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함은 나를 지키는 방식
병원 갈 때면 유독 말끔하게 차려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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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셔츠를 다려 입고 얼마 전에 산 보테가베네타 벨트도 차보고 힘껏 멋을 냈다.
그리고 수술 전 검사를 받는 날이라 이것저것 많은 서류를 받아야 해서 큰 가죽 가방을 메고 갔다.
병원에 갈 때 다른 날보다 잘 차려입는 이유는
보이는 걸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이다.
스무 살쯤, 코엑스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었다.
감기에 걸려 아셈타워 근처 내과에 갔는데,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 중 쉬는 시간에 병원에 들렀던 터라 앞치마를 들고 갔던 것 같다.
그걸 본 의사는 이렇게 물었다.
"아르바이트하고 왔나 보네."
“충남에서 돈 벌러 왔어요?”
“어디 학교 다녀요?”
어렸을 때고, 처음엔 그 의도를 몰라서
그냥 “네…”라고 답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런데 갈수록 기분이 나쁘더라.
그때 그 무력감과 뒤늦은 불쾌감이 가끔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그를 ‘참 못된 어른’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치마를 들고 가서 아르바이트하는 걸 알았을 테고,
주소를 보니 충남이라 돈 벌러 왔냐고 물은 거겠지,
좀 슬픈 일이다
갓 스물, 사회초년생한테 그렇게 대했어야 했을까?
의사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일본 만화에 나오는 오타쿠처럼 생겼었다(나름의 복수다)
그 일을 겪은 뒤로, 나도 모르게
병원에 갈 때면 조금 더 단정하게 챙겨 입게 되었다.
좋은 가방을 들고, 옷도 깔끔하게 다려 입는다.
보이는 걸로 무시받았으니, 보이는 부분을 잘 차려입자는 나만의 조용한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런 건 아니다.
오늘 만난 의사 선생님처럼, 옷차림보다 나의 상태를 먼저 기억해 주는 다정한 분도 있다.
과거의 나쁜 기억은, 따스함을 느낀 경험으로 덮자.
그리고 스무 살의 나를 감싸 안아주자
마흔이 된 나는 무례함에 상처받기만 하던 어린아이가 아니라,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