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WhtDrgon.#20151025
자 여기 호숫가에 집이 있다.
호수가 있고...
멀리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있고
저쪽엔 넓은 숲이 있고...
작은 부두가 있고...
집이 있다.
이 시점에서 당신은 그 집의 지붕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 집의 재질도 알고 있다.
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 문 손잡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도 알고 있다.
집이 어떤 색인지, 무엇으로 칠해져 있는지.
벽면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창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창문.
그 창문의 커튼이 있는지, 어떤 색인지, 재질인지.
그 창문의 안쪽에 무엇이 보이는지
그리고 그 안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벽면에 무엇이 있는지 부엌이 어느 쪽인지.
문을 보자.
문손잡이를 돌려보자.
이 문을 부술 수도 있고
부순다면 부서진 부분과 나동그라지는 잠금장치의 부속들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지는 풍경.
계단. 계단 벽면. 벽지 혹은 장식물.
사진. 그 사진에 있는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의 물건으로 보이는 사물들.
그리고 계단을 오르는 동안
발에 느껴지는 촉감. 향기. 난간과 벽의 감촉.
계단 코너를 도는 순간의 구조. 방들.
다락방?
그리고 작은 창문.
그 바깥으로 보이는 것들.
기획자는 그 모든 것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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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온 길을 내려가 보면
상상과 함께 자연 발생되어 구축된 모든 것들이
다시금 그 자리에 되새겨지게 된다.
원한다면 부엌의 오븐의 작은 흠집까지도
그 흠집이 생긴 순간을 재현시킬 수 있다.
싸움? 다툼? 해프닝? 아름다운 추억?
바닥에 무언가 '사소하지만 불행의 의미를 가진'
작은 부서진 조각. 그것에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남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 이야기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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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의 집으로 다시 돌아와
집의 옆을 보자. 그 옆에는 짐을 옮기는 탈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보레!
빨간 픽업트럭!
만일 이 물건의 시대상이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맞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당신이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선언'에 맞추어 재설정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부엌은 현대식으로 바뀌고, 집은 페인트가 칠해진다.
거꾸로 수레에 말이 묶여있다면.
마갑으로 무장하고, 커다란 창과 방패를 짊어지고 있다면.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당신의 지식들은 당신을 위해 스스로 세계를 재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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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기획자가 얇고 넓게 다양한 것들을 '봐야만' 하는 이유다.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지식들, 장면, 경험들은 꺼내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스스로 만들어진다.
이 역시 훈련되어 반복을 통해 더 빠르고 훌륭하고 특이하게 재구축된다.
호숫가의 집을 짓기 위해 당신이 기획자로서 건축공학을 전공할 필요가 없다. 벽을 뜯기만 하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호숫가의 집을 소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집의 그 무엇이라도 설명할 수 있다. 그 느낌. 오감. 경험. 최초 그 집이 지어지기 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순간들. 앞으로 일어날 일들까지 모두 알고 있다.
시보레 트럭 혹은 마차를 타고 몰아보자. (이미 당신이 모든 디자인과 재질과 무게를 알고 있을) 양동이에 (마찬가지로 이름은 몰라도 모양새를 다 알고 있는) 크기와 생김새가 다른 물고기 8마리를 담아 싣고, 출발하는 순간,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길이 열리고, 풍경을 보고, 언덕을 넘어 길을 따라가면 첫 마을이 등장한다. 그 첫인상. 첫 번째 길. 그 길에 있는 건물.
건물은 나무로 지어져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물고기가 간판처럼 벽면 옆에 붙어있다. 그렇게까지 예술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은 솜씨로 물고기가 조각되어있다. 이 시점에서 혹시 우리의 '창조 자재' 중에 그것이 없다면 지금 조달해도 된다. ( 구글에서 carving fish signboard를 검색해보자. )
정면에서 바라보고 짐칸에서 물건을 내리고 그 건물의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 이름. 생김새. 성격. 말투. 손짓. 나에 대한 감정.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무시하는, 투덜대는, 멸시하는 부인 혹은 불륜의 관계에 있는 여 종업원. 이름이 궁금하다면 애써 작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주인장과 종업원이 서로를 뭐라고 부르는지 지켜보면 된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들. 내가 건네주는 것. 그리고 받는 것. 화폐. 물가의 수준. 그리고 거기서 그 돈으로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게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아볼 수도 있고, 이 순간 100개가 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도 있다. 그리고 저쪽에 있는 '손님이 들어가면 안 되는' 문. 그리고 그 너머도.
문을 열고 나오면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떤 대화를 하는지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나'에 대해 알 수 있다. 외형이 궁금하다면 가게에 있는 거울을 봐도 되고. 아니면 그냥 시야를 떼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밖으로 나온 당신은 그 삼거리에서 자신의 트럭 혹은 수레에
'무언가 일이 생겼다!'라는 선언만으로도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시간을 돌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그 옆에 목격 자감이 하나 있다. 벌써 당신은 그/그녀가 어린아이인지 술주정뱅이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차림. 너무도 특이한 신체적 특징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름도 알고 있고. 그 특징이 왜 생겼는지도 알고 있고,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할 지도.
마을 전체가 조망되고 크기가 정해지고, 나의 호숫가의 집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는 호숫가의 집주인이 아니라, 4거리에서 그 사건을 지켜본 오크의 코를 가진 금발머리 소녀 혹은 두 다리 무릎 아래가 한쪽은 나무 의족, 한쪽은 쇠 의족인 전신 가죽옷의 술주정뱅이가 될 수도 있겠다.
시간을 정지시킨 채 그때 마을 집집을 돌며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떤 절체절명의 순간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다닐 수 있다. 모든 창문을 드나들며 각각의 집들에 무슨 일들이 있는지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외형뿐 아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대화. 그들이 다투었다면,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 사람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단초를 제공한 그 사건, 그리고 그를 지금의 성격이 아니었을 때, 지금의 성격으로 변화시킨 사건들. 그 대화들. 감정의 기복. 사고관의 변화. 모든 사건들의 순간을 (고심 끝에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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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상들은 반복될수록 강해지고, 더 빠른 속도로 창작되고 재구축된다. 점점 매력적인 이야기들, 사소하지만 치밀한 것들이 반복되어 기존에 선언된 것들에 붙어 이어지고 오직 '나만이 설명 가능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내가 평소에 교양, 소양 어떤 이름으로든 채워왔던 '창조 리소스'들이 저절로 사용되어 이야기와 세계가 나를 안내하게 된다.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면, 허술한 세계는 기획자의 게으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둘러보지도 않은 세계를 가이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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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은 반복을 통해 더 확고해지고 이를 통해 세계의 가이드의 자격을 획득한 기획자만이 음악, 그림, 풍경을 총체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게임 개발 기술자들 전체에게 게임 콘텐츠에 대한 등대가 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그 세계에 어울리는 음악, 색감, 풍광, 분위기, 복식, 디자인, 폰트. UXUI, 규칙, 밸런스의 통일감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일치감만이 게임에게 확고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유저에게 전달될 수 있다.
게임 기획, 세계관의 기획이 아니더라도 무엇을 기획하든 비슷하게 나 자신의 경험들에 스스로 의존하여 기획의 뼈대를 구축할 수 있다.
우리가 더 자세히 궁금해 할 수만 있다면.
김동은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