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의 아이콘으로 되돌아가기엔 이미 늦어버린 걸까?

'성실'의 진짜 의미는?

by 아임유어엠버



성실(誠實), 정성스럽고 참됨.


성실하다는 것은 ‘꾸준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남들이 보지 않을 때에도 부지런한 것’ ‘진득하게 무언갈 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사전적 의미는 진실하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초등학생 때부터 성실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초중고 개근상을 받았고, 학교에 지각한 적도 거의 없다.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는 꼼꼼히 해갔고 체육시간에 잘 안 되는 동작이 있으면 수업이 끝나고도 계속 연습했다.


그런데 그때는 성실하다는 말이 듣기 싫었다. 우직한 것, 변함없는 것이 주는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다. 융통성있고 요령있는 게 더 매력있고 좋아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성실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느꼈던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신뢰와 기대를 안긴다는 건 나를 고정된 틀에 가두고 괴롭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거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을 때 “성실한 애가 오늘은 왜이러니”라는 말을 듣는 게 싫었다.


나는 일부러 나의 성실함을 감췄다. 잘 할 수 있는데도 삐끗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쉬는 시간 공부를 하다가도 친구가 매점에 가자고 하면 얼른 책을 숨기고 따라나섰다.


어느새부터인가 ‘대충’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게 되었고, 스스로의 능력을 속이는 거짓된 삶을 살게 되었다.


성실하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되어 편했지만, 그만큼의 손해가 따라왔다.


학교 성적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수준을 유지했고, 나를 믿고 기대하는 시선은 불안해하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5년 이상, 10년 이상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이라곤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인 것밖에 없을 정도로 게으르고 포기도 잘하는 의지력 약한 어른으로 성장하고야 말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정성스럽고 참된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소나무처럼 늘 푸르면서 그 자리를 지키는 건 왠만한 의지력 갖고는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홍대 근처 ‘설빙’ 건물 옥상에서 빙수를 먹는데, 마침 건너편 건물 맨 위층에 불이 켜졌다. 그 층은 댄스학원인 듯 했는데 여자 한 명이 아주 정성스럽게 춤 연습을 했다. 멀리서도 그녀의 손 끝, 발 끝에 담긴 섬세함이 보였다.


그때가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혼자 연습을 하는 그녀를 보고선 친구들과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나에겐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하는 것도 어렵고, 안정적인 체력과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직장에서 업무를 해나가는 것도 벅차다.


거짓없이, 나를 속이지 않고 사는 것도 힘들다. 마음과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화도 난다.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기대와 신뢰를 얻는다는 건 직장을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일이라는 것도 이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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