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아이돌 IP] 보여지지 않은 뒷모습

by 김동은WhtDrgon


이제부터 챕터 5가 시작됩니다. 챕터 5의 전체 소개는 https://brunch.co.kr/@whtdrgon/494 에서 보실 수있습니다.



제18화. [아이돌 IP] 보여지지 않은 뒷모습을 팝니다

1930년대 할리우드, 그레타 가르보는 "I want to be alone(혼자 있고 싶어)"라는 한마디로 신비주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대중은 은막 뒤의 그녀를 상상하며 숭배했고, 스튜디오는 그 신비를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사생활은 철의 장막 뒤에 숨겨졌으며, 대중에게 보여지는 것은 완벽하게 연출된 이미지뿐이었습니다. 스타는 구름 위에 사는 신(God)이어야 했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여야 했으며, 거리가 권력이었고 신비가 가치였습니다.

2024년 인도의 뭄바이, 스타트업 '트루팬(TrueFan)'은 발리우드 톱스타가 팬의 이름을 불러주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영상을 팝니다. 30초짜리 영상 한 편에 수십 달러가 오가는데, 수백만 명의 팬들이 자신의 이름이 스타의 입에서 나오는 3초를 위해 기꺼이 돈을 냅니다. "Priya야, 생일 축하해!" 이 한마디가 평생의 자랑거리가 되어 결혼식 영상에 쓰이고, 친구들에게 자랑되고, 힘들 때마다 다시 보면서 위로받습니다.

90년 만에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변했을까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기술이 변했는데, 1930년대에는 영화관과 라디오만 있었지만 2024년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SNS가 있고 AI가 있어서 스타와 팬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사라졌습니다. 둘째, 세대가 변했는데, 1930년대 관객은 스크린 너머의 신을 원했지만 2024년 Z세대는 침대 맡에서 속삭이는 친구를 원하면서 거리가 아니라 친밀함이 가치가 됐습니다. 셋째, 시장이 변했는데, 1930년대는 극장표를 팔아서 한 번 보고 끝이었지만 2024년은 구독을 팔아서 매달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지속적 관계가 비즈니스 모델이 됐습니다.

결과는 명확합니다. 신비주의는 죽었고, 이제 친밀함의 경제학이 작동합니다. 대중은 이제 구름 위의 신을 원하지 않고, 내 방 침대 맡에서 조잘거리는 친구를 원하면서 무대 위의 완벽함(Public Self)은 기본값이 됐고, 이제 비즈니스의 승부처는 무대 뒤의 헐렁함(Private Self), 즉 '보여지지 않은 뒷모습'에 있습니다.

17화에서 우리는 디지털이 실물이 되는 것을 봤습니다. 100일간 쓴 일기가 양장본 책이 되고, 디지털 카드가 아크릴 스탠드가 되고, 화면 속 성취가 택배 상자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18화에서는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를 보는데, 무대 위의 완벽함이 아니라 무대 뒤의 인간다움을 어떻게 상품화하는지를 봅니다.


1. 세 가지 욕구의 발견

팬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좋은 음악"이나 "멋진 무대"가 아니라, 그것은 기본이고 그 너머에 세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첫째, 관계성을 보고 싶어하는데, 멤버들끼리 어떻게 지내는지, 누가 누구와 친한지,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지, 무대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서사를 궁금해합니다. "A가 B의 푸딩을 훔쳐 먹었대", "C와 D가 어젯밤에 싸웠대", "E가 F한테 고민 상담 중이래" 같은 사소한 정보들이 팬덤을 움직이면서 SNS에서 0.5초짜리 시선 하나를 두고 열 개의 분석글이 나오고, 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천 개의 2차 창작물이 만들어지는데, 공식 콘텐츠 3분보다 팬들이 만든 해석 영상 10분이 더 많이 소비됩니다.


둘째, 사소함을 알고 싶어하는데, 키, 몸무게, 혈액형 같은 공식 정보는 이미 위키피디아에 다 나와 있어서 누구나 검색하면 알 수 있고 희소성이 없습니다. 대신 TMI(Too Much Information)가 가치를 갖는데, "민트초코를 좋아하는가?", "탕수육은 부먹인가 찍먹인가?", "비 오는 날 파전과 김치전 중 뭘 먹나?", "양말을 신을 때 왼발부터 신나 오른발부터 신나?" 같은 사소한 취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친밀감(Intimacy)'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친구 사이에서나 알 법한 정보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팬덤에게는 권력이자 기쁨인데, "나는 오빠가 민트초코 싫어한다는 거 알아. 3년 전 라디오에서 말했거든"이라는 한마디가 팬덤 내에서 지식의 깊이를 증명하면서 "나는 3년 전부터 팬이었어"라는 연차의 증거이고, "나는 오빠를 이만큼 잘 알아"라는 애정의 증명입니다.


셋째, 나만의 것을 원하는데, 100만 명이 같은 무대를 보고 같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똑같지만, 팬들은 "나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원합니다.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고, 나한테만 말해줬으면 좋겠고, 나와 특별한 관계였으면 좋겠는데,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100만 명 중 한 명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원하면서 마치 내가 유일한 팬인 것처럼 느끼고 싶어합니다.


이 세 가지 욕구가 '뒷모습 경제학'의 핵심인데, 무대 위의 완벽함은 이미 충분히 공급됐고, 이제 수요는 무대 뒤의 인간다움에 있습니다.


2. 글로벌 증명: 세 나라, 세 가지 욕구

이 욕구들은 추상적이지 않고 전 세계에서 이미 입증됐는데, 세 나라의 세 가지 사례가 세 가지 욕구를 각각 증명합니다.


첫째, 관계성의 증명인 브라질 LOUD인데, 브라질의 e스포츠 팀 '라우드(LOUD)'는 게임 팀이지만 아이돌처럼 운영되면서 선수들을 대저택에 합숙시키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유튜브로 24시간 중계합니다. 팬들은 경기 결과보다 선수들의 일상에 열광하는데, 멤버 A가 멤버 B의 푸딩을 훔쳐 먹었고, 멤버 B가 화를 냈고, 멤버 C가 그걸 보고 장난쳤고, 멤버 A와 B가 화해했습니다. 이 사소한 서사에 댓글이 폭발하면서 "A랑 B 사이 나빠진 거 아냐?" "아니야, 방금 같이 밥 먹으면서 웃었어!" 팬들은 푸딩 사건을 마치 드라마 보듯 따라가는데, 경기에서 이겼는지 졌는지는 부차적이고 누가 누구랑 사이좋은지가 더 중요합니다. 결과는 LOUD의 유튜브 채널 조회수가 경기 중계보다 일상 브이로그가 더 높아지면서 관계성이 본업을 넘어섰습니다.


둘째, 참여의 증명인 나이지리아 놀리우드인데, 나이지리아의 영화 산업 '놀리우드(Nollywood)'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독특한 방식을 쓰는데, 배우들이 SNS로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영화 내용을 바꿉니다. "팬들이 A와 B의 로맨스를 원하네? 그럼 다음 편에서 연인으로 만들자", "C 캐릭터가 인기 없네? 그럼 죽이자", "D를 살려달라는 댓글이 많네? 그럼 부활시키자" 이런 식으로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팬들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함께 만들고 있다고 느끼고, 배우와 팬이 SNS에서 싸우고 화해하는 것까지 콘텐츠가 되는 '리얼 타임 드라마'입니다. 결과는 놀리우드 영화의 흥행이 개봉 전부터 SNS 반응으로 예측 가능하고, 팬 참여도가 곧 매출입니다.


셋째, 개인화의 증명인 인도 트루팬인데, 인도의 '트루팬'이 증명한 것은 '개인화된 경험'의 파괴력이고, 스타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영상 30초에 50달러가 오가는데 비싼가요? 아니라, 평생의 자랑거리를 사는 것입니다. 스타의 몸은 하나이고 시간은 유한하지만 영상은 복제 가능해서, 스타가 30분 동안 100명의 이름을 녹화하면 100명 × 50달러 = 5,000달러의 수익이 발생하고, 스타는 30분 투자로 5,000달러를 벌고 팬은 50달러로 평생 간직할 추억을 사면서 양쪽이 만족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어서 스타가 한 달에 10시간을 투자해도 2,000명밖에 커버하지 못하는데, 100만 명의 팬이 있다면 500개월, 즉 40년이 걸려서 불가능합니다. 결과는 트루팬이 2024년 기준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팬텍(Fan-Tech) 스타트업이 되면서 개인화에 대한 수요를 증명했습니다.


세 나라, 세 가지 욕구, 하나의 결론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뒷모습"에 돈을 내면서 관계성을 보고 싶어하고, 사소함을 알고 싶어하고, 나만의 것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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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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