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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Oct 18. 2021

유쾌한 당근거래남

아재라서 가능한 것

급 추위가 시작된 지난 토요일 아침 9시, 집 앞 초등학교 앞에서 어떤 중년 남성 한 분과 당근 마켓 거래를 했다. 남편에게 좀 크고 취향이 아니라 묵혀두던 새 아웃도어 브랜드 패딩점퍼가 있어 (시세를 살펴본 후) 마켓에 4만 원에 내놓았었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도 아웃도어 브랜드 패딩을 즐겨 입기에 채팅 초반부엔 구매의사를 밝히며 채팅을 건 그의 나이대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진실은 금방 밝혀졌다.

 

며칠 뒤 주말 아침으로 직거래 약속을 한 후 채팅창을 닫으려는데 그의 한마디.


"그때 뵙겠습니다~

신사임당 모시고 가오니 세종대왕님 한분 챙겨주세요..."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결 표시 하나랑 말줄임 마침표 세 개까지 완벽했다.

남편에게 에피소드를 말했더니 이건 '찐'이란다.


그리고 약속일 아침 그는 출발 전 친절하게 네비 사진을 찍어 보냈고, 이런 차를 타고 간다며 자신의 차도 찍어 보냈다.

그리고 약속시간에 무려 8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아재의 트레이드마크, 오래된 SUV 차량이었다.


그는 내가 가져간 세종대왕님을 받아가며 '새 옷이라 하셨으니 볼 필요도 없다'며 쿨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이후에도 '꾸벅'하는 귀여운 이모티콘과 잘 입겠다는 인사, 정성 담긴 리뷰를 잊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활동 배지 하나를 획득했고 매너 온도도 살짝 올라갔다.


온라인 중고거래라는 신세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여기저기 즐거운 거래담을 퍼뜨리고 있는 우리가 흔히 아재라 부르는 그들...

그가 남기고 떠난 신사임당 덕분에 내 지갑과 마음도 두둑해진 채 겨울을 맞이할 수 있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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