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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11. 2023

그걸 위로라고 하는거니, 덕담이라고 하는거니?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곧 추석이다. 대부분의 유부녀가 싫어하는, 대부분의 유부남이 부담스러워 하는 명절. 우리 부부에게도 명절은 일년 중 가장 피하고 싶은 날들의 으뜸이다. 특히나 눈이나 비, 태풍 따위의 어떤 천재지변도 날 수 없을 것 같은 청량함과 쾌적함만이 가득한 가을 한가운데 있는 추석은 우리 부부에게 늘 무겁다.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일박 이일의 코스를 보내야하는 일정은 번거롭고 성가셨지만 고작 일년에 두번 있는 날이니만큼 이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손 가득 선물을 샀고, 바지런히 부엌에서 일을 거들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동태살에 밀가루를 묻히며 크게 궁금하지 않은 사촌들의 안부를 들었고,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를 반복 청취했다. 그렇게 명절이 지나면, 남편이 좋아하는 쉬림프 피자 한 판과 콜라 한 병을 놓고 낄낄대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우리 나름의 관례였고 고생했다며 남편이 슬쩍 찔러주는 용돈이나 선물도 빼놓을 수 없는 낙이었다. 명절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이벤트 중 하루였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챙길 짐은 너무 많았고 해야할 일의 양은 더욱 넘쳐났다. 아이는 내가 일할 때면 쿨쿨 자고, 고된 일을 마치고 겨우 앉아서 밥 좀 먹을려고 하면 깨어나서 앙앙 울었다. 언제인가 한 번은, 전을 굽다가 문득 얄미운 마음에 몰래 뒤집개를 들고 방에 들어가 아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놀란 아이가 으아앙, 울자 나는 이때다 싶어 요란스럽게 아이를 안아들고 둥가둥가 달랬다. "아이고, 우리 비단이가 깼네. 비단이 달래고 나갈게요." 그러나 무심한 우리 불효자는 엄마를 보더니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달콤한 휴식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그래도 아이가 어릴 때는 괜찮았다. 힘들어도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비단이가 점점 안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다른 국면으로 흘러갔다.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는 비단이는 불을 피워놓은 부엌으로 계속해서 뛰어왔고, 동그랑땡을 집어먹기 위해 뜨거운 후라이팬에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잠시 한눈을 팔면 상에 올릴 사과를 꺼내먹었고 탕국에 든 고기를 뒤적였다. 나는 잠시도 아이에게 눈을 뗼 수 없음과 동시에 음식을 빨리 끝내기 위해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식사를 하기도 전에 기름냄새와 각종 음식냄새에 질려버렸다. 얼음 잔뜩 때려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나 간절했지만, 어른들만 사시는 집 부엌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믹스 커피 봉투만이 뒹굴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식탁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어른들의 '덕담'이 쏟아졌다.


  "비단 에미야, 내가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다만..."

  "애가 덩치는 점점 크는데 어떡하냐. 너가 힘들겠다."

  "그래도 뭐 별수 있냐. 근데 병원에서는 뭐라든? 고칠 수는 있대고?"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저런 애들한테는 이런 게 좋다더라."


  나는 끝없이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대강 대답을 하고, 밀려오는 피로를 삭히기 위해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기름이 잔뜩 묻은 얼굴은 물기가 닿자 심하게 번들거렸고 잔머리는 보기 싫게 삐죽이 솟았다. 잠시 더 있고 싶었지만 우당탕 하는 소리와 비단이를 부르는 고함에 서둘러 손을 닦았다. 오줌 싸는 시간도 사치다. 남편 혼자 질문의 홍수 속에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가야 했다. 천성이 착해 모난 소리를 남에게 뱉지 못하는 남편은 아마도 이 고약한 이야기들을 묵묵히 들으며 네, 네 하고 모시조개처럼 입을 열었다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대부분 아이가 장애를 얻었다고 하면, 양가의 부모님들은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치 조기 발견한 암처럼, 약을 잘 쓰고 좋은 의사를 만나 치료를 하면 대번에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계속해서 묻기를 반복한다. "애는 좀 어떠니? 말은 좀 하고? 좀 좋아졌니? 병원에서는 뭐라든? 다른 병원 가봐야 되는거 아니냐? 어째 애가 차도가 없어." 나는 이 말이 가장 진저리나게 싫었다. 자폐는 나아질 수 있는 병도, 없어지는 병도 아니다. 더 좋은 의사를 만난다고 해서 아이의 근본적인 장애가 바뀌지는 않는다. 장애란 아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결함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노화를 등에 지고 가듯, 비단이에게는 평생을 지고 갈 등짝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러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며, 아이를 일찍 포기하면 안된다는 등의 말을 걱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마구 쏟아냈다. 특히 손주사랑이 유난했던 친정엄마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평생을 기독교로 살았지만 전국의 좋다는 사찰을 돌아다니며 돌탑을 쌓았고 웃돈을 주고 절 기왓장에 아이의 이름을 올렸다. 뭔가 기독교보다 불교가 더 영험하다고 믿게 된 것 같았다. 한번은 어느 스님에게서 부적이 적힌 거북이를 사 와서 몰래 아이의 가방에 넣어두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화가 났지만 그래도 참았다. 위하는 마음이려니 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번 붙은 불은 점점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금쪽같은 내새끼'가 방영된 날이면 어김없이 다음 날 전화를 걸어와 나를 몰아세웠다. "오은영 선생님 만나면 더 심한 애들도 다 해결된다더라, 방송국에 신청해봐라. 병원도 따로 한다는데. 애가 좋아진다는데 자존심이 대수냐." 나는 듣다듣다 수화기에 대고 쏘아붙였다.

 "엄마, 오박사님 만나려면 아침부터 예약전화를 800통은 걸어야 돼. 나는 비단이 키워야 해서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렇게 걱정되면 엄마가 전화해서 예약해줘봐. 십 분에 십만 원쯤 한대. 괜히 쓸데없는 부적사면서 돈쓰지 말고 병원비를 대줘 그럼. 한시간 받으면 백만원 우습겠네."

  예상대로 엄마는 버럭버럭 화를 냈다. 내가 나 위해서 그러냐, 다 네 새끼 위해서 하는 말인데, 한번 시작한 엄마의 악다구니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종국에는 "내가 널 어떻케 키웠는데"라는 진부한 멘트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따다다 울려대는 전화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책상에 머리를 기댔다. 지끈대는 머리에 차갑게 닿는 책상의 감촉이 반가웠다. 종료 버튼을 눌렀다. 엄마와의 관계에도 마음 속 종료버튼을 길게 눌렀다. 엄마, 내가 이제 아이 문제로 엄마에게 속을 보이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미안해. 아픈 자식 낳아서.




  도둑질은 신용을 잃게 하고, 주먹질은 사람을 잃게 한다.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언어 폭력이 한동안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아이가 장애등록을 마친 지금도, 양가의 부모님들은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비단이는 좀 어떠냐? 아직도 말 안하지?" 어떻긴요, 늘 똑같습니다. 오늘도 방방 뛰고 있고 이야이야 외에는 한마디도 못하네요. 칠년 키웠는데 아빠 소리 한번 못들어본 남편은 오늘도 고깃값을 벌러 차가운 길을 누빕니다. 저요?저는 아이가 떨어뜨린 음식을 치우고 있는 중이에요. 남편이 보면 속상해할거라 안 먹은 음식은 흔적 없이 내 입으로 모두 밀어넣습니다.

  하원하는 아이와 잠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과자나 장난감을 사러 손 잡고 걷고 싶지만 우리 아들은 오늘도 화가 잔뜩 나서 하원하자마자 차에 올라탔어요. 그래도 저는 제 아들이 밉지 않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혼내며 하루를 보내기보다는 오늘 사랑스러운 아이의 미소를 한번 더 볼 겁니다. 여기저기서 주시는 상처에도 단호하게 대처하려고 합니다. 네, 그러니 묻지 마세요. 장애는 생채기처럼 생겼다가 낫는 게 아닙니다. 침묵으로 대신하시는 배려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이게 제 속마음이네요. 올해 추석에도, 부디 질문은 사절합니다! 쾅쾅쾅!





미아 씨가 신청하신 곡입니다. 아이유의 "삐삐"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Stop it 거리 유지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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