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토끼 Mar 10. 2024

(이별편) 오늘도 그와의 이별에 실패했다

BGM. 악동뮤지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어느덧 병원 생활을 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어느 깊은 밤, 혜진은 이제 얼른 퇴원해야지, 얼른 다시 일하러 가야지, 다짐한다. 진저리 칠 만큼 길었던 치료였다. 투병을 하는 시간 동안 그녀의 모든 시간들이 멈춰서 있었다. 창밖으로 내다보는 병원 밖 세상은 파랗고 바쁘기만 해 보이는데, 그녀의 하루하루엔 매일 비가 왔다. ‘오빠, 나 진짜 비 오는 거 싫어하는 거 알지? 나 이제 어떡해.’


퇴원하고 오랜만에 나가는 회사, 혜진은 동료들에게 기분 좋게 인사했다. 동료들은 ‘우리 회사 비타민이 다시 돌아왔네! 우리 혜진이 엄청 기다렸잖아. 고생했어.‘ 하면서 반갑게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회사에서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또 그녀는 집에 혼자 계신 엄마를 살뜰히 챙겼다. 한 달의 기간 동안 엄마가 그녀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먹을 것도 가득 채워놓고, 친구에게 끼니때마다 엄마를 챙겨달라고 부탁까지 해 두었던 그녀다. 다시 만난 엄마는 여전히 그녀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마치 엄마가 처음 낳은 자기 아기를 바라보듯, 엄마는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혜진을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 엄마, 잘 있었지? 잘 지냈음 됐어, 이제 내가 왔으니 안심해.‘   


그리고 이제 해야 할 일, 그와 이별하는 일이다. 


그는 다시 돌아온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투병기간 내내 함께 해 주었던 그였지만, 병원 안이 아닌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다시 만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엔 왠지 좀 낯설고 어색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역시나 다시 안긴 그의 품은 따뜻했고, 안심이 되었다. ‘어색해?’하고 그가 물었다. ‘응!’ 하고 그녀가 답하니, ‘넌 역시 솔직해’ 하고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밝고 당당한 혜진이지만, 그의 앞에선 왠지 모르게 수줍을 때가 있었고, 그는 그런 그녀를 예쁘게 어루만졌다. 오직 그녀의 앞에서만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을 알기에 그녀는 갑자기 먹먹해졌다. ‘나, 당신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 거야?’


혜진은 병원에 있는 시간 내내 그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그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 다 아는 큰 회사에 다니고, 좋은 집안에서 행복하게 자라온 사람이었다. 스스로 대단할 거 없다고 늘 말하지만, 평범한 것이 가장 대단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배려하며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혜진이 투병을 하는 시간 동안에도 한 순간도 그녀를 외롭게 하지 않고 늘 곁을 지켜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혜진은 그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는 달리, 그녀의 하루하루는 생존이었다. 남들이 흔히 있는 보험 하나 들지를 못했어서, 당장 병원비는 그대로 큰 빚으로 남았다. 아픈 엄마를 부양하는 것은 온전히 혜진의 몫이다. 그녀에겐 그의 사랑을 받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를 만나는 시간조차 그녀에겐 사치가 되어버렸다.




청치마에 흰 셔츠, 그녀의 모습에 그는 한껏 행복해 보였다. 혜진은 그런 그를 살피기 시작한다. 그의 패션이 내 스타일이 아닐지도 몰라,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고 올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외모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하고는 다를지 몰라, 언젠가 그 모습이 확 싫어지는 때가 오진 않을까. 저 표정은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표정일 것 같은데, 언젠가 그거에 짜증이 날지 몰라. 저 사람은 너무 세심해서 나를 귀찮게 할지도 몰라. 이렇게 많이 나를 좋아해 주면, 난 이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고 막 대하게 될지도 몰라. 서로 더 익숙해지고 편해지면 못 보일꼴들도 보일 텐데, 그럼 진짜 싫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녀는 그가 싫어질 수 있는 이유를 끊임없이 찾았다.

그래, 곧 이 사람이 싫어지는 순간이 올 거야, 오늘은 아직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를 미워하려고 작정을 했다.

'오빠, 나 원래 사람한테 잘 질린다고 얘기했지? 그런 순간이 오면 오빠랑 쉽게 헤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 순간은 생각보다 잘 오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도 그와 헤어지는 것에 실패했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이 눈치 빠른 그에게 느껴지지 않을 리 없었다. 언젠가 어느 날엔,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혜진아, 요즘 나에 대한 감정이 어때? 나 만나는 거 힘들진 않아?‘ 그의 물음엔, 그녀의 감정을 꿰뚫고 있는 듯한 힘이 있다. 내 감정이라… 그녀가 이별해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은 만큼, 역설적으로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계속 커졌다. 정말이지 감정이란, 속절없는 것이었다.

며칠 후엔 또 이렇게 말했다. ‘혜진아, 혹시 나 만나는 거 부담이거나 하면 꼭 얘기해 줘. 횟수를 줄여도 좋고, 연락을 덜 해도 좋으니까. 너만 내 옆에 있으면 되니까 그런 건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혹시라도 그녀가 힘이 들까, 그는 또 걱정이다. 누구보다 혜진의 상황을, 또 그녀의 감정을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그녀가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그의 진심이, 그녀는 또 먹먹하다. 나는 왜 이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또 어느 날엔 이렇게. ’ 혜진아, 혹시 지금 무슨 생각해? 너, 내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너 하자는 대로 다 할게.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 알지?‘  ‘우리 혜진이, 나 없음 밥도 잘 못 챙겨 먹겠네. 내가 옆에서 챙겨줘야지. 내가 꼭 있어야겠네, 그치?’  

그의 모든 물음의 끝은 이별을 향해 있었다. ’ 당신, 내게 헤어지자 말할 건가요 ‘라고 하는 듯이, 절대 그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그는 발버둥 치고 있었다.


‘오빠, 왜 자꾸 묻는 거야. 듣고 싶은 말은 정해져 있으면서. 내가 이런 당신을 어떻게 떠나. 어떻게 당신에게 이별하자 말할 수 있겠어.'


혜진은 오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와 헤어지는 것에 또 실패했다. 아니 자꾸만 실패한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몇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며 가만히 묻는다.  


‘오빠, 나 이제 하다 하다 이런 것까지 오빠한테 묻네. 나 어떻게 오빠랑 헤어져야 해? 좀 알려줄 수 있어?’ 


칠흑 같은 밤공기가 유난히도 차고, 눈앞의 주황색의 가로등이 뿌옇게 흐려져 마치 흑백 풍경 같아 보인다. 저 거리 끝에서 그가 그녀의 눈에서 사라져 버리고 나면, 그녀 역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Dimitry B





BGM. 악동뮤지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일부러 몇 발자국 물러나

내가 없이 혼자 걷는 널 바라본다

옆자리 허전한 너의 풍경

흑백 거리 가운데 넌 뒤돌아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널 떠날 수 없단 걸

우리 사이에 그 어떤 힘든 일도

이별보단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죠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같이 아파할 수 없어 난


두세 번 더 길을 돌아갈까

적막 짙은 도로 위에 걸음을 포갠다

아무 말 없는 대화 나누며

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을 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더 갈 수 없단 걸

한 발 한 발 이별에 가까워질수록

너와 맞잡은 손이 사라지는 것 같죠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같이 아파할 수 없어 난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https://www.youtube.com/watch?v=m3DZsBw5b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