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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Sep 11. 2023

무시했던 한국소설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현실에 발 붙은 어른이 되어버려서일까

어려서는 지금의 내 딸처럼 책 좋아하고 많이 읽는 아이였다. 스마트폰 같은 건 없던 시절이고, 넷플릭스며 디즈니 플러스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다. TV만화영화도 공중파에 나오는 세일러문, 천사소녀 네티 같은 걸 챙겨보긴 했는데, 딱 그 시간에 챙겨봐야만 볼 수 있으니, 그 외의 시간에는 공부하러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책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공공도서관이 많지도, 집에 책이 넘치지도 않았고, 어디서 물려받아 집에 있는 책들을 읽고, 가끔 엄마가 책 사보라고 돈을 주면 설레는 마음으로 동네 서점에 가서 아주 신중하게 한 권을 골라오곤 했다. 그렇게 즐기며 하던 독서도 고등학생이 되자 입시 준비하느라 여유가 없어지니 거의 하지 못했다. 가끔 언어영역 지문에 나올만한 한근현대소설이나 독서록 숙제 때문에 고등학생 필독서 목록에 있는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소설을 읽긴 했지만 억지로 읽어서인지 재미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대학에 가고 몇 년까지도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영문학과에 다니며 셰익스피어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것도 읽지 않고, 시험을 칠 때면 인터넷에서 대충 작품해설 같은 걸 읽어보고 가서 말 그대로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소설을 쓰고 나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스물세넷 무렵,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면서, 소위 언론고시 필독서 목록이란 걸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무렵은 도서관에서 살았다. 책을 빌리러 가면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열 권씩 그득그득 최대대출한도까지 빌려다가 낑낑 거리며 들고 갔다가 그중에 두세 권 겨우 다 읽고 반납하길 일 년 정도 반복했다. 그 시기에 문학은 물론 다양한 인문사회 분야 책들도 읽었다. 하다 보니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언론고시는 진즉 포기해 버렸지만 도서관 사랑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집 근처 도서관이 여러 개인데, 아이와 남편 이름으로도 도서대출카드를 만들고, 상호대차까지 하면 한 번에 50권 가까이도 빌릴 수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다 읽지 못한다. 10권 정도를 빌리면 대략 두세 권 겨우 읽고 반납기한이 되거나 연체되어 반납하길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떤 책은 못 읽고 반납했다가 다음번에 두세 번째 다시 빌려서 결국 읽기도 한다. 나는 그 기간을 '책표지와 친해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번 낯이 익은 책이나 한두 페이지라도 읽다가 반납한 책은 기억에 있다가 흥미가 생기면 결국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요즘에는 한국소설을 이전보다 많이 읽고 있다. 대학생 때 읽었던 소설은 주로 영미권 소설이나 고전, 라틴아메리카 쪽 소설이 많았다. 읽다 보니 라틴아메리카 쪽 소설이 내 취향과 맞다고 생각했다. 문화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간혹 나오거나 잘 읽히지 않는 생소한 지명이나 이름이 나와도 상관없었다. 상대적으로 한국 소설은 거의 읽지 않던 시기였다. 그 시절 나에게 한국소설가가 쓴 한국소설들은 이상하게 겉멋 들어 보이고 허세 같아 보이고 재미가 없었고 음울했다. "K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J를 바라보았다."처럼 사람 이니셜을 알파벳으로 하는 것도 이상하게 허세처럼 보였다. 한국 소설인데 꼭 이니셜을 써야겠으면 ㄱ이나 ㅈ처럼 써도 되지 않나? ㅎㅎ 그런 생각도 했다.


그 시절에서 15년 정도가 더 흘렀고 나는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그때에 비해서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다. 이상하게 언젠가부터 꽤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까 20대 때엔 아직 꼬꼬마 애기라서 '한국 어른의 삶'에 대해 이해도가 별로 없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그 시절 소설들이 재미없었는데 10여 년이 흐른 지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성이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때보단 나이 들어서, 둥둥 떠다니던 이상보단 현실에 더 발붙인 '진짜 어른'이 되어서, 그 시절보단 좀 더 공감 가는 부분들을 한국 소설에서 많이 발견해서인 것도 같다.


한동안 한국 에세이를 많이 읽다가 요즘 소설을 많이 읽는 게 내가 에세이를 썼고, 이제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인 것도 같다. 최근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해서 공모전 같은 데 냈다. 남편과 친한 친구 한명에 보여주었는데, 재밌다고 해주었지만 측근들의 후한 평가이기도 하고, 정말로 내가 쓴 소설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 쓰면서 보니 힘들지만 그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또 쓰고 싶어 졌고, 다음엔 뭘 쓸지 고민하고 있다. 단편이 될지, 언젠가 꼭 써내야지 했던 아이템을 가지고 장편을 과감하게 시도해 볼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현재 내 꿈은 내 세 번째 책이 소설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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