고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극단적인 경우에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1년 반 뒤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는데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도 많았다. 하나의 고민을 겨우겨우 해결하고 현실에 적응해서 조금의 평온한 시간이 흘러가면 또 다른 고민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미 피부 안에 가득했던 뾰루지균들이 이제야 적절하게 지저분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환경을 만나 불쑥불쑥 하나씩, 또 하나씩 튀어나오듯이. 젠장. 날 때부터 반짝이고 편평하고 뾰루지나 여드름 따위 잘 나지 않는 비옥한 피부를 가진 이들은 삶이 얼마나 평탄하고 아름다울까.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하는 사이 입주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아 속만 썩이고 있을 때쯤, 담보대출 은행이 몇 정해져 금리가 통보되었다. 물론 중도금이며 잔금이며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 인생도 있겠지만, 금리 0.1%에 한 달, 한 달 생활이 달라지는 나 같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어떤 은행은 금리 3.9%에 5년 고정을 제시했고, 어떤 은행은 3.5%에 6개월 변동금리를, 어떤 곳은 2년 고정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매시각 새로 내놓다시피 하는 부동산 정책 때문에 얼어붙은 대출 시장에서 하필 이 시점에 입주하게 되면서 지난 3년 동안은 본 적도 없는 숫자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 입주하게 되다니.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코로나 상황을 볼 때 아마 이 고금리도 1,2년 이후에 비하면 저금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받아야 하는 대출금액과 대출 실행 후 매달 갚아나가야 할 이자를 생각해 보니 숨이 턱 막혀 돌아실 지경이었다.

이건 뭐 입주를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입주를 한다고 해도 아파트를 당장 팔아버릴 수도 없었다. 주거기한을 채우지 않고 매도했을 경우 양도세가 어마무시했기 때문에 최소한 만 2년은 실거주를 해야만 했고, 어떻게 입주를 한다고 해도 2년은 죽어라 이자를 내며 버텨야 한다는 뜻이었다.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이었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일단 들어가 살면서 방도를 마련하느냐, 현실을 고민하며 2년 뒤를 생각하며 한차례 더 웅크리느냐.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 되도록 고민하긴 했지만 고민할 시간조차 많지 않기도 했고, 내 성격상 이건 못 먹어도 고였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때문에 신축 아파트 전세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계산도 한 몫하긴 했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또 다른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 나는 항상 그런 식으로 살아왔으니까. 백수 상태로 5개월 된 딸아이를 데리고 네덜란드에서 대전 본가로 들어올 때도, 왠지 뒤가 구린 느낌으로 겨우겨우 영국 비자를 받아내어 일단 가서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무려 결혼을 약속하고 영국으로 홀로 출국할 때도, 망해가는 회사에서 탈출하고자 죽어라 입사지원서를 쓸 때에도.

차선을 선택해서 두고두고 후회하기보다는 모험을 선택해서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대출금리가 이대로 연말을 넘겨 연초가 되어버리면 어떤 비상사태로 치달을지

예측불가능한 하루하루였기에 우리는 현 전셋집의 집주인과 협의하여 계약만료기간보다 두 달 여 일찍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책임이 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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