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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주 Nov 17. 2022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모르지

식상한 속성

글을 쓸 요량으로 주섬주섬 아이패드와 필기구를 챙겨 도서관에 왔다. 앉으면 바로 쓰윽-써질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첫 문장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있었다. 뭐, 오늘 안 써지면 내일 쓰면 되고, 내일 안 써지면 그다음 날 쓰지라며 음악을 들었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부녀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사실, 사적 대화를 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다. 부녀회에서 관리하는 책놀이터에서 아파트 주민들과 독서모임을 하기 위해 연락했다가 부녀회장의 권유로 어쩌다 부녀회에 가입하여 아파트 부녀회 활동을 간헐적으로 참여 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봉사가 있는 일에 재능을 기부하는 마음으로 가입하였다. 같이 일을 하고, 같이 밥은 먹은 사이이니 생짜 모르는 사람은 아니니 개인적 전화를 피할 이유는 없다.


전화가 온 요지는 내일 부득이 강의를 하는 일이 있는데 사람 머리수가 필요해서 가능하면 사람을 모아서 참여해 줄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내일 약속이 있었거니와 사람을 모아 참여해줄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생각이 일시정지가 되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니 나에게 까지 전화를 했다고 생각하니 무조건 거절하기도 머쓱했다. 내일 약속이 있으나 참여할 수 있으면 가 보겠다고 했는데, 사람을 모아서 올 수 있느냐고 했다. 몇 명이나 필요한 것이냐 물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열명 정도라고 했다. 사람을 열명이나 데리고 다닐 만큼 내가 사회적으로 발이 넓어 보였나?

일단,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모르는 상태가 확실하다. 

“제가 사람을 열명이나 모아서 갈 수 있는 능력의 사람도 아니거니와,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갑자기 잡힌 일정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아~~~ 독서모임도 하시고 하니 가능할 듯해서요.”

독서모임 하는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 여러 명이 모임을 가지니 한꺼번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애써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제가 같이 독서모임 하시는 분 대부분은 일이 있으시고, 설사 주부시더라도 그 시간은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라 짬 내기가 어려울 겁니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아~~~~ 맞아요. 시간이 그럴 겁니다. 내일 당장 급하게 사람을 모아야 해서 여쭸습니다.”



전화를 끊고 내내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할 만큼 우리 사이가 가까운가? 두 번째. 내가 사람을 열명이나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정황이 있었나? 세 번째. 내가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다니니 시간적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 네 번째. 개인적으로 나에게 참여 여부를 물어볼 수는 있으나, 사람을 동원해 달라고 하는 건 무례한 것 아닌가?


여하튼, 나는 내일 못 갈 것이 자명하다. 이미 선약이 있으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사람이 동원되는 자리에 나의 시간을 할애할 만큼 시간과 마음이 넉넉지가 않다.


짧게 나눈 대화 일뿐이지만 각자가 생각한 경계선이, 거리감이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라기보다 일방적으로 내가 느끼는 작은 불편함일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조금 더 가까운 동생으로, 회원으로 생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을 것이고, 나는 그분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하고 왜곡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사람 간의 관계란 늘 어렵다. 아무리 쿨하게 대처한다고 해도 찝찝한 순간들이 도래한다. 나이가 들고, 단단해지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에서 매번 당황한다.


코로나 거리두기에 실패하면 바이러스가 옮겨 붙듯,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거리두기가 실패하면 꼭 상처가 남는다.


p.s 첫 문장부터 막힌 오늘의 글쓰기를 본의 아니게 부녀회장님이 소재를 제공해주셨으니, 다른 의미로는 감사하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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