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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흰돌 Nov 08. 2023

난임 휴직 이야기 (3) 아무것도 하지 않기


  난임 휴직 시기를 돌이켜보면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하기 싫은 건 피했고 하고 싶은 일은 오랫동안 생각한 뒤 최대한 적게 했다. 책을 읽는 대신 텔레비전을 봤고 세끼를 모두 챙겨 먹는 대신 두 끼만 먹었다. 누가 본다면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약간의 강박이 있는 내게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대신 운동만큼은 매일 같이 거르지 않았다.


  아침에는 요가, 저녁에는 수영을 했다. 둘 다 내가 끔찍이도 못하는 종목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그렇다고 어떤 운동을 잘하냐고 묻는다면 답할 말은 없다.) 하다 보면 아주 조금 나아졌다. 나는 그 '조금'이 그리도 기뻤다.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당시 나는 스스로가 젊어서 괜찮다고 느꼈지만, 사실 건강이란 젊음의 동음이의어가 아니었다. 건강한 상태가 되고 나서야 나는 이전의 내가 건강하지 않았음을 느꼈다.


  생리 주기가 맞지 않는 것, 자리에서 일어날 때 머리가 빙글 도는 것,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 질염과 방광염이 번갈아서 계속되는 것, 전부 '사소하다'며 넘겼던 신체의 문제는 실은 지나칠만한 것이 아니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증상들이 조금씩 사라질 때마다 나는 이전의 내가 잘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삶을 버텨온 것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c) 2023. delight.H(https://www.instagram.com/delight.hee/). All rights reserved.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게 난임 휴직이란 삶을 잠깐 멈추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시작은 비록, 늘 우유부단하여 일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행동력으로 성립된 휴직이었으나 현재의 나는 남편의 이 결단에 대해 누구보다도 감사하고 있다.


  만약 그가 나의 등을 떠밀다 못해 일을 매듭짓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휴직이라는 선택지를 고르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젊으니까, 과배란 몇 번 더 해 보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로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미루었을 터였다.


  또한 남편이 보여준 이 날의 과감함은 이후에도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는 순간이 왔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한 번 맡은 일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살다 보면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가 충돌하게 되는 지점이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열이면 열 '해야 한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덕분에 책임감이 있고 안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된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이것이 지나치다 보니 도리어 스스로를 해치게 되는 지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망가뜨리면 결국 그 책임과 뒤처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이 져야 한다는 것 역시.






  '휴직'을 결정한 순간 내 삶의 우선순위도 정해졌다.


  나는 일보다는 가정이, 내가 뛰어난 성과를 이루는 것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돈과 시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시간을 고를 것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과 스스로 만족하는 삶 중에 골라야 한다면 이 역시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난임 휴직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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