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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Aug 01. 2021

길 한복판에서 슬리퍼가 망가졌을 때 집까지 오는 법?

자기 전 피식ㅣ2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에피소드를 푸는(?) 기술이 늘었다.


이 사람과 친해진다는 마음으로 전래동화 이야기를 하듯 내 이야기를 해준다. 그럼 상대는 배가 앞을 정도로 깔깔 웃으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만화 같다고 한다. 최근에 만난 어떤 사람은 시트콤이나 일상툰으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코믹하다고, 어디에다가 정식으로 공개하면 대박 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몇 년 전에 스타들의 관찰 예능이 막 뜨는 걸 보면서 VJ가 나를 따라다녀서 일상을 촬영하면 참 웃긴 장면이 나오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닌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해주니까 정말 내 일상이 그렇게 웃긴가? 싶어졌다.


유튜브에 내 일상을 올리면 인위적으로 연출을 해야 하고, 또 그림을 그리는 건 자신이 없기 때문에 브런치가 떠올랐다.


일상에 재미를 못 느끼는 이들이 자기 전 ‘피식’하고 미소지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짧은 특별 기획 [자기 전 피식]을 쓴다.


*1화에서 이어집니다*


2슬리퍼가 망가졌다(2) 


“안녕하세요, 계세요?”


인기척을 내자 부엌에서 사장이 걸어 나왔다. 아까 본 그 중년여자였다. 여자는 무슨 일로 왔냐는 듯한 눈짓을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발을 들어 보여줬다.


“혹시... 테이프 있나요?”


사장은 그제야 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리더니 나보다 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거를 우째야 쓰까잉”


그녀는 발목 다친 사람에게 응급처치해주듯, 슬리퍼와 내 발을 테이프로 칭칭 동여맸다. 아쉽게도 가게에 있는 테이프가 이사박스를 묶는 테이프가 아닌, 문구용 스카치테이프라 접착력이 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걸을 수는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식당에 놀러 올게요”


세상은 아직 아름답구나. 최대한 힘을 내어 사장에게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가게를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100m 달리기를 하듯 질주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테이프가 떼어지면 큰일이므로 발에 있는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경보를 했다.


정말 시트콤의 한 장면 같은 일이 일어났다. 슬리퍼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테이프가 떨어지고 말았다. 한 5분만 더 가면 집인데... 장애물이 계속 나오는 게임 아바타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이 절박해지면 초유의 힘이 나온다고 했던가.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근처에 있는 건물의 분리수거함으로 갔다. 거기에 버리려고 둔 박스가 많았는데 딱 내 발에 맞는 사이즈의 상자가 있었다. 거기에 발을 넣고 검정 봉투로 한 번 더 감싼 다음 신발처럼 신었다.


‘걸을 수 있으니 빨리 가면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겠지?’


내가 서 있던 곳은 오피스 운집지역이었는데, 오후 시간대에는 보통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근무를 하므로 거리가 붐빌 일도 없다고 생각해서 안심했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딱 그 타이밍에 단체로 차라도 마시러 가는 건지 건물 입구에서 열댓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상자를 질질 끌면서 후다닥 주차된 차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차 주인이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는 바람에 내 모습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발에 상자를 끼우고 서 있는 요상한 아가씨가 자신들을 보고 있으니 ‘화이트칼라’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부끄러움에 슬리퍼를 양손에 들고는 맨발로 전력 질주를 했다. 발에 밟힌 돌이 아픈 줄도 모르고 맨발로 횡단보도도 건넜다.


새까매진 발로 집에 도착했다.


당분간 집 밖에 나가지 말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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