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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Oct 21. 2023

차마 인정할 수 없었던 현실

장애를 '고칠 수' 있다는 헛된 희망과 당연한 좌절

  

  며칠동안 자폐에 대해 미친듯이 검색하고 찾았다. '자동차를 줄 세우면 자폐인가요? 우리 아이는 바퀴만 종일 굴리는데 자폐일까요? 아직 말을 잘 못하는데 혹시 장애가 있는것은 아닐까요?' 세상에, 아이의 발달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경악했고 나의 무지함을 반성했다.

  선생님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와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저, 우리 아이가 조금 늦다고만 생각해왔다. 엄마가 제대로 못 키워서, 내성적인 성향 탓에 많이 어울리는 환경에 노출시켜 주지 못해서, 아이가 조금 더디게 가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찾아보면 볼수록 상황은 비관적이었고, 비단이는 어느 하나 발달장애가아니라고 볼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비단이는 두 돌이 다 되었지만 유의미한 단어를 말하지 못했고, 손짓이나 울음으로만 감정을 표현했다. 다만 눈치가 유독 빨라 이야기를 하면 눈치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행동하는 구석이 있었다. 아마 어린이집에서도 말을 못하지만, 눈치로 알아듣고 적당히 행동하다보니 단체상활에서 그럭저럭 버텨낸 것 같았다. 그 외에도 감각이 예민하고 쓰던 것, 하던 것만 고집하는 성향 등 비단이의 이상을 나타내는 징후는 너무도 많았다. 남자아이는 36개월까지도 보고, 늦는 애들은 48개월까지도 기다릴 수 있다는 말에 안일하게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내 자식이라고 감싸고 도는 것이 결국 얼마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었는지, 가슴에 구멍이 나서 피가 줄줄 새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나쁜 엄마였다.

  나는 모니터를 덮고 그대로 엎드렸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우리 비단이는 단순한 발달지연으로 보기에도 이상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옷자락을 한 겹 걷어내니, 그동안 내 치마폭으로 가리고 있었던 아이의 진짜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비단이는 지금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작두를 타듯 불안한 걸음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위태로움을, 그 불안함을, 엄마인 내가 가장 늦게 알아버렸다.




  서둘러 근처에 있는 발달센터를 찾았다. 비단이를 검사한 선생님은 우선적으로 언어치료와 감통 치료를 권했다. "언어는 말 배우는 수업 같은데, 감통은 뭔가요?" "비단이같은 아이들은 신체의 감각을 느끼는 부분들에 이상이 있어 발달이 더디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체의 대근육과 소근육을 정상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아이가 좋아지는 데에 필요한 수업이라는 이야기 같았다. 수업료는 숨만 쉬어도 돈이 술술 빠지는 수준이었지만, 안 하면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데 나아지기만 한다면 천금인들 안 쓸 수가 없었다. 없는 돈을 쥐어짜고 없는 시간을 억지로 짜맞춰 수업스케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비단이의 생활시간표에 '언어수업, 감통수업'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추가되었다.

  첫 수업 날.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센터로 향했다. 두세 달, 열심히 수업하면 그래도 말도 조금 뗄 거고, 그럼 비단이도 좋아지지 않을까? 그래야지 암. 누구 아들인데, 이렇게 무너질리가 없어. 내가 누구야, 나 그래도 언어 쪽에서는 어디 내놓아도 안 꿀리는 사람이야. 내 아들이 말을 못한다는게 말이나 돼?  

  그러나, 세상 일은 참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비단이는 조금 맞춰주는가 싶더니,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울며불며 수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젊은 여선생님은 비단이를 데리고 매시간 진땀을 흘렸고, 40분의 짧은 수업시간은 오열과 고성으로 가득 찼다. 비단이가 오열할 때마다 대기실에 있는 엄마들이 나와 교실 문을 번갈아 힐끔대며 수군댔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10분당 2만원이 넘는 돈이 훌훌 사라지는 것도 너무 아까웠다.

  한동안 아이와 씨름하던 언어선생님은 결국 내게 놀이치료를 권했다. 아이가 사회성이 너무 떨어지고 통제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니, 놀이치료를 통해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방법부터 배워와야 본인이 진행하는 언어수업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본인의 역량으로 아이를 컨트롤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기 싫어 늘어놓는 궤변이라고 느꼈지만 도리가 없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치료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은 너무나 늘어났고, 치료센터는 수요에 비해 무척 적었다. 1회 수업 40분에 십만원 가까이 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최소 3달은 대기해야 했고, 그나마도 인기있는 선생님의 수업을 원하는 시간대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아이는 하루하루 자라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해야 효과가 크다는 말을 들은 마당에 수업을 쉽사리 멈출 수도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놀이수업을 시작했다. 한 달 수업료는 어느새 50만원을 웃돌았다.

  아이를 데리고 발달센터를 다녀 본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사실 일주일에 2-3번, 고작 40분의 수업으로 아이가 드라마틱하게 바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누군들 수업을 많이 안시키고 싶으랴. 실제로 새벽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온갖 수업스케줄을 소화하는 엄마들도 심심찮게 본다. 대부분 큰 차를 끌고, 마치 캠핑카처럼 차 안에 각종 주전부리와 간식, 간단한 옷가지들과 놀잇감을 두고 아침부터 밤까지 다양한 수업을 다닌다. 그나마 아이의 증세가 경증인 경우라면 조금이라도 어릴 때 이렇게 몰아쳐서 수업을 시키는 것이 발달에 많은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타고난 지능이 너무 낮거나, 인지가 많이 떨어지는 아이의 경우 아무리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도 아이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으로는 자식을 쉽게 놓을 수 없기에 끝없이 쏟아붓고, 결국 아이나 엄마 둘 중 하나가 지쳐서 멈출 때까지 이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

  비단이를 데리고 사계절이 바뀌도록, 다양한 치료를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세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엄마'소리를 몇 번 내뱉은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이 늘지 않았고, 다른 증상들도 큰 호전은 볼 수 없었다. 일년 정도 지났을 무렵, 우리는 상의 끝에 언어를 제외한 모든 치료를 내려놓기로 했다. 비단이가 할 수 있는 것과 닿을 수 있을 지점에 대해 냉정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무도 부족하고, 너무도 무지하게 태어나버린 우리 아이에 대해. 몰아세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보기로 했다. 입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버석이는 입술을 축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베란다로 나왔다. 뜨거워진 얼굴에 느껴지는 차갑고 습한 바람이 반가웠다. 오늘도 하늘의 달은 동그랗고, 별은 반짝였다. 우리 집 천장에만 어둠이 짙게 내린 것만 같았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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