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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Oct 25. 2023

오래되지 않은 과거

from 블로그에 뜬 '4년 전 내가 쓴 글 '

사실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을 하기 훨씬 전부터 오래 이것저것 써온 플랫폼은 N블로그였다.

요즘에는 글은 거의 브런치에만 쓰지만,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블로그에 글 같지 않은 메모나 일기 쪼가리 같은 걸 써 모았으니 가끔 블로그에 들어가면 '지난 오늘 글' 카테고리에서 몇 년 전 오늘의 내가 썼던 글들을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사실주로 그런 즐거움 때문에 일상의 조각들을 모으고 글로 남겨둔다. 모든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어 남겨둘 수도 없고, 사소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은 그때의 감정을 곁들여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도 퇴화되니..ㅠㅠ) 대부분은 모두 휘발되어 버리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아래는 오늘 블로그에 뜬 '4년 전의 내가 쓴 글'이다.




<섞는 거 좋아하는 네 살, 재밌는 언어발달>

2019년 10월 (아이 만 세 살 하고 반 정도 지난 무렵)

아직도 열심히 말을 배우고 있는 네 살 아이와 대화하면 참 재밌기도 했다가ㅜ

말이 안 통해서 열불 터지기도 했다가 오락가락한다.

시작은 색 이야기였을 거다.
언젠가 색칠공부 중이었나 물감놀이 중이었나..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초록색이 된다고 알려주었더니 엄청 신기해하며 빨강이랑 노랑, 빨강이랑 검정, 검정이랑 파랑 등등 섞으면 뭐가 되냐고 계속 묻길래 대답하고 하고 하다 지쳐서 그렇게 죄다 넣고 섞으면 똥색이 된다고 해버렸다.ㅋㅋㅋ 그러니 또... 똥색에 꽂혀서...

(네 살은 발달과정상 똥 이야기 엄청 좋아하고 재밌어한다.)

똥색이 된다는 답변을 듣고 싶어서 백번도 더 질문... 하... ㅋㅋㅋ

색을 섞는다는 것에서 진화해서 이제 모든 걸 섞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고 있다.
예를 들면 토스트와 우유를 섞으면 뭐가 되냐.. 소세지랑 국이랑 섞으면 뭐가 되냐... 젤리랑 된장국이랑 섞으면 뭐가 되냐... 그래서 맛없는 우유, 맛없는 국, 맛없는 젤리된장국이 된다고 했더니 또 거기 꽂혀서 모든 맛없는 음식의 조합을 만들어 물어본다. '맛없는~' 답변 시리즈를 듣고 웃기 위해서.. 하..

그리고 오늘은 웃는 거랑 혼내는 거랑 섞으면 뭐가 되냐고 물어봄.ㅋㅋ
의도가 궁금한 질문이었고 그 질문을 하며 날 쳐다보는 귀여운 표정에 그저 웃고 말았다.

두 살, 세 살 때보다 훨씬 확장된 어휘력과 언어구사력을 지녔지만 아직 편견 없이 언어를 사용하는 네 살의 언어는 참 재미있다. 아무리 설명해도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어려운 단어를 반복해서 또 알려줄 때나 똑같은 책만 10번째 읽을 때는 빡침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점점 취향이 생기는 때라 그렇다고 하니 이해해 줘야겠는데 쉽지 않다. ㅋㅋㅋ
지금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을 한 번씩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막 두 돌이 되어서 두 단어, 세 단어 붙여 말할 때도 참 귀여웠는데 못하는 말 빼고 죄다 하는 꽤 논리적인 네 살의 언어는 신기하다. 아직 글자를 모르니 틀에 갇히기 전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새로 배우는 단어들을 자기 멋대로 적용하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이쯤에게 애매하게 끝내는 아침육아일기.
금요일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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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갑자기 뚝 끝나서 글이랄 수 없고 블로그에 찍찍 적은 수준인데 당시에 틈을 내서 그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짧게라도 적어둔 것 같다. ㅋㅋ

오늘 읽어보니 네 살의 아이에게 저런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정말이지 '오래되지 않은 과거'인데, 아이는 이제 고작 2학년인데, 4년 전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말을 배우는 세네 살의 모습은 당연히 이제 남아있지 않으니, 엄빠를 째려보며 말을 할 때 보면 안 귀여운 순간들도 많지만, 저 짧은 에피소드라고 적어두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는 비슷한 경험이겠지만 나와 내 아이의 경험은 나만이 가지는 나의 예쁜 기억이니까. 이렇게라도 적어두지 않았다면  아이의 예쁜 순간을 떠올릴 것이 스마트폰 속 사진들 뿐일 거다.

그리고 아래는 이 글이 있던 '육아 다이어리' 게시판에 있던 다른 글이다.


<일상의 순간 >

2020년 8월(아이 만 네 살 반 정도 되었을 때)


소중한 젤리들을 엄마가 못찾을 만한 곳(?)에 숨겨놓음
더 소중한 젤리에게 자리를 양보하느라 쫓겨난 소꿉 식기들ㅎㅎ

이런 작고 귀여운 순간들을 보며 아이를 낳아 키워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가 힘들고 버겁다가도 이제 내 삶엔 없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선물해 주는, 내 어린 시절도 떠올려보게 하는 이런 순간들이 있어 버티게 한다.

덧)
인스타그램에 너무 자주 글을 올리다 보면 조금 움츠러들어 자제하곤 한다. ㅋㅋ거긴 분명 내 공간이지만 남들 보라고 올리는 공개된 사생활이라는 느낌이 더 크기에 글을 올릴 때 약간의 자기 검열은 하게 되는 것 같다. 그에 반해 블로그는 오랜 조강지처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비해 자주 오는 이웃수도 적어서 그냥 눈치 안 보고 나 하고 싶은데로 다 쓴다. 어차피 뭔가 쓸 수밖에 없는 태생적 키보드워리어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
키보드워리어 기질을 좋은 쪽으로 발휘하여 언젠간 멋진 작가가 될 수 있길 바라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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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있는 '언젠가 멋진 작가가 될 수 있길 바라며'를 보며 뜨끔했다.

저 글을 쓴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시작도 못한 것 같아서..ㅠ ㅋㅋ



오늘 아이는 감기에 걸려서 학교에 가지 않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서 갤럭시탭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저 4년, 3년 속 글들의 아이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초딩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딸이다.

하루치 해야 할 공부를 다 하면 허용해 주는 30분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엄마! 5분만 더!??"를 외칠 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가 안된다고 하면 정말 안 되는 줄 아는, 입은 삐죽거릴지언정 내 말이 통하긴 통하는 초딩 저학년이다....

오늘에서 4년이 지난 어느 날 즈음

나는 지금의 저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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