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무 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올 Jul 05. 2017

그럼 불이 저절로 나겠어요? (1/3)

1.


 병신처럼 살았다. 화재가 날 덮친 그날 이후 내 삶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해 보였다. 병원에 처음 온 인환이 숨을 내뱉을 때마다 그렇게 말해서 더 그래 보였다.


 "아요, 병신아 그러게 왜 술을 혼자 처먹고 구르고. 불구덩이서 자빠지고. 네가 뭐 그, 그 인디아나 존슨이냐. 병신 다됐네 입원하고."


 다행히 병원에선 이주 정도면 접질린 발목도, 유독가스를 흡입한 폐도 꽤 나아질 거라 했다. 그리고, 오늘처럼 친구가 한 두 명씩 병문안 와주면 이주일도 금방일 거라 생각했다. 인환은 불은 어떤 병신이 냈냐는 둥 그렇게 병신만 내뱉다가 돌아갔다. 다음날이 되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인환이 보낸 병신 새끼 뭐하냐 정도의 메시지만 휴대폰에서 몇 번 울렸다.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수진은 오지 않았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도 내가 찾았던 사람은, 나를 찾지 않았다. 혹시나 올까, 도로로 나있는 창에 걸터앉아 밖을 하루 종일 내다보곤 했다. 검은 긴 생머리인 사람이 지나가는 것만 봐도 심장이 바이킹을 타듯 오르락내리락했다. 수진일까 놀라다가도, 놀라 뛰던 심장은 이번에도 죽은 듯이 침묵할 것이었다. 절뚝이며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도 없는 나는, 병실에서의 모든 시간을 창가에서 쪼개고 쪼갰다. 잘게 부서진 시간 사이에 수진을 켜켜이 담아서 씹고 그리고 또 곱씹었다. 남는 것은 원망이었다.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그 새낀 어차피 널 좋아하는 게 아닌데. 바보 같이.

 일주일쯤 지났을까. 성희가 왔다. 오랜만에 온 병문안이었는데도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괜히 성희가 미웠다. 이렇게 된 게 성희 탓 같기도 하였다. 수진도 근우도 오지 않는 걸 보면,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성희가 이미 전할 걸지도 모른다. 성희는 왼손에 들린 거무칙칙한 소화제 드링크 박스를 빈 곳에 내려놓았다.


 "어, 왔어."

 "응. 오빠, 몸은 괜찮고? 내가 좀 늦었네. 바쁜 일이 있었어서요."

 "아, 그래."

 "애들이 걱정 되게 많이 해요."

 "그래? 그런데 별 연락이 없네."

 "교수님 과제다 뭐다 바쁜가 본데, 정말 오빠 걱정 많이 해요."

 "됐어. 불은 왜 난 거래?"

 "몰라요, 그리고 수진이."

 "아니, 그만하자."


 성희 특유의 담담하고 건조한 목소리는 그날 밤 얘기를 내 머릿속에 불러들였다. 그만 그만. 나가 달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듣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꼴을 견딜 수가 없었다. 창가에 붙어 앉아 해가 뜨고 지는 걸 하나 둘 샌 며칠 동안에도, 그날 성희가 했던 말과 내가 느낀 감정을 떠올리지 않았다. 아니,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성희 때문에 기껏 다잡은 마음을 도로 그르칠 순 없었다.


 "근데 오빠, 제가 그날 했던 수진이 얘기……." 기어코. 나는 그 말을 멈추고 싶었다. 말을 잘랐다.

 "하지마."

 "거짓말이에요."


 성희는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마디를 툭 뱉었다. 그 말만 남기고 벌떡 앉은자리를 일어나 뛰쳐나갔다. 긴치마 끝자락이 구렁이가 담을 넘듯 순식간에 문 너머로 사라졌다. 성희를 잡아야 했다. 뭐라도 물어봐야 했다.


 "무슨 말이야. 얘기 좀 해."


 나는 뒤에 대고 소리치며 버선발로 뒤쫓았지만, 성희는 계단을 두세 칸 씩 성큼성큼 내려갔다. 외발로는 역부족이었다.

 절뚝이며 돌아온 내 침대에는, 성희가 놓고 간 소화제 드링크와 소화 안 되는 의문만이 남았다. 더러워진 발을 닦고, 창밖을 볼 여유도 없이 누워서 그날 일과 그날 성희의 말들을 복기했다. 수진이 내게 보인 눈물, 그리고 성희가 말해준 근우와 수진의 사이. 어지러웠다. 성희가 어질러놓은, 잡을 수 없는 말들만 머릿속에 날뛰었다. 어서 밤이 오기만 바랄 뿐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낼 것이다. 며칠만 지나면 다시 학교에 나갈 거라는 희망만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만 버티면, 예전처럼 수진과 인사하고 웃으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만 모른 척하면 나만 모른 척하면, 아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몰라야 한다. 아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총각, 여자 친구야?"

 "……."

 "어휴 아버지 그만 좀 하세요."


 할아버지는 내 마음도 모르면서, 뒤섞여 어질러진 내 마음도. 옆자리 할아버지 딸이라는 아줌마가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사실 수진이한테, 하다 못해도 성희한테는 들었어야 할 말 아닌가. 처음엔 바보 같은 수진이가 원망스러웠지만, 감옥 같은 병원에 갇혀서 다리를 절뚝이는 신세가 된 게 온전히 성희 탓 같았다. 거짓말? 그런 거짓말은 왜 하는 건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말인 건데. 그러면 왜 수진이는 울었던 건데. 아무것도 정리되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른기침만 새벽 내내 병실에 물음표로 떠다녔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