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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다 May 19. 2021

회식 vs 내 시간

'좋은것'만 영원히 남는다

팀장님이 부른다.


“조차장~”


“네~ 팀장님”


회의 테이블로 가보니 정차장님도 앉아 계신다.


“조차장, 5월 17일 저녁에 시간 되나?”


“아~ 네~ 무슨 일 있으세요?”


“다른건 아니고 본부장님 모시고 식사 한 번 하려고. 왜 저번에 얘기했던 안창살 맛있다던 소고기 집 가보게”


“아~네~ 그러시죠”


“우리가 다른 차장을 데리고 갈까 하다가 조차장이 적임자더라고. 우리가 저녁을 먹고 스크린골프를 치러 갈껀데 스크린장에 같이 안가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이 조차장이야”


“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크린 골프를 셋만 치셔야 되는거에요?”


“아니, 다른 차장들이 다 스크린 골프를 못쳐. 다른 차장들 중에 한 명을 데리고 갔다가 괜히 밥만 먹고 들여보내기가 이상하잖아”


“아~ 그 말씀이군요. 제가 스크린 골프장에 안가고 바로 집에 가는게 아무래도 덜 어색하겠네요”


아무래도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 내가 다같이 밥먹고 헤어질 때 집으로 들여보내기가 자연스럽긴 했다.

하. 그나저나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을 못하고 또 승낙해버렸다. 시간 되냐고 물어보면 선약 있다는 대답이 왜이리 어려울까.

어제 점심 때도 그랬다. 뜬금없이 나가서 짬뽕 먹자는 팀장님의 얘기에 차장 3명이 붙잡혔다. 고스란히 점심시간을 모두 허비했었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를 애써 생각하느라고 팀장님은 맛집을 자주 데려가신다. 회사에서 맛집보다 중요한건 자유시간이었다. 팀원들을 잘 챙겨주시는 팀장님이 감사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개인시간을 침범하는 이벤트가 많아질 때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자기 잡힌 회식은 일주일 뒤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식에 가기 싫은 마음이 눈덩이처럼 쌓였다. 아무리 스스로 달래고 설득하고 합리화를 시켜도 마음은 쉽게 녹지 않았다. 그 눈덩이는 시간이 갈수록 불어났고 스트레스는 그만큼 무거워졌다.


회식 3일전, 집에 놀러온 친정엄마에게 푸념을 했다.


“아~ 엄마, 나 월요일에 회식있는데 너무 가기 싫다. 아~ 미치겠어~”


“아~ 그래? 무슨 회식인데?”


“몰라~ 본부장님이랑 팀장님이랑 다른 차장님이랑 넷이 저녁 먹재”


“본부장님이면 팀장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야?”


“아니~ 팀장 위에 기술처장님있고 그 다음이 본부장. 우리 기관에서 제일 높긴 하지”


“그래? 넷만 하는 회식이면 빠지면 안 될 것 같은데. 또 다른 사람 구하려면 힘들잖아”


“그렇긴해~”


“가서 몸보신한다고 생각하고 갔다와~”


“그럴까? 아~~~ 가기 싫어어엉. 에이, 그래야겠다. 가서 소고기나 실컷 먹고 와야지~”


다음날, 회식이 다시 가기 싫어졌다. 너무너무. 예전에 이만큼 회식이 가기 싫은 적은 없었다. 회식 가기 싫은 마음을  남편에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아~ 오빠~~~ 나 미치겠어. 이번에 회식이 왜이렇게 가기 싫지?”


“아~~~ 우리 여보. 회식 가기 싫다고 해서 알고는 있었는데 스트레스 많이 받는구나. 누구누구 참석하는건데?”


“뼛속까지 회사 사람인 본부장님이랑 뼈뼛속까지 일벌레인 우리 팀장님이랑 뼈어엇속까지 회사에 충실한 정차장님. 아주 사골이 우러나오겠어”


“아~ 멤버가 제대로네. 다 회사를 사랑하는 분들이네. 진짜 가기 싫겠다”


“응~ 오빠, 너무 가기 싫어. 하. 아프다고 하고 내일 쉰다고 할까? 회식도 못간다고”


남편에게 얘기하기 전, 이미 팀장님께 아파서 출근 못하겠다는 메세지를 두 번이나 썼다가 지웠다.


“그래, 여보~ 가지마~ 스트레스 받으면서 갈게 뭐 있어”


“그러게~ 아~ 저번주부터 회식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 받네. 그냥 감기기운 있어서 재택근무하겠다고 말씀 드려야겠다”


팀장님께 카카오톡을 보냈다.


‘팀장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시나요? 제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내일 재택근무를 해야겠습니다. 회식도 참석 안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ㅠㅠ’


‘ㅇㅋ 내일 연락주세요’


휴.  드디어 진정이 되었다. 큰 문제가 해결된 느낌이었다. 메세지를 보낸지 4시간쯤 흘렀을까. 왠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마음이 또 오락가락 하는게 짜증이 났다. 이 회식 때문에 소중한 내 주말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었다. 노트를 폈다.


“회식 vs 내 시간”이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먼저 회식을 가기 싫은 내 입장에 대해서 정리를 해봤다.

1. 재미없는 사람들이다. 본부장님, 팀장님, 정차장님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평소에 일 아니면 회사 사람들 얘기만 한다.

2. 팀장님이 평소 회의를 길게 하셔서 똑같은 얘기를 지겹도록 들었다. 더 새로울 것이 없다.

3. 스크린 골프 치러 안가고 집에 보내기 좋은 멤버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4명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끼워 넣는 것 같다.

4. 지루한 얘기를 몇 시간 동안 들어야 할 상황을 대면하기 싫다. 내 시간이 아깝다.  


반대로 나머지 세 사람의 입장에서 회식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1. 인원이 추가 되면 즐겁다.

2. 젊은 차장이 함께 밥먹겠다고 참석해주면 고맙다.


노트를 쓰다보니 회식의 장점이 몇가지 있었다.  

1. 비싼 소고기를 먹는다. 게다가 금강 이남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 집이라니까 살짝 궁금하다.

2. 윗 분들에게 결재를 받기가 쉬워질 수 있다.

3. 사무실에서 회사를 열심히 다닌다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회식을 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 내 모습이 비겁해보였다. 회식에 안가게 되면 팀장님이 새로운 멤버를 추가 해야했다. 팀장님께 수고를 더해드리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회사에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도 많이 있었다. 결국, 출근도 하고 회식도 가기로 결심을 했다.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진짜 편해졌다. 함께 가는 세 사람이 재미없다면 내가 재밌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자며 다짐을 했다.


다음 날, 회식을 마치고 돌아왔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없었으면 이 세사람은 어색했을 것 같다. 먼저 본부장님과 팀장님이 서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외로 정차장님이 윗분들 앞에서 말이 없었다. 식당까지 가는 길에 말이 많지 않았다. 의미없이 떠도는 말들이 조금씩 오고 갔다.

어제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을 봤었다. 세계 최고의 인터뷰어 칼 퍼스먼의 대화의 비결이었다. 좋은 인간관계의 비밀이기도 했다.


“뭔가 충격적이고 독특한 것을 주려고 애쓰지 마라. 그냥 따뜻하고 좋은 것을 주면 된다. ‘좋은 것’만이 언제나 영원히 남는다”


회식 때 실천해 보았다. 차 안에서 그리고 식당에서 어색함을 뚫고 내가 던진 말은 이런 것들 이었다.


“본부장님, 피부가 정말 좋으시네요. 따로 관리하시는 비결이 있으세요?”

“본부장님은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하세요?”

“본부장님, 과장대리들이랑 티타임 가질 때 어떠셨어요? 뭐 재밌는게 좀 있었나요?”


시시콜콜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많이 묻어있는 질문들이었다. 본부장님이 활짝 웃으셨다. 즐겁게 대답해 주셨고 분위기는 좋아졌다. 뻔한 회사 얘기가 아니었다.


최근에 ‘말그릇’의 저자인 김윤나 작가가 세바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주제를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사람의 ‘말버튼’을 눌러주면 말이 많아 질 것이고 우리는 잘 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들으면서 고개가 갸우뚱 했다.


‘그러면 대화를 하는 목적이 뭐야?, 단지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도록 돕는 거야?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대화가 너무 재미 없잖아’


김윤나 작가가 얘기하는 ‘말버튼’이라는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 우리남편의 말버튼은 ‘부동산’이다. 나의 말버튼은 ‘책’이다. 남편의 수다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일부러 ‘부동산’을 주제로 물어보지 않는다. 남편이 요즘 정말로 어떤 부동산 물건과 지역을 관심있게 보는지 궁금했다. 그러면 물어본다. 관심이 없는데 일부러 말버튼을 누른다는 건 식상한 주제로 계속 대화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대화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거나 위로가 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오히려 칼 퍼스먼의 말처럼 오히려 의외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고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중 하나인 마이크 버비글리아도 칼의 이 같은 전략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의 가슴을 공략하는 가장 좋은 전략 하나를 소개해주겠다. 길거리에서 오프라윈프리를 만나면 절대로 ‘토크쇼 잘 보고 있어요!’라고 하지 마라. 대신 ‘키위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라 상대가 예상치 못한 주제를 꺼내는 것이 핵심이다.’(타이탄의 도구들, 220p)’


나이가 최소 15살에서 23살까지 많은 윗분들을 모시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었다. 입사 10년만에 처음 느껴보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자연스러울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적막이 흐르는 차 안에서 나는 나대로 편안하게 있으려고 했다. 단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본부장님은 어떤 사람일지 말이다. 궁금한게 생기면 질문을 하는 정도였다. 그런 진심이 더 자연스럽고 따뜻한 시간을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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