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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흰돌 Nov 10. 2023

우연도 세 번이면 운명이라지

엄마, 우리는 왜 쌍둥이로 태어났어요?


  며칠 전 일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둘째 희망이가 질문을 던졌다.


  "엄마, 우리는 왜 쌍둥이로 태어났어요?"


  나와 남편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잠깐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 다음, 우리 부부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답을 내놓았다.


  "소망이랑 희망이가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라고 하나님께서 쌍둥이로 보내주셨나 보다. 그치?"

  "맞아. 엄마, 아빠에게 두 배의 행복을 주려고 같이 태어난 거야."


  다행히도(?) 아이는 쉽게 납득했다. '너희는 둘이니까 집에 장난감도 두 배'라는 말에 마음이 흐물흐물 풀어진 듯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집에 쌍둥이가 온 건 '세 가지 우연'이 겹쳐서 벌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먼저 첫 번째 우연은 내가 인공 수정을 시도하던 9월에 일어났다. 나를 담당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학회 일로 자리를 비우신 것이었다.


  당시 나는 과배란을 몇 달째 쉬며 시기를 살피고 있었다. 7월과 8월은 미리 잡아둔 여행 때문에 건너뛰었기에 9월에는 웬만하면 시술을 시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9월에는 담당 선생님께서 휴진이 아닌가.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시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루에도 마음이 몇 번씩 이랬다가 저랬다가 바뀌었으나 결국은 시술을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느낌이 좋은 9월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만 인공수정은 진행하되 과배란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과배란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몸이 불편했을뿐더러 휴직한 뒤 몸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과배란 없이도 잘 될 것만 같았다.


   원래의 담당 선생님이셨다면 내 말을 듣고 "네, 그럼 이번엔 과배란 없이 해 볼까요?"라고 답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께서 부재하신 탓에 나는 병원의 부원장이라는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보았다. 그분을 그날 진료 선생님으로 담당한 것이 나의 첫 번째 우연이었다.


  두 번째 우연은 그분의 말에 내가 설득되고 만 것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과배란을 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확고한 신념에 차 있었다. 그러나 부원장 선생님의 신념은 나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이럴 수가!)


  인공수정의 성공 확률은 높지 않고 과배란조차 진행하지 않는다면 성공률은 자연 임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그분은 꽤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설득했다. 그간 내가 진료받은 기록과 본인이 지닌 각종 문서들을 들이밀며 어찌나 열정적으로 이야기하시던지. 내 뒤에 대기 환자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그분은 처음 보는 환자인 나에게 의사로서의 진심 어린 충고를 퍼부으신 거나 다름없었다.


  고집 하나로 남편에게 인정을 받는 내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꾸다니. 나는 이것이 큰 그림을 위한 우연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전과 같은 수준의 과배란을 유도했고, 전에는 고작해야 2~3개 자라던 난포가 이번에는 8개나 자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숫자를 고려해 보면 우리 집에는 세 쌍둥이나 네 쌍둥이가 아니라 그냥 쌍둥이가 온 것을 감사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c)2023. delight.H(https://www.instagram.com/delight.hee/).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 우연은 남편이 우리에게 쌍둥이가 온 까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공수정을 앞두고 정자를 채취하기 위해 방에 들어간 남편은 온 힘을 다해 두 번에 걸친 사정을 해냈다고 한다. 우리에게 쌍둥이가 온 것은 자신이 방에서 남몰래 한 두 번의 노력 때문이라고......


  적고 보니 마지막 우연만큼은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설명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다낭성이 있는 나는, 과배란을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도 그만큼 많은 난포가 자란 것이 처음이었다. 시술이 끝난 다음, 배에는 복수가 차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며 나아지길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시술 8일째, 결국 참지 못 하고 꺼내든 임신테스트기 결과는 '두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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