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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an 19. 2024

갑자기 마흔

이라는 나이의 무게

요즘 거울을 보는 것이 영 어색하다. 분명 20대 중반쯤부터는 한해 한해 착실하게 늙어왔을 텐데 정신차리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을 보면  시들어버린 나뭇잎 같다. 만으로는 아직 38살이지만, 작년까지 세던(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사용하는) 한국식 연나이로는 올해로 마흔이 되었다. 앞자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알다시피 무언가 확 바뀌지는 않는다. 그저 똑같은 일상이 흘러갈 뿐이고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이 들어감이 훅 느껴지는 우울한 기분은 거울을 볼 때 한층 더해진다. 아무거나 싸구려 보세 옷을 입어도 예쁘던 20대를 지나 그럭저럭 아직은 젊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30대를 지나 40대로 접어들면 싸구려 옷을 입으면 진짜로 좀 없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낯빛에서부터 달라져서일까. 부쩍 시들어 보이고 생기 없어 보이는 거울 속 내 모습이 어색해서 붉은빛이 도는 립밤도 덧발라보고 머리도 잘라보고 해도 어제의 나보다 하루씩 더 늙어갈 뿐이다. 이제 여름을 지나 정말 인생의 가을 정도에 접어든 느낌이다.


어렸을 적 내가 생각했던 서른의 이미지는 뭐든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 내가 번 돈으로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는 '진짜어른'의 느낌이었는데, 막상 내가 지나온 서른은 그냥 20대에서 몇 년이 더 지난, 여전히 속은 아이인 상태였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속에 든 나는 여전히 10대, 20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몸만 나이들어가고 세상의 유행을 쫓기가 어느순간부터 버거워진다. 돈은 벌어도 사고 싶은 걸 다 살수도,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 수도 없는, 그냥 나이만 더 든 똑같은 상태의 사람이었다. 거기서 10여 년이 더 지난 지금, 주변을 보면 결혼을 할 친구들은 대부분 다 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직장을 다니든 다른 일을 하든 나름대로 자기 삶을 꾸려가며 살고 있다. 수많은 직장인들의 꿈이 어려서부터 회사원이 되는 거였을까? 그랬을 리 없다. 누구나 가슴속 그려본 '멋진 어른 버전의 나' 회사원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김연아나 손흥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슴속에 꿈을 갖고 산다는 건 좋은 일이겠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모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영화감독 모두가 박찬욱처럼 될 수는 없으니까. 그저 뉴스에서 나오는 끔찍하거나 무섭거나 슬픈 사건이 나나 내 가족에겐 일어나 않은 것만으로도, 평온하고 무탈한 하루를 잘 보내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잘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시작을 못했다. 요즘 살이 몇 킬로 올라서 나름 간식도 줄이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걷고 있는데,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청계천을 따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종묘까지 갔다. 1,500원짜리 편의점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서 마시며 그대로 돌아오니 집까지 왕복으로 12,000보 정도, 무려 8km를 넘게 걷게 되었다.


뭔가 쓰고 싶다고 계속 생각은 했는데 연말부터 계속 몸이 안 좋기도 했지만, 제대로 시작을 못한 이유가 뭘까 걸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첫 문장을 뭐라고 쓸까 떠올려보니 어쨌든 시작할 순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마음이 들었다. 내 안에 이야기가 많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정말 쓰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주제의식 같은 걸 애초에 정해놓고 쓰는 소설가는 많이 없다고 하지만, 최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된 입장에서 내가 전하고싶은 메세지는, 보여주고 싶은 건 대체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니 명확하게 말하기가 어려운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그냥 소설가라는 타이틀이나 책을 계속 쓰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처럼 뭐라도 쓸때면 한동안의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굉장히 해소되는 기분이고, 쓰는 그 순간이 즐겁긴 한데, 작품을 만들어내고 출간을 하고 그런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좋은 소설을 쓰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대로 잘 쓰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인풋이 너무 적기도 하고, 좀 더 많이 읽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많이 보고, 읽고, 느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쓰고 싶다는 내 안의 목소리에서 좀 더 제대로 된 실마리를 찾아 이야기로 제대로 풀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억지로 쓰려고 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마흔에는 꼭 뭔가 하나 정도는 이루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오늘 하루 그냥 무탈하게 예쁜 아이를 보고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일상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범한 행복은 아닐 테니까. 좀 더 내려놓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마흔을 맞은 나도 좀 더 사랑해 주자. 그리고 그냥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청계천의 오리도 뭐 태어난 김에 사는 거지. 인생의 거창한 목표 같은 게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물속에 코 박고 먹이 하나라도 찾아서 오늘 하루 배부르면 된 거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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