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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휫먼 Dec 15. 2022

이 셀카도 NFT로 남겨볼까요?

예술을 사랑하는 공학도, 우연히 NFT를 만나다. 노태형 인터뷰.



공학을 전공하긴 했는데,
나는 인생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들이 있는 것 같아.
그런 우연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우리 사진 찍을까?”


논스에서 ‘셀카’하면 단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둘 이상 모였다 하면 핸드폰부터 꺼내는 그. 논스에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초고속 적응한 비법이 ‘셀카’에 있지는 않을까? 노인이 되어서도 논스에 살고 싶다는, 논스의 인간 셀카봉 ‘노태형’을 만났다.


단체 셀카 왼쪽 하단은 그의 고정 위치다.



걸어 다니는 인물 사전,
그가 셀카를 찍는 이유



- 사실 나는 항상 궁금했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셀카를 많이 찍을까?’ (이 궁금증 때문에 인터뷰를 신청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했구나?! (웃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순간을 기록하는 게 좋아. 시간이 지나고 그 사진을 봤을 때, 누구랑 뭘 했는지가 기억나잖아. 그래서 이 순간이 좋다고 느끼면 사진으로 남기려 하는 것 같아.



- 태형이 셀카를 하도 찍으니까, 논스 밥번개방*에 ‘태형 셀카 프레임’이 올라왔었잖아. 나는 그게 너무 웃겼어. 그때 ‘태형 = 셀카’가 논스 내에서 하나의 밈이 되었다고 생각했지.

*논스 멤버 + 알럼나이들이 소통하는 오픈 카톡방.


논스에서 찍은 셀카가 몇 장 정도 돼?


2000장 정도!



야생의 논숙자가 만들어준 태형 셀카 프레임. 어떤 단체 셀카와 합성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이다.



- 헉! 진짜 많이 찍었네. 사진 찍자고 했을 때 거절당했던 적도 있어?


당연히 있지. 사진을 찍히는 걸 싫어하거나, 어딘가 내 사진이 올라가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사진은 좀…’하고 거절해. 당연히 존중하고! 그런데 처음에는 사진 찍기 싫다고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태형, 우리 셀카 찍을까?’하고 먼저 말하기도 하더라!



- 셀카 말고 사람들이랑 빨리 친해질 수 있는 팁 있어?


같이 골프 치는 거! 난 이게 예전에는 술이었거든. 해외에서 유학할 때는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어떻게 하면 재밌고 화려하게 소맥을 말 수 있을지 고민을 엄청 했어. 그런데 이게 계속되면 내가 원하지 않을 때도 술을 마셔야 하고, 건강에도 안 좋잖아. 더 리프레쉬되고 건강한 방법을 찾은 게 골프야. 그런데 내가 골프를 너무 못하더라고? 그래서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



논스 사람들과 다니는 골프가 요즘 태형의 즐거움이다.



경영학회장 스타일, ‘핵인싸’ 포스의 태형은 의외로 공대 출신이다.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전공, 반도체 제조사 SK 하이닉스 근무.


이력만 보면 공대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듯하지만, 그는 직접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 정도로 예술에도 진심이다. 기술과 예술을 사랑하는 그가, 대기업을 박차고 NFT씬으로 뛰어든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어떤 우연들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을까?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시작한 그림,

NFT씬에 뛰어들기까지



- 태형은 그림을 언제 그리기 시작했어?


2015년에 서울시 산하에 외국인들을 가이드해주는 봉사단에서 활동했었어. 경복궁 같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지. 그런데 정말 쉽지가 않은 거야.


교환학생이랑 국가 초청 장학생으로 미국, 중국, 일본에서 살 때도 그 고민이 이어졌어. “한국은 뭐가 유명해? 한국은 뭐가 아름다워?” 누가 물어봤을 때, 한국의 아름다움을 심플하게 보여주고 싶었어. 그 방법 중에 하나가 그림이잖아. 딱 직관적으로 보고 알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대학교 친구랑 아티스틱 듀오를 만들었어. 서울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작업을 했지.



아티스틱 듀오로 활동할 때 작품 전시 모습



왼쪽) 작품제목 : 인상 (impression)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파괴와 창조가 반복되는 도시인 서울. 빠르게 발전한 잠실에서 시민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자연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


오른쪽) 작품제목: 완벽

서울의 세 가지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담은 그림으로 보신각의 전통미,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종로타워, 파괴와 창조가 끊임없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푸르게 자란 자연미를 표현.



- NFT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거야?


미술 쪽을 하다 보니까 오픈씨를 처음 들여다보게 되었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안 예쁜 그림들이 엄청 비싼 거야. 그래서 ‘여기는 내가 모르는 뭔가 있구나.’ 생각했지. 결정적으로 여기에 올인하게 되었던 계기는, 작년 10월 NFT 부산이었어.


그때 의준이가 춤추는 걸 봤었는데, 너무 인상적이었거든. 함께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가치가 너무 한 사람한테 몰려있어 가지고. 무용 전공인데 안무가를 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고, NFT 부산에 와서 발표도 하고, 사는 곳이 심지어 논스인데 엄청 오래됐대. 이 사람은 뭐지?


알고 보니까 나한테 논스를 처음 소개해준 사람과 지인이더라고. ‘이건 시그널인 것 같은데 NFT 해야겠다, NFT 전문가가 되어야겠다’ 생각했어.



- 운명처럼 NFT에 대한 끌림을 느낀 건가? 나는 솔직히 NFT가 아직도 어렵거든. NFT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어?


두 가지가 핵심인 것 같은데, 첫 번째는 크리에이터한테 너무너무 좋은 기술이야. 왜냐하면 예전에는 콘텐츠를 발행해서 상업화할 때, 어떤 사람한테 팔면 그게 끝이었거든. 그 고객이 그 그림을 다른 사람한테 팔든, 어떻게 하든 추가 수익을 볼 수 없잖아. 그런데 이걸 NFT로 만들면, 이 고객이 다른 사람들한테 팔아도 중간중간에 크리에이터한테 거래 수수료로 로열티 피가 떨어지니까.


나는 이게 엄청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 결국 크리에이터들이 이익을 볼 수 있는 곳에 창조력 있는 사람들이 모이겠지. 이전에는 그런 기술이 되게 협소했어. 그리고 그런 플랫폼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수료가 되게 높았고.


그래서 두 번째로 NFT가 좋은 이유는 수수료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 오픈씨는 거래 수수료가 2.5% 잖아. 내가 이전에 일했던 Pala(국내 1위 NFT 마켓플레이스) 같은 경우에는 수수료 1%였다가 아예 0%로 없앴고.

유튜브, 틱톡 같은 곳들은 수수료를 엄청 많이 떼. 이런 중앙화 된 플랫폼에서 벗어나서, 두 가지의 장점을 가진 블록체인 기술이 나온다! 그럼 크리에이터들은 여기에 쏠리게 되고, 파워가 커진다고 생각했어.



- 논스에 들어왔을 땐, 이미 SK하이닉스를 퇴사할 생각이었다고 들었어. 그땐 어떤 마음이었어? NFT씬에 확신이 있었던 건가?


인생에서 번복할 수 없는 중요한 결정들이 있잖아. 그런 결정 중에 이게 하나였지.


‘내가 퇴사하고 싶기는 한데 이거 퇴사해도 되는 건가? NFT가 좋긴 좋은데 정말로 괜찮을까?’ 주변에 그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더  고민이 됐어. 하이닉스에 있을 때는 대부분 안정을 조금 더 추구하는 형이었거든. 그래서 좀 용기가 없었지.


그런데 논스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용기잖아. 함께 있으니까 용기가 생기더라고. 그래서 오자마자 바로 그 다음 달에 퇴사했지.




국가 초청 장학생인 내가,
논스 재수생?



- 논스엔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어?


원래 2018년부터 논스를 알고 있었어. 미국에 있을 때, ‘Tech for Korea’라고 한국 스타트업을 영어로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있었거든. 그때 프로젝트 같이 하던 친구가 3호점 사람들이랑 같이 놀던 사이였어. 논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재밌기는 한데, 좀 이상한데?’ 생각했어. 술 먹고 노는 곳이라길래 약간 방탕한 곳이구나 생각했지. ‘기회가 되면 가야지~’ 정도로 생각했어.


그렇게 알고만 있다가, 2021년에 내가 그린 그림을 전시했었거든. 그때 왔던 게스트 중에 한 분이 논스에 대해서 한 번 더 소개하더라고. 그런데 또 너무 바빴어. (웃음)



- (논스에 대체 언제 가는 거지…)


결국 실제로 갔던 건 작년 연말이야. 10월쯤에 현곤이가 논스에 입주한다고 인스타에 올려서 ‘이 사람도 가네?’ 생각하고 바로 DM 때렸거든. (*둘은 카이스트 동문이다.) “처음 뵙는데, 혹시 논스 놀러 가 봐도 되나요?”


그래서 현곤이 초대로 논스에 갔었고, 가자마자 여기 반드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 오오, 그래서 한 번에 붙었어?


사실 나는 재수생이야.

중간에 생략한 스토리인데, 현곤이한테 연락하기 전에 8월쯤에 지원서를 넣었었거든. 그땐 논스 지원서를 구글폼으로 내는 형식이었는데, 굉장히 많은 내용을 요구했어. 문득 논스 쪽에서는 알려주는 게 없는데, 내 정보는 너무 많이 요구하는 느낌이 드는 거야.



물음표 살인마 논스 지원서



- (웃음) 그런 느낌이 있지.


그래서 ‘얘네들 너무 양아치 아닌가? 너네가 공개 안 하면 나도 공개 안 할래!’ 하면서 나를 유추할 수 없게 익명으로 글을 적었거든. 그랬더니 떨어지더라고. 진정성이 없다고. (웃음)


그런데 현곤이 소개로 실제로 가보니까 너무 좋더라. 그때는 실명을 써서 나에 대해 되게 디테일하게 소개했지.



- 왜 논스에 들어오고 싶었어?


작년에 내 작업실에서 소규모로 모이는 문화살롱 같은 걸 운영하고 있었거든. 아쉬웠던 게 첫 번째로 사람들을 모으고 모임을 어레인지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어.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밌는데, 새벽이 되면 다 막차 타야 되잖아.


나는 17살 때부터 쭉 기숙사에 살았었고,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밤새 이야기하는 문화가 좋았었거든. 그런 장소에 대한 갈망이 좀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논스에 오자마자 되게 좋고, 편했지.



- 기숙사 경험 덕분에 더 논스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겠다. 처음에 논스 들어왔을 때 어땠어?


지금까지 있던 곳이랑 좀 달랐어. 사람들이 마구 퇴사하고, 옆에서는 막 축하를 해주고. 그다음 여기서 프로젝트들이 되게 빠르게 많이 생기고, 성장 속도도 되게 빠르더라고. 똑똑하고, 책임감 있고, 선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와, 여기 멋진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호점에서 사람들이랑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그런데 그게 하루가 아니고 한 일주일 동안 계속 그랬어.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과 매일매일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그때 너무 감동이었지. 내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곳이 되겠다고 생각했어.



- 이야기 들어보면, 논스가 너무 좋고 빠르게 적응한 것 같지만, 온보딩 가이드를 새로 만들 때는 뭔가 논스에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던 거지?


맞아. 앞에도 말했지만, 내가 익명으로 지원서를 썼을 때는 외부에서 논스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논스에 들어와서도 이호점 자체는 너무 따뜻하고 좋은데,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랑 연결되기 어렵다고 느꼈고.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내성적인 사람들은 진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생각을 캐리랑 이야기하다가, ‘이거 한 번 개선을 해보자!’ 하고 새로운 온보딩 가이드를 만들었지.


논스 인싸 태형이 알려주는 논며들기 팁




60대까지 인생계획 끝.

70대는 명왕성 논스에서 보낼 계획이라고?



- 전해 듣기로 60대까지의 계획이 있다고 하던데, 진짜야?


맞아. 21살 때 60대까지 10년마다 뭘 해야 하는지 적어놨어. 자서전을 미리 써놨거든.


20대 때는 막연하게, 세상이 어떤지 좀 보자! 기술강국,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 섬세한 손놀림, 장인 정신이 있는 일본 같은 곳을 보면서 안목을 키우고, 호연지기*를 키우는 게 20대 목표였어.

*호연지기 : 도의()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30대 때는 사람들의 불편이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아마 창업을 하거나, 크립토에서 DAO의 형태로 접근해보고 싶어. 내 인생 계획에 ‘30대 초반에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적인 사업을 준비한다’가 적혀있거든. 그걸 따라 해야지.



- 실제로 21살 때 적은 대로 살고 있네? 다 들어보고 싶어. 40대는?


30대 때는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어. 40대 때는 10년 동안 전문성을 확보했을 테니까, 여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응용해서 다른 분야의 사업을 해보기.


그다음 50대 때는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규모 있게 사업을 펼치면서, 교육 관련된 일에 신경을 쓰고 싶어. 60대에는 후계를 위해서, 다른 후배들을 위해서 교육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야.



70대…? 지구 안 망하려나



- 그리고 70대 때부터는 이제 일이 없는 거야? 아니면 마흔 살쯤에 그때 목표는 다시 적는 건가?


70대는 이제 열심히 노인 논스에서 함께 해야지.



-  진짜 ‘논인정’이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도 블록체인이라는 게 지금의 콘셉트처럼 있을까?


그때는 블록체인이 누구나 쓸 수 있는 형태가 되어 있겠지. 지금의 인터넷보다 훨씬 더 대중화될 수 있을 것 같아.


내 생각에 노인 논스는 명왕성쯤에서 살 것 같아. 화성을 정복하고 이제 태양계 끝으로 가야죠.



- 엄청 미래까지 계획을 했네? 다시 돌아와서, 30대인 지금의 목표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거잖아. 세상에는 엄청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해결하고 싶은 걸 지금 발견했어? ‘어떤 사람’의 ‘어떤 문제’ 해결하겠다는 게 일의 본질이랑 엄청 가깝잖아.


좋은 문제를 찾는 게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 같거든. 여기에 올인해야지 하는 문제는 아직 못 찾았어. 일단 여러 가지를 보면서, 천천히 고민해 보고 있어. 속도도 중요한데 방향이 정말 중요한 것 같거든.


여기에서 진정성이 결여되면 계속 의문이 들더라고. ‘이거  하지? 이거    있나?’

이렇게 안되려면 진정성 있는 것을  찾아야지. 그래서 요즘은  머리를 맑게 해주고 있어. 꾸준히 운동을 하고, 새로운 장소에 가보고!




우연을 발견할 수 있는 힘



- 태형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어?


나는 자유가 되게 중요해. 자유와 신뢰. 또, 이게 블록체인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삶의 측면에서 자유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사람들이랑 같이 할 수 있는 것. 논스는 그런 면에서 용기를 많이 주는 것 같아.


논스라는 공간이 아니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 그게 어떤 형태가 될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들이 자유의 가치에 많이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자유롭게 바꿔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태형의 인생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고 한다.


<연금술사>는 주인공인 산티아고가 피라미드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길을 알려주는 보석들에 의지하지만, 서서히 보석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것들, 그다음으로는 주변 사람들을 의지하면서 방향을 찾아간다.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때로는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우연들. 태형은 NFT라는, 논스라는 우연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주변을 살피고 귀 기울일 줄 아는 태도’였을 것이다.




논스에서 많이 느끼는 것은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거야.
어떤 특별한 사람도 생각보다 평범하고,
어떤 평범한 사람도 생각보다 특별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




작성 김지현(Whitman)

편집 김지현(Whitman)


태형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Instagram @tnoh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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