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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12. 2023

강남 한복판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벌써 이년 전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 이 글을 쓰는 손이 망설여진다. 아픈 이야기가 속에서 곪기 전에 꺼내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이지만, 가끔 이런 순간이 온다. 문장 하나가 망설여지고 단어 앞에서 멈칫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서 본다. 잊고 싶지만 선명한 기억 앞에 가만히 발을 내린다. 눈을 감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아직은 더운 초가을이었다. 가족 모임이 있어 강남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교대역 부근이었고 주말답게 거리는 인파로 차로 북적이는 날이었다.

  시어머님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시면서, 우리 가족은 가끔이라도 시간을 내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막내가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는 식당으로의 외출이 조금은 망설여져서 모임 자리를 만들지 않았지만, 이제 아이도 조금 자랐고 우리도 외출이라는 것을 좀 해보고 싶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름 다 모이니 삼 대가 모인 대가족의 모습이었다.

  시부모님과 아주버님, 우리 가족 넷을 합하니 도합 일곱 명. 주말 오후 일곱 명이 한꺼번에 앉아 식사할 주차 가능한 강남의 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몇 군데를 돌다가 아주버님의 단골 식당에 사정하여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다. 무한리필의 소고기를 파는 식당의 단체석은 이미 만원이었다. 남아있는 자리는 원형 테이블과 불판이 들어있는 구조라 우리가 임의로 옮기거나 나란히 앉기는 불가능한 상황. 유모차를 탄 둘째를 옆에 두고, 우리 부부는 열심히 자리 구성을 짰다.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가 따로 앉아버리면, 같이 식사하러 온 의미가 없지 않아?" "그래도 불판이 있는 식당인데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지. 그리고 애들이 같이 있으면 어른들이 식사를 못 하시지 않겠어?" "엄마가 애들 보고 싶어하는데 섭섭하실까봐 그러지." 결론이 잘 나지 않는 소모적인 대화를 반복하던 차, 문득 남편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빠르게 가게 안을 훑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옆테이블에서 놀고 있었던 첫째 비단이가 보이지 않았다. 


" 여보, 비단이 어디갔어? 아빠! 형! 비단이 어딨어?"

"어? 여기서 너그 어머이 손 잡고 있으라고 했는데.. 그새 얘가 어디갔지?...."

큰 소리에 문 밖에서 식당 사장과 이야기 중이던 아주버님이 뛰어들어왔다.'


"제수씨, 무슨 일이에요?"

"비단이, 비단이 어디갔어요? 애가, 애가 자리에 없잖아요!"

"어? 아닌데, 안 나갔는데? 내가 밖에 있었는데... 사장님! 사장님 여기요 빨리!"


가게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말 한마디 못하는 다섯 살 자폐아 우리 비단이가, 강남 한복판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어른 다섯 명이 아이 하나 놓치는것은 순식간이었다.




  처음엔,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아이의 습성상 다른 테이블 밑에 숨거나 장난을 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집에서도 식탁 밑이나 의자 밑으로 자주 숨어들던 아이였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문을 닫아달라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비단이는 보이지 않았다. 없는데, 비단이가 없는데. 나는 거의 이성을 잃고 실신할 지경이었고, 아주버님은 자기 탓이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치매가 있으셔서 혼자 계실 수 없는 시어머님과, 유모차에 탄 채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있는 둘째 때문에 온 식구가 뛰쳐나가 찾을 수도 없었다. 가게 사장님과 직원들은 처음에는 "다섯 살요? 요 앞 편의점이나 문방구 간거 아니에요? 애들 밥 먹다가 저기 자주 가는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오가는 대화속에서 심각성을 인지하신 듯 했다. 어디론가 빠르게 전화가 오갔고, 넋이 반쯤 나간 내게 사장님이 빠르게 다가와 말했다.

"애기엄마, 우리 가게 CCTV로 찾아보면 아이가 보일거에요. 우리 가게에는 바로 볼 수 있는 화면이 없고, 요 옆 가게에서 볼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니까 거기로 얼른 가봐요. 빨리요!"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전속력으로 50여 미터를 뛰었다. 옆 가게 사장님은 이미 마우스를 움직이며 CCTV를 뒤지고 계셨다. "아이가 무슨 색 옷을 입었죠?" "주황색! 주황색 카라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어요. 빨리 좀 봐주세요." 나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붙들고 주저앉아 발을 동동대며 엉엉 울었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이가 혹여 잘못되었으면 어떡하지? 아저씨는 빠르게 화면을 돌렸다. 어느 지점이 되자, 우리가 테이블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머니 손을 잡고 있던 아이가 눈치를 보다가 슬쩍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스쳤다. 분명 비단이었다.

 

"여기요! 얘에요! 얘 맞아요! 비단아! 비단아!"

"아이고, 가게 밖으로 나간 게 맞네. 같이 나가봅시다! 어서요!"


  나는 듣지 못할 화면에 대고 비단이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사장님은 얼른 화면을 빠르게 감았다. 아이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었다. 골목 하나만 나서면 바로 6차선 대로였다. 게다가 장소는 서울교대 사거리. 비단이는 장애가 있어 위험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차를 좋아해서 아빠 차를 비슷한 차를 보면 일단 뛰어드는 아이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아이 이름을 부르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비단아, 비단아!" 그때까지 가게에서 어린 둘째와 어머니를 잡고 있느라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남편도 사태를 파악한 듯 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졌고 딛고 있는 땅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사라졌다면 우리가 찾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이 복잡한 거리에서 자기 이름도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누가 눈여겨보고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혹여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거나 차도로 뛰어가기라도 했다면....! 비단이는 촉감이 예민해서 미아방지 목걸이나 아무런 장치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점점 나쁜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해졌다. 죄책감에 미치기 직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때, 나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던 옆 가게 사장님이 마구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애기엄마! 여기요! 애기 찾았어요!"




  무작정 뛰었다. 얼마나 뛰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단아! 비단아!" 사장님이 가리키신 곳은 6차선 대로 바로 앞에 있는 가로수 밑이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뻗으면 차가 쌩쌩 달리는 인도 끝에 있는 것은 분명 비단이었다. '음음-음음- 음-음-음, 음음음음 음음음" 유일하게 허밍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인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고 있는, 엄마를 보고도 울거나 달려오지 않는 내 아들. 틀림없는 비단이었다. 나는 비단이를 안고 서럽게 울부짖었다.

 

"이 녀석아! 그렇게 혼자 뛰쳐나가면 어떡해! 큰일 날 뻔 했잖아!"


  나는 비단이를 끌어안고 울다가 다그치다가 다시 껴안고 통곡하기를 반복했다. 아이를 품에 꽉 안고 나니 부들부들 떨리던 몸이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그러자 옆에 서 계시던 분들이 한마디씩 건네는 소리가 비로소 들렸다.

"저기, 여기 애기엄마가 안 잡고 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애가 자꾸 차도로 뛰어들려고 해서... 어찌나 발버둥을 치던지 잡고 있느라 아주 고생하더라고. 그런데 진짜 엄마 맞아요...? 애가 왜 반응을 안 하지?..."

  서럽고 서러웠다. 의심섞인 눈초리와 말에 너무도 아팠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도움을 주신 분이라고 소개받은 아이 어머니가 조용히 대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는 아이 엄마에요. 놀랐을 텐데 그런 말씀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처음 본 그녀의 손을 꽉 붙들고 엉엉 울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이가 살았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이가 딱 보니까 말도 못하는것 같고... 자꾸 차도로 뛰어들려고 해서 찾으러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희 아이도 자폐에요. 우리 애 보는 것 같아서 지나치기가..."


  퍼뜩 옆을 보니, 엄마의 손을 꼭 쥔 채 바닥을 콩콩 찧고 있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일곱 살쯤 되 보이는 아이 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는, 관심도 없다는 얼굴로 엄마 손을 붙잡은 채 멀뚱하니 서 있었다. 그런 두 아이 옆에, 손을 마주잡은 두 엄마는 함께 울었다. 경찰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커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가족들이 도착했고, 남편은 한 손에 유모차를 붙든 채, 비단이를 껴안고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른 일임에도 몇 번을 쓰다가 멈췄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날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시부모님의 죄스러운 표정과 배가 고픈지 자꾸 식당으로 가고 싶어하는 비단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고 불판에 소고기를 구웠다. 어지간히 놀라고 지쳤는지, 비단이는 핏기가 가시기 무섭게 고기를 입에 넣었다. 소고기도, 우리도 핏기를 잃어가는 저녁이었다.

  아직도 주황색 옷을 볼 때면 그날 우리 아이를 구해주신 따뜻한 마음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인사라고 하고 싶어 연락처를 받고 싶었지만 극구 사양하셨다. "나중에, 혹시나 길에서 우리 아이들과 같은 친구를 만나거든 꼭 도와주세요. 답례는 그 약속으로 충분합니다. 힘내세요." 분명 내가 도착할 때까지 몹시 칭얼댔을 두 아이의 손을 꽉 쥔 채 나를 기다려준 그날의 그녀를 가끔 떠올린다. 그리고, 넋이 나갔던 나를 붙들고 "걱정말아요, 내가 애기 꼭 찾아줄게요!"하고 길거리로 뛰쳐나가주신 감사한 사장님. 장애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살면서 많은 빚을 지는 것 같다. 정말 혹여라도, 내 글이 그 분께 닿는다면, 가슴 깊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한 약속 평생 꼭 지키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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