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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 Mar 09. 2021

넌 늘 사랑스럽고 빛났어

바쁜 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착각도 했었다.

오늘은 은영 언니가 3년 동안 공들여 완성한 전원주택 집들이를 하러 가는 날이다. 김천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주 내내 언니를 볼 생각에 신이 나있었다. 대전역에서 김천구미역까지 KTX를 타자 20분 만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왜 자주 못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바빴었나 싶었다. 여유가 없었던 만큼 언니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도 식었던 것 같다. 바쁜 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착각도 했었다.


역으로 마중 나온 언니를 반기는 나의 마음이 전보다 한결 편하고 반가웠다. 언니 집에 도착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언니가 준비해 놓은 맛있는 브런치와 커피를 즐기는 시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나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0년도에 나는 당장 퇴사를 할 것처럼 자기 계발에 몰두했었다. 친구들도 가능하면 만나지 않았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살았었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볼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보였다. 계속되는 비교 속에 나는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를 사랑해주지 못해서 힘들었던 시간들을 언니에게 고백했다. 이야기를 마치자 언니가 입을 열었다. 


"빛나야, 그랬구나. 어쩐지 최근에 네가 항상 바빠 보였어. 저번에 본사 출장 와서 잠깐 만났을 때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말로는 다 잘 지낸다고 하는데 표정은 그게 아녔거든"


"그랬구나 언니. 그게 다 보였구나. 나 그동안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었더라고. 사실 꽤 힘들었어. 

다행히 우연히 글을 쓰게 되면서 나를 조금씩 알게 되었어. 

자존감 관련된 책도 읽게 되고 말이야. 예전에는 쳐다도 안 봤을 그런 부들부들한 책을 내가 읽고 있다니까.

언니 알지? 나는 뭐 '자존감 수업'? 그런 책은 전혀 읽을 필요 없는 사람이었잖아. 자존감이 낮다는 건 딴 세상 얘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김윤나 작가의 '자연스러움의 기술'이나 '말 그릇' 이런 책들을 읽다 보니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였더라고"


"그랬구나. 빛나야, 너도 알지? 언니가 너를 거의 동경하듯이 좋아했잖아. 자신감 넘치고 뭐든지 잘하고. 근데 네가 이런 얘기를 할 줄은 정말 몰랐어.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거야?!"


"아마 내가 회사를 엄청 빨리 때려치우고 싶었나 봐. 그래서 너무 자기 계발에만 몰두했었어. 잘 살고 있는데도 스스로 칭찬 한 번 안 해줬었네. 그리고 사실,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도 했더라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성취'에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아.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어서 그런가 봐.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은 못 보시고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을 많이 해주셨었거든. 그냥 혼자 그런 부분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했어.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이 뭔지 잘 몰랐었던 것 같아"


"그래. 빛나야, 지금이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이니. 언제나 언니는 너를 보면서 배워. 

우리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자"


"맞아. 그리고 내가 느끼는 기분과 감정이 모두 옳다고 인정해주니까 정말 좋더라고. 오히려 감정을 인정해버리면 더 요동치지 않더라고.

내가 얼마 전에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조금 우울하더라고. 

전에 같으면 '왜 우울하지. 기분을 좀 풀어야 되나? 왜 그러지. 부족한 사람처럼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을 거야. 우울한 감정은 나쁘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내가 우울하구나. 그럴 수 있지. 그래 우울하구나 빛나야' 하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정말 편해졌었어. 그리고 할 일을 차분히 해나갈 수 있었어"


"그렇지. 언니도 공감해. 감정을 다 이야기하고 받아주면 돼"


"아. 좋다. 언니랑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더 잘 알겠어. 정신없이 지내는 삶이 행복한 게 아니었어.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하루들이 얼마나 좋은데!"


"맞아. 진정한 행복이지. 우리 빛나 이제 즐길 일만 남았네"


"그러게. 그렇더라고. 너무 신나. 마음이 진짜 편해"


"응. 그렇게 보여"


"에효. 어찌나 나를 힘들게 닦달하며 살았던지"


"오랜만에 만나도 늘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이면 됐어. 이제 힘들면 힘들다, 좋으면 좋다고 이야기하자"


"그러게. 지금이라도 내가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야"


"빛나는 정신은 원래 차렸었지. 잠시 너를 잊었을 뿐이야. 

과거의 빛나도 얼마나 사랑스러웠는데. 언니는 다 기억해. 

넌 늘 사랑스럽고 빛났어"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이 1년 정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 동안 마음이 외롭기도 했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무언가를 특별하게 잘하고 싶었고 그걸로 돈도 벌고 싶었다. 자신감이 넘치던 예전과는 다르게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었다. 

이렇게 힘들게 성장하려고 아등바등 대면서 얻은 건 무엇일까?

먼저, 책을 쓰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간들 덕분에 자존감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이 꼭 특별하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알쓸신잡 2'에서 뇌과학자 동선 박사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 


"갑각류는 탈피를 통해 성장하는데 탈피 직후에 갑각류는 아주 약합니다. 탈피 직후에는 말랑 말랑해서 누구에게나 잡아 먹힐 수 있고 상처 받기 쉬운 순간이에요. 갑각류가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직 내가 가장 약해질 때인 거죠. 상처 받을 수 있고 약해질 수 있는 그 순간인 거예요. 

저는 인간의 몸은 척추동물이지만 마음은 갑각류가 아닐까 생각해요. 

정말 내가 성장하는 순간은 죽을 것 같고, 잡아먹힐 것 같고 그냥 스치기만 해도 상처 받을 것 같은 시간들이에요. 그때 우리는 크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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