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첫 임플란트를 했다.
서른일곱은 만나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이가 약한 건지, 잘 썩는 종류의 치아를 가진 건지 어려서부터 치과에 자주 들락거렸다. 자주 다녔던 곳의 치과 선생님은 내 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썩기 쉬운 이라고 한 적이 있긴 한데 정말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어릴 적엔 치실이 대중화되어 있지도 않았고, 그저 하루 두세 번 이를 닦기만 하긴 했지만, 어른이 되고 치실의 중요성을 알게 된 이후로는 치실도 매일 하고, 심지어 워터픽까지 가끔 쓰는데도 여전히 이는 잘 썩고, 약간의 통증이 생겨 치과를 방문하면 최소 30만 원은 드는 크라운이라든지 브릿지라든지 뭐 그런 치료를 해야 했기에 (뭐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게 특히 더 치과란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는 곳이었다.
20대에 몇 군데 신경치료를 하고 크라운이나 금니 같은 걸 해둔 이들이 이제 10년쯤 되니 수명을 다한 것인지 하나둘 탈이 나기 시작하여 2~3년 전부터 일 년에 두어 번 치과를 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몇십만 원이 깨지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게 최근 치과를 방문했을 때는 급기야 임플란트를 권유받게 된 것이다.
그 어금니는 10년 전쯤에 신경치료까지 하고 위에 썩은 부분을 파내고 크라운을 씌워 놓은 이였는데 최근 아프기 시작해서 갔더니 신경을 제거한 아랫부분에 염증이 가득했고, 크라운 아래 있던 내 원래 이의 남은 부분이 너무 적어 발치 후 임플란트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즘에야 꽤 대중화되고 가격도 내려가긴 했다지만 아직 마흔도 안 되었는데 임플란트라니....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일단 비용이 얼마나 들지 두려웠다.
치과에서는 3가지 옵션을 보여주었다. 좀 저렴한 국산 것은 80만 원, 많이들 하는 오스 X 사의 것은 110만 원, 좀 더 좋은(?) 외산은 130인가 140만 원이었다. 매달 드는 비용이 아니니 어쩌다 한 개 정도 크라운을 씌우는 30 정도의 비용은 큰 무리는 없지만 교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100만 원을 이 하나에 쓰자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렇다고 어금니를 아픈 채로 계속 둘 수도 없고, 발치를 해버리고 몇십 년을 어금니 하나 없이 살 수도 없고? 결국은 하는 수밖에 없겠는데도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치실같은 건 거의 하지 않는데도 충치가 하나도 없다. 정말 선생님 말대로 잘 썩는 이, 잘 썩지 않는 이가 따로 있는 것인가?? 그래서 1년에 한 번 정도 하는 스케일링 외에는 치과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남편과 달리 나는 주기적으로 목돈을 치과에 혼자 쓰고 있었기에 치과에 갈 때마다 왠지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이 들곤 했다. 일단은 며칠뒤 와서 발치를 하겠다고 치과 예약을 잡아놓고 와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임플란트 해야 한대........"
목돈이 들어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남편이 외벌이로 홀로 열심히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인 점이 아마도 클 것이다. 내 하찮은 이 하나에 쓸 100만 원이면 우리 세 가족이 어디 5성급 호텔 가서 2박 3일 호캉스를 하고 와도 될 비용이고, 한우파티를 와장창 몇번 해도 될 비용이고, 아이 피아노학원 9달치 비용이다.
남편도 갑자기 큰돈이 나가게 되어 (아마도) 속이 쓰리겠지만 티는 내지 않았고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않겠냐며 하라고 했다. 잠시 뒤 다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회사에서 제휴한 치과에서 특가로 8월 한 달간 임플란트를 49만 원에 해준다며 강남에 있는 그 치과로 가보라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막상 가서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상담을 받아보니 내 이 상태는 뼈이식이란 걸 해야 임플란트를 할 수 있는 안 좋은 케이스라 뼈이식 비용이란 게 추가되어 67만 원에 할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연세 있으신 분들이나 나처럼 신경치료까지 해버린 이제 더이상은 어쩔 도리 없는 이를 임플란트 하게 되므로 뼈이식을 하지 않고 임플란트를 하는 경우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서 '49만 원'이란 약간의 낚시성 광고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처음 갔던 치과에서 불렀던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기에 거기에서 하기로 했다. 그날 바로 발치를 하고 뼈이식이란 걸 순식간에 해치우고 2주 뒤인 오늘 가서 실밥을 제거하고 왔다. 늘 있던 이 하나가 빠진 텅 빈 공간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이상한 느낌이 익숙해질 즈음인 3개월 뒤 뼈이식한 게 자리를 잡으면 본을 뜨고 이를 해 넣게 된다고 한다.
아직 폭염이 절정인 8월 중순. 3개월 뒤면 11월이다. 11월 초로 예약을 하며 어색하게 텅 빈 이 공간을 채우게 되는 날이 초겨울일 거라니, 다시 이곳에 오게 될 땐 겨울옷을 입고 오게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올해는 유난히 더 시간이 빠르게 가는 느낌이다.
내 이 상태를 보니 앞으로 계속 임플란트를 해야만 될 것 같다. 침울해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치과만 갔다 오면 작아지는 박작가..ㅋㅋㅋ"
최근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던 순간들은 특히나 돈과 관련이 많았다. 돈이 많아 풍족하고 여유롭게 사는 듯 보이는 SNS 속 누군가의 모습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고, 커리어를 계속 이어와 이 나이쯤 되니 번듯한 직함을 달고 아마도 그럴듯한 돈을 벌 주변인들과 나를 비교하고, 고작 외동아이 하나 키우며 살림하면서 (남이 보면 띵가띵가 놀면서 가끔 글이나 쓸 거 같은 삶을 살며) 돈은 못 버는 나 자신을 보며 한심해하는 그 지점들에서 우울이 시작되곤 했다. 임플란트 하나 한 게 뭐라고 남편은 사실 별로 신경도 안 쓰는데(아마도..?ㅋㅋ) 최소한 속은 쓰리더라도 그걸 나한테 티 내거나 하는 사람도 아닌데 괜히 나 혼자 작아지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노라고. 딸 잘 키우고, 글도 꾸준히 쓰고, 살림도 더 야무지게 해 보겠노라고.
치과에 다녀오며 별생각을 다한다. 11월이 오긴 올까 싶은 만큼 겨울은 요원해 보이지만 아마 또 눈감으면 금방일 것이다. 올해 겨울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