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식빵 Aug 17. 2023

서른일곱, 첫 임플란트를 했다.

서른일곱은 만나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이가 약한 건지, 잘 썩는 종류의 치아를 가진 건지 어려서부터 치과자주 들락거렸다. 자주 다녔던 곳의 치과 선생님은 내 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썩기 쉬운 이라고 한 적이 있긴 한데 정말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어릴 적엔 치실이 대중화되어 있지도 않았고, 그저 하루 두세 번 이를 닦기만 하긴 했지만, 어른이 되고 치실의 중요성을 알게 된 이후로는 치실도 매일 하고, 심지어 워터픽까지 가끔 쓰는데도 여전히 이는 잘 썩고, 약간의 통증이 생겨 치과를 방문하면 최소 30만 원은 드는 크라운이라든지 브릿지라든지 뭐 그런 치료를 해야 했기에 (뭐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게 특히 더 치과란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는 곳이었다.


20대에 몇 군데 신경치료를 하고 크라운이나 금니 같은 걸 해둔 이들이 이제 10년쯤 되니 수명을 다한 것인지 하나둘 탈이 나기 시작하여 2~3년 전부터 일 년에 두어 번 치과를 가게 되었는데 갈 때마다 몇십만 원이 깨지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게 최근 치과를 방문했을 때는 급기야 임플란트를 권유받게 된 것이다.

그 어금니는 10년 전쯤에 신경치료까지 하고 위에 썩은 부분을 파내고 크라운을 씌워 놓은 이였는데 최근 아프기 시작해서 갔더니 신경을 제거한 아랫부분에 염증이 가득했고, 크라운 아래 있던  원래 이의 남은 부분이 너무 적어 발치 후 임플란트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즘에야 꽤 대중화되고 가격도 내려가긴 했다지만 아직 마흔도 안 되었는데 임플란트라니....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일단 비용이 얼마나 들지 두려웠다.


치과에서는 3가지 옵션을 보여주었다. 좀 저렴한 국산 것은 80만 원, 많이들 하는 오스 X 사의 것은 110만 원, 좀 더 좋은(?) 외산은 130인가 140만 원이었다. 매달 드는 비용이 아니니 어쩌다 한 개 정도 크라운을 씌우는 30 정도의 비용은 큰 무리는 없지만 교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100만 원을 이 하나에 쓰자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렇다고 어금니를 아픈 채로 계속 둘 수도 없고, 발치를 해버리고 몇십 년을 어금니 하나 없이 살 수도 없고? 결국은 하는 수밖에 없겠는데도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치실같은 건 거의 하지 않는데도 충치가 하나도 없다. 정말 선생님 말대로 잘 썩이, 잘 썩지 않는 이가 따로 있는 것인가?? 그래서 1년에 한 번 정도 하는 스케일링 외에는 치과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남편과 달리 나는 주기적으로 목돈을 치과에 혼자 쓰고 있었기에 치과에 갈 때마다 왠지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이 들곤 했다. 일단은 며칠뒤 와서 발치를 하겠다고 치과 예약을 잡아놓고 와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임플란트 해야 한대........"


목돈이 들어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남편이 외벌이로 홀로 열심히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인 점이 아마도 클 것이다. 내 하찮은 이 하나에 쓸 100만 원이면 우리 세 가족이 어디 5성급 호텔 가서 2박 3일 호캉스를 하고 와도 될 비용이고, 한우파티를 와장창 몇번 해도 될 비용이고, 아이 피아노학원 9달치 비용이다.


남편도 갑자기 큰돈이 나가게 되어 (아마도) 속이 쓰리겠지만 티는 내지 않았고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않겠냐며 하라고 했다. 잠시 뒤 다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회사에서 제휴한 치과에서 특가로 8월 한 달간 임플란트를 49만 원에 해준다며 강남에 있는 그 치과로 가보라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막상 가서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상담을 받아보니 내 이 상태는 뼈이식이란 걸 해야 임플란트를 할 수 있는 안 좋은 케이스라 뼈이식 비용이란 게 추가되어 67만 원에 할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연세 있으신 분들이나 나처럼 신경치료까지 해버린 이제 더이상은 어쩔 도리 없는 이를 임플란트 하게 되므로 뼈이식을 하지 않고 임플란트를 하는 경우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서 '49만 원'이란 약간의 낚시성 광고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처음 갔던 치과에서 불렀던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기에 기에서 하기로 했다. 그날 바로 발치를 하고 뼈이식이란 걸 순식간에 해치우고 2주 뒤인 오늘 가서 실밥을 제거하고 왔다. 늘 있던 이 하나가 빠진 텅 빈 공간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이상한 느낌이 익숙해질 즈음 3개월 뒤 뼈이식한 게 자리를 잡으면 본을 뜨고 이를 해 넣게 된다고 한다.


아직 폭염이 절정인 8월 중순. 3개월 뒤면 11월이다. 11월 초로 예약을 하며 어색하게  텅 빈 이 공간을 채우게 되는 날이 초겨울일 거라니, 다시 이곳에 오게 될 땐 겨울옷을 입고 오게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올해는 유난히 더 시간이 빠르게 가는 느낌이다.

 

내 이 상태를 보니 앞으로 계속 임플란트를 해야만 될 것 같다. 침울해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치과만 갔다 오면 작아지는 박작가..ㅋㅋㅋ"

 

최근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던 순간들은 특히나 돈과 관련이 많았다. 돈이 많아 풍족하고 여유롭게 사는 듯 보이는 SNS 속 누군가의 모습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고,  커리어를 계속 이어와 이 나이쯤 되니 번듯한 직함을 달고 아마도 그럴듯한 돈을 벌 주변인들과 나를 비교하고, 고작 외동아이 하나 키우며 살림하면서 (남이 보면 띵가띵가 놀면서 가끔 글이나 쓸 거 같은 삶을 살며) 돈은 못 버는 나 자신을 보며 한심해하는 그 지점들에서 우울이 시작되곤 했다. 임플란트 하나 한 게 뭐라고 남편은 사실 별로 신경도 안 쓰는데(아마도..?ㅋㅋ) 최소한 속은 쓰리더라도 그걸 나한테 티 내거나 하는 사람도 아닌데 괜히 나 혼자 작아지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노라고. 딸 잘 키우고, 글도 꾸준히 쓰고, 살림도 더 야무지게 해 보겠노라고.


치과에 다녀오며 별생각을 다한다. 11월이 오긴 올까 싶은 만큼 겨울은 요원해 보이지만 아마 또 눈감으면 금방일 것이다. 올해 겨울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아닌 소설 쓰면서 느끼는 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