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화.이것은 실패와 눈물이 쌓아 올린 거대한 공이다.
인생은 계속된다.
나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끝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삶의 기준이나 목표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회사에 다니는 것일 사람이 있을 수도, 대기업 정도에 다니기만 하면 다른 문제들은 자잘하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외동아이를 하나 키우는 것이 둘, 셋 키우는 부부들에 비하여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훨씬 수월하기는 하지만 회사는 결국 회사일뿐이고, 우리 부부는 하루가 다르게 더 늙어갈 뿐이고 곧 중년이 될 것이다. 노후 준비는 커녕 아직도 한 달 벌어 한 달 마이너스 통장에 집어넣고 대출금 갚아나가기도 벅찬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입주한 지 1년 여가 지났지만, 3년이 다 되어가도록 계속되고 있는 역병의 여파와 경기 침체로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고, 아직 주변 정비가 되지 않은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는 신축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크게 오르지 않았다. 아파트를 당장 팔 수도 없긴 하지만, 어떻게든 이후의 삶에 대한 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주식, 펀드, 가상화폐에서 시작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점차 자연스럽게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누구나 그렇듯 유튜브를 통해 부동산 정보를 얻기 시작하다가 점차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유튜브라는 미디어 생태계는 결국 구독자 모으기로 귀결되기에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로 어그로를 끄는 경우가 많았고, 주로 출퇴근 시간에 흘려듣듯 듣는 청각적인 정보는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한 동영상이 끝나면 초조하게 다음에 볼 동영상을 찾아 헤매기 바빴다. 그 와중에도 간혹 그나마 진실된 정보를 주는 듯한 유투버를 찾으면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들여, 어떤 루트를 통해서 부동산이나 재테크 전문 유투버가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대부분은 어떤 각성을 통해 '부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고, 한낱 월급쟁이 회사원으로는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을 깨닫고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으며, 우선 많은 책들을 읽으며 정보를 습득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책을 통한 정보가 어느 정도 쌓이면 직접 실전 투자에 나서게 되고, 그런 실패와 성공 경험들이 몇 년 정도 쌓이면 그 경험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출간을 하게 되고, 책 성공을 통해 유튜브도 하게 되는 경로가 많았다.
딱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 역시 회사원으로는 임원이 될 만큼 피 토하게 열심히 하지 않는 이상 은퇴할 때까지 해 먹기가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 회사원 월급이 아무리 많아봐야 집을 한 채 더 사고, 누구나 생각할 법한 '부자'가 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 회사를 일단 계속 다니더라도 부업으로 다른 걸 하긴 해야 한다는 것, 그 정도의 생각으로 시작했다. '시작했다'함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평생 책이랑은 담 쌓다시피 하고 살긴 했다. 학창 시절 읽어야 했던 필독도서나 영문학을 전공하며 읽어야만 했던 소수의 책들을 제외하곤 문학을 포함하여 그 흔한 자기 계발서조차 거의 읽지 않았다. 아내 수연이 글을 쓰게 되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여러 번 설파하긴 했지만 나는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깟 종이쪼가리에 뭐가 그렇게 많이 담겨 있다고. 내가 직접 부딪히며 해온 경험들과 내 의견, 가끔 시사 기사를 읽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아무리 허접한 책이라도, 실패한 경험담을 담은 자기 계발서라도, 책에는 한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 생각을 포함한 그 사람의 인생 그 자체가 담겨 있었다. 수많은 인맥을 가진 사람이라도 오백 명, 천명과 친분을 유지하며 현생을 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책을 통해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나는 책 한 권을 읽으며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공짜로 알 수 있었고, 아무리 별로인 책이라도 최소한 한 가지는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책을 읽어나가며 알게 되었다. 여전히 소설이나 에세이를 더 많이 읽는 수연이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지만, 독서란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치트키가 되어주는지는 조금 알게 되었달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내가 부동산 투자 같은 걸 정말 하게 될지, 언젠가 이 회사도 때려치우게 될지.
흔히 말하듯, 많은 회사원들이 꿈꾸듯, 나 좋은 시간에 일어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주식창을 열어놓는 우아한 전업투자자의 삶을 살게 될지. 지금 당장 은퇴해도 매달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고, 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웬만한 것은 큰 걱정 없이 사주고, 시켜줄 수 있는 그 정도의 재력은 얼마나 노력해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흔한 경제력과 흔한 배경을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나 비슷한 수준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남들처럼 아이를 낳고 살고 있지만, 그 흔한 배경과 스펙을 뒤바꾸고 한 단계 뛰어넘어 내 아이는 날 때부터 이 서울에서, 우리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해 주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더 필요할까. 이 시대에서 부는 정말 대물림되기만 하는 걸까.
이런 고민들은 번듯한 집과 번듯한 차, 절대 잘리지 않을 직장, 적당한 수준의 연봉, 그런 것들이 받쳐주어야 하는 여유로운 고민일 것만 같지만, 그런 것을 다 갖추고 나서 해야 한다면 아마 나는 이미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있거나 평생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 나이 서른아홉, 아직 젊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도 아직 충분히 젊다고 생각하고 그래야만 한다. 아이가 대학에 갈 나이가 되려면 10년도 더 남았다. 아마 그 이후에도 최소 이삼십 년은 더 살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은 빠르게 느껴지고,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세월이 야속하게 더 빠르게 간다고 느끼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인간의 한평생은 결코 짧지 않다.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삶을 산다. 살아낸다. 바쁘고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에서 모두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 있고, 복잡한 대도시의 삶이 누군가에겐 피하고 싶은 삶일 수도 있다.
나는 꽤 보수적인 사람이다. 남들 눈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듯하게 잘 살아내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부모로부터 무언가 제대로 물려받을 것이 있는 환경에서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가끔 아내에게 말하곤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꽤 공부를 잘했던 중학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했던 중3의 마지막 겨울 방학 동안, 나는 집에서 낄낄대며 만화책을 읽느라 시간을 죄다 보냈다. 부모님은 한창 성업 중이던 숙박업 사업을 하시느라 여전히 바빴고, 15살의 아들은 이미 다 커서 제 앞가림은 한다고 여겨졌다. 그 중요한 시기에 내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며 '수학의 정석'을 예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 고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알았다. 수학은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 초등, 중등 수학과 고등 수학은 차원이 다른 종류의 과목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죽 생각해 왔다. 절대 내 아이는 정보에 뒤처져서, 부모가 교육에 무지해서, 보살핌이 부족해서 뭔가 못하게 되게 만들지 않으리라고. 최고급 옷을 사주고, 최고급 차를 태워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들 하는 만큼의 보살핌과 정보력을 주고, 세상에의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해 주리라고.
세월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그것은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아빠이고 싶다. 모두에게 모두의 삶의 기준이 있듯, '이것만은 반드시'라고 생각하는 목표가 있듯, 서른아홉의 나는 그 이유로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 아내와 육아에 대한 이해도와 관점이 달라서 참 많이도 다퉜지만 여전히 육아서는 잘 읽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은 아내가 채워주고, 또 좋은 내용은 나에게 알려줄 테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계획한 적은 없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자연스럽게 해외 인턴을 하게 되었다가 '현지채용인'의 삶으로 해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유럽의 세 나라를 거쳐 빈털터리가 된 주머니와 상처 입은 마음을 가진 채 아기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가장의 무게란 철없던 이십 대에 상상하던 것보다는 어마무시하게 컸다. 아직 내가 정말로 어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옛날 어른들이나 부모님이 말하시는 그런 의미의 어른이 되고 있다고 느낀다. 아직도 가끔은 일확천금을 꿈꾸고, 스트레스를 술과 음식이나 쇼핑으로 풀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며 운동은 귀찮아서 가끔만 한다. 회사에는 그냥 가야만 하니까, 아침에 일어나 싫은 마음으로 여전히 꾸역꾸역 나간다. 사실 회사가 싫긴 하지만 대학 졸업후 쭉 회사원이었기에 회사원이 아닌 다른 정체성을 가진 나는 상상이 잘 안되기도 하는, 나는 평범한 이 시대의 30대 가장이다.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지만, 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 가치란 내가 스스로 내 삶을 기록할 때에 의미 있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내 삶에 대한 기록을 대신해서 받아 적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이 이야기는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여러 실패와 눈물이 쌓아 올린 거대한 공은 내가 그 가치를 인정해 줄 때에만 진짜 공이 되어 내 인생을 계속해서 굴려나갈 것이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연재소설 <김 과장의 서바이벌 헬조선>
-드디어 (일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