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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쟁 Oct 16. 2019

하필 그때 태어나서

족보 브레이커의 하소연



나는 족보 브레이커다.

빠른 년생이라서.


출생연도는 1988년. 1월생이라 난 '빠른 년생'이라고 불린다. 1988년을 한 단위로 보면 생일이 빠른 게 맞다. 그러나 빠른 88인 내가 87들과 같은 학년일 땐 친구들 사이에서 오히려 느린 아이였다.


족보 브레이커는 신성한 족보를 망가뜨려서 죄인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나 직위로 구분이 가능한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나이'의 기준을 정할 때, 족보는 꼬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이로 서열을 정하는 일이 많은 한국에서는 불분명한 상하관계를 만드는 빠른 년생들을 대부분 싫어한다. 나도 나로 인한 불편함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3~12월생들도 복잡하겠지만 족보를 부수는 1~2월생들도 그들에 못지않게 곤란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거다. 하필 그때 태어을 뿐인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빠른 년생은 '초등학교 조기 입학'에서 비롯되었다. 초중등교육법 제13조에서 취학 연령 기준을 넓게 잡았기 때문이다. 만 6세의 아동은 그다음 해에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한다. 다만 개인 상황에 따라 만 5세나 만 7세의 아동도 그다음 해에 입학하는 것이 허용된다. 1~2월생이든 3~12월생이든 똑같은 기준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할 무렵의 빠른 년생들은 웬만하면 다 조기 입학을 했다. 딱히 발육이 빨라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취학 의무 나이는 만 6세의 다음 해를 기준으로 삼지만, 1년 내외로는 일찍이든 늦게든 입학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제 나이에 입학하는 추세다. '빠른 년생이니까 일찍 보내야만 하는' 건 전혀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빠른 년생이라는 명칭은 점점 사라져 가지만, 나는 아직 안 사라졌다.

고로 빠른 년생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 사람 있어요.






하나. 언니라고 불러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63번, 2학년 때 57번이었다. 인구절벽 시대에 읊으려니 한 반의 인원수부터도 낯설다. 정확한 기준은 가물가물하지만 생일이 1월인 덕분에 거의 끝번호를 받았던 것 같다. 굳이 내가 밝히지 않아도 느린, 아니 빠른 생일인 사실이 수시로 드러났다. 그리고 생일 얘기가 나오면 꼭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넌 한 살 어리니까 언니라고 불러."


태어난 해부터 1살로 치는 한국식 나이를 기준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난 7살에 초등학교 입학을 했으니까 8살인 친구들보다 한 살 어렸다. 그러나 나 역시 음력으로 치면 87년 12월생이다. 띠도 토끼띠다. 즉, 만 나이로는 나도 87 친구들과 동갑이다.


▶ 동갑
: 육십갑자가 같다는 뜻으로, 같은 나이를 이르는 말. 또는 나이가 같은 사람.
(네이버 국어사전)


그래서 난 87들과 내가 같은 나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을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둘. 내 나이는 ○학년


지금 상대가 원한다면 언니라고 부르면서 존댓말까지도 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을 때 기분이 상했던 이유는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자기가 나이가 더 많으니 까불지 말라는 식. 내가 뭐 얼마나 까불었다고. 농담으로 하면야 농담으로 받아친다. 둘 사이에 다툼이 있던 것도 아닌데 먼저 다가와서 꼭 속을 긁는 친구들이 있어서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체제 안에 있는 동안, 난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싫어서 내 나이를 이상하게 설명했다.


"몇 살이야?"

"고2."


동문서답이다. 그렇지만 뜻은 통한다. 질문자에게는 내가 17살이든 18살이든 상관없을 것이 분명하다. '난 너랑 같아.' 혹은 '난 너랑 이만큼 차이가 나.' 정도의 의미를 띠면 충분히 대답이 됐다. 나를 어딘가에 확실하게 소속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테두리에서 떨어져 나가기 싫은 나이였고. 그래서 난 정확하게 고3 때까지 누군가 나이를 물어왔을 때 학년으로 답했다. 물어본 사람이 어른이든 또래든. 그렇게 살살 덮어둔 문제는 공교육 체계를 벗어나면서부터 다시 나를 곤란하게 하기 시작했다.



셋. 빠른 년생 재수생


재수를 했다. 여러 이유로 안 하고 싶었지만 결국 하게 됐다. 나이 때문에 재수를 더 안 하고 싶었다. 그동안 내 나이를 설명할 수 있었던 학년이 바뀌는 거였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족보 브레이커'가 될 것도 분명했다. 십수 년간 나를 따라다녔던 빠른 년생이라는 이름표가 만들어낼 상황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다음해, 그 장면들은 실제로 내 앞에 펼쳐졌다.


대학교에 입학고 나서 학부 총 MT에 갔다. 처음 만난 동기들끼리 자기소개부터 했다. 그해엔 재수생이 꽤 많았다. 재수생과 현역 거의 반반이었다. 한 명씩 말하다 하도 많아서 재수한 사람은 손 들어 보자고 확인했을 정도였다. 소개가 끝나고 숙소 거실에서 다 같이 놀다가 방에 잠깐 들어갔다.


"재수한 87들은 언니라고 하겠지만.."


우연히 밖에서 얘기하는 소릴 들어서 방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빠른 88은 재수를 했어도 언니라고 부르기 좀 그래."


아, 내 얘긴가? 학번도 같고 나이도 같은데 언니 대접을 하기 싫다나. 이해했다. 나도 87들에게 그런 이유로 언니라고 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학교를 잘 다니던 어느 날, 언니의 정의를 내렸던 현역 88 동기들이 재수생 무리에 끼지 않고 지내던 재수생-1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걸 봤다. 상당히 높여서 존댓말을 하는 게 참 깍듯해 보였다. 그것이 언니 대접이었구나!


난 그렇게까지는 부담스러워서 언니 대접을 안 해주는 게 오히려 고마웠다. 재수생-1이 애초에 자기를 언니라고 불러달라고 말을 했던 건지 현역 동기들이 알아서 언니라고 한 건지는 모른다. 재수생-1이 풍기는 분위기가 어른스러워서 그들의 관계가 그냥 자연스러워 보였다. 신기하게도 '언니'라고 불리는 친구들은 다 언니스러웠다. 나는 학번 가까운 현역 친구들과 주로 어울려서 그냥 아는 사람만 아는 언니였다.


그런데 나중에 재수생-1과 친해지고 나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재수생-1도 빠른 88이라는 것. 심지어 나보다 생일이 느리기까지 한(!). 그럼에도 나는 ''고 쟤는 '언니'였다. 첫 단추의 차이인가..? 현역 88들이 재수생-1의 생일까지는 미처 몰랐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언니 대접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그때 나이 구분의 무의미함을 여실히 느꼈다.


그래도 내 태도는 정할 필요가 있었다. 대학교는 고등학교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후에 빠른 89인 동기, 현역 그냥 88이지만 생일은 나보다 빠른 동기, 87이지만 학번이 위인 과 선배, 빠른 87인 동기까지 만났다. 이들 사이에서 난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 다양하게 겪은 상황을 토대로 내 태도를 정했다.


[ 빠른 년생 재수생이 만난 동기들 ]

1.
첫 만남에 재수 여부를 밝히지 않았더니, 나중에 사실을 알고 나서 미리 얘기 안 했다고 어려워하는 동기

2.
그래서 처음 만나자마자 재수했다고 밝혔더니, 빠른 년생이면서 언니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고 멀어진 동기

3.
그래서 아예, 나는 재수를 했고 빠른 년생이지만 나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으니 친구 하고 싶으면 친구하고 언니 하고 싶으면 언니 하라고 선택권을 줬더니 반말했다가 존댓말 했다가 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동기

4.
그래서 차라리, 나는 재수를 했고 빠른 년생이지만 나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으니 다 친구 하자고 했더니 족보 브레이커라고 싫어하는 동기


그래서 결국,


"나는 재수한 빠른 년생인데 다 친구로 지내고 싶지만 늬들 의견도 존중하니 늬들 맘대로 불러라!!!!"


-라고 했다.



넷. '''언니'의 공존


대학에서는 조를 짜서 과제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조원들과 학기 내내 붙어다니다 보니 수업 한 번 같이 들으면 굉장히 친한 사이가 됐다. 즉, 처음 끼운 단추대로 호칭이 지속됐다. 어느 한 수업에서도 4명 구성의 조가 만들어졌다.


조원 1 현역 그냥 88
조원 2 재수 빠른 88(나)
조원 3 재수 87
조원 4 삼수 86


이토록 다채로운 조합이라니. 자연스럽게 그냥 88인 동기는 나에게 언니라고 했고, 재수생 둘은 친구가 됐고, 삼수생 동기는 모두의 언니가 되었다. 여기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냥 88인 동기와 학번이 가까워서 친해졌던 동기들이 다 같이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카오스가 펼쳐졌다.


88-1(조원 1)은 88년 12월생이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며 계속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88-2(학번 가까운 친구)는 88년 3월생이라 나이 차이가 많이 안 난다며 나와 친구로 지냈다.
88-3(학번 가까운 친구 2)은 88년 9월생이라 친구로 지내다가 88-1이 등장하면 아차 하면서 존댓말을 하곤 했다.


10년이 지나며 정착한 양상은 이러하다.


88-1은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해도 여전히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88-2는 처음 그대로 지낸다.
88-3은 초반에 잠시 혼란을 겪다가 반말로 정착했다.


우리끼리 있으면 족보가 춤을 춘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1:1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다. 난 친해진 동기들과 한 명씩 가치관을 비교해 가며 호칭 정리를 했다. 87도 친구, 88도 친구, 빠른 88은 완전 친구. 단, 그걸 원하지 않는 사람에겐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지내기. 혼란은 잠깐이었다. 친해지면 거리낌이 없어져 상관없었고, 멀어지면 다시 볼 일이 없어져 그 또한 괜찮았다. 일률적일 순 없었다. 그래도 '야'와 '언니'는 공존이 가능했다.



다섯. 빠른 년생끼리 만나면?


우리 학교 내에서는 그럭저럭 호칭 잘 정리가 됐다. 학번이라는 테두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테두리 밖에서 새로운 경우의 수가 생겼다.


대학교 입학 전부터 알게 된 동기가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게 반가워서 학교 커뮤니티에서 먼저 친해졌다. 그런데 그 친구는 현역이었다. 즉, 대학교 동기이자 고등학교 후배였던 것. 잠깐, 선배는 선배고 후배는 후배인데....? 이건 또 새로운 문제였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는 지난 일이고 대학교가 앞으로의 일이니 동기 후배와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동기 후배와는 옆 동네에 살아서 자주 만났다. 그러다 동기 후배의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그들 역시 같은 고등학교 후배. 다만 같은 대학교가 아니라서 초반에 나를 어떻게 부를지 또 협의를 해야 했다. 88-4(동기 후배 고등학교 친구)는 동기 후배처럼 바로 친구로 지냈다. 호칭을 잘 협의해야 하는 건 빠른 89인 친구였다. 동기 후배 및 88-4랑 친구지만 나랑은 생일이 1년 차이가 났다. 그래서 89-1은 존댓말까지 하진 않고 지칭할 때만 나를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역시나 친해지니 호칭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년이 지나니 가장 막역했던 동기 후배와는 멀어졌고, 오히려 다른 친구들과 더 가까워졌다. 역시나 호칭은 큰 문제가 아니다.



여섯. 제 의지로 1월에 태어난 게 아닌데요


빠른 년생은 사회에 나가면 한 살이 어려져서 유리하다고들 한다. 가끔 누군가는 그런 이유로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빠른 년생이라서 받아본 혜택이 아마도 없다. 어리다고 무시당한 적은 많아도.


같은 나이를 왜 꼭 그렇게 위아래 분명하게 다 따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서열은 직위에서 생기는 걸로 충분하지 않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겪어온 바로는 구분해도 또 다른 방식으로 복잡하다. 이제 몇 살이냐고 물으면 잠깐 생각하게 된다. 나이를 말할 일이 적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빠른 년생임을 고백하는 순간 재생될 레퍼토리가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늘 '어쨌든 불편하긴 하다-'로 끝난다. 빠송합니다.


나처럼 빠른 88인 한 친구는 이런 상황에 하도 신물이 나서 87로 산다. 생일도 음력으로 챙기고 오히려 욕도 안 먹는다. 그것도 혼란 없이 사는 방법으로는 적절하다 싶다. 


어떤 사람은 빠른 년생이 비난받는 이유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태도를 들기도 한다. 자기 입맛에 맞게 어린 척도 했다가 나이 있는 척도 했다가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내가 유리해질 요량으로 해본 적은 없다. 뭐라고 말해도 욕을 먹길래 상대에 맞춰 이리저리 태도를 바꿔봤을 뿐이다. 그게 그거라 하면 할 말은 없다. 빠송..


나도 내 나이를 한마디로 말하고 싶다. 길게 설명하기도 귀찮다. 눈치 봐 가면서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는 것도 지친다. 만 나이로도 말해봤지만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듣는다. 나도 헷갈리고. 그래서 요즘은 '32.5살'이라고 하곤 한다. 가끔은 '서른둘셋'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이 많은 척을 하고 싶어서라거나 어린 척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냥 1월에 태어났을 뿐이고 그냥 질문에 답하는 거다.


빠른 년생이랑은 친구 안 한다는 사람도 봤다. 세계적 흐름을 따라 만 나이로 통일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실제 태어난 날보다 일찍 출생신고를 한 사람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사회 나오면 10살 내에선 그냥 친구라는 사람도 많다.


그냥, 각자 자기 생각대로 사는 거다.






빠른 년생이랑 친구 하다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약간의 비꼼을 더한 말이다. 사실 난 더 많은 족보를 부수고 싶다. '야'면 어떻고 '언니'면 어떤가. 사랑으로 대하면 좋고 증오로 대하면 싫은 거지. 나이로만 사람 관계를 규정하는 순간 주객은 전도되는 거다. 잘 지내자고 친구 하는 거지, 위아래 서열로 탑 쌓자고 만나는 게 아니니까. 사람 사이에 호칭이나 나이보다는 존중이 더 중요하다.


나는 그냥 나대로 살고 싶어서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이는 원래 추상적인 개념 아닌가. 불분명한 구역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호함 덕에 이 험한 세상에서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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