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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Mar 03. 2024

(이별편) 이별, 심장, 통증

BGM. 신승훈 <언제나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

다예는 단골 카페에 와서 크로와상 샌드위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적당히 바삭한 크로와상의 맛에 신선한 상추, 햄, 그리고 치즈의 맛이 섞인 샌드위치는 아침에 한강뷰를 바라보며 먹기 딱 좋은 메뉴다. 거기에 코를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커피 향과, 목 뒤로 넘겼을 때 온몸을 따끈하게 데워주는 커피의 맛은 정말이지 평온함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한 천상의 맛이다.


다예는 책을 편다. 늘 같은 자리에서, 그녀는 주로 책을 읽고, 또 때로는 노트북으로 일을 한다. 그녀는 이제 막 등단한 작가다.  


그녀의 첫 책은 짧은 소설집이었다. 블로그에 끄적이던 글들이 순식간에 인기를 모으고, 책으로 내 달라는 모르는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고, 여러 출판사들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이런 관심이 어색했다. 난 관심받는 건 딱 질색인데... 그렇지만, 그저 생각을 끄적이던 나의 글을 알아봐 준 사람들에게는 감사하다. 이렇게 내가 작가가 될 줄이야... 책은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아주 초대박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문학계에 ‘떠오르는 소설가’라는 정도 이름은 알렸다. 그런데, 얼떨결에 단 작가라는 타이틀에, 다예는 이제 다음 책은 뭘 써야 하나... 고민이 된다. 아직은 누군가 씌워준 ‘작가’라는 가면을 쓴, 사춘기 일반인 같은 느낌이었다.


통창에, 한강뷰가 가득 찬 이 카페는 그녀가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공간이기도 하고, 그와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의 한강은 어쩐지 춥다. 뿌우연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 산과, 그 밑의 아파트와, 한강 다리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맑은 날의 한강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인데, 쨍한 햇살과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어쩌면, 이 풍경을 보면서 이대로 죽어도 될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늘 창가의 낮은 테이블과 파란 1인용 소파가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글을 쓰다 고개만 들어도 한강과 나무들이 보이고, 스피커도 바로 위에 있어서 음악이 생생하게 잘 들리는 곳이었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었다, 문득문득 그가 그녀의 기억 속에 찾아오면 심장 쪽이 찌릿하면서 통증이 오는 것만 빼면. 그녀가 그와 이별한 지는 1달이 다 되어간다.


좀 아까 카페에 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그녀는 한번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씨... 왜 하필. 유독 그가 생각나는 노래, 허각의 <물론>. 그는 딱 그 노랫말처럼 말했었다, 내리는 비를 막아줄 수는 없지만, 비가 오면 항상 함께 맞아주겠다고.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를 위해 뭐든 다 해주려고 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모든 중심엔 그녀가 있었다.  


‘하이패스는 무조건 가장 왼쪽 라인이야. 헷갈리지 않게 그렇게만 생각해 봐.’ 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머리가 아파 속도를 내다보니, 또다시 속도를 내는 법을 알려줬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무서워하지 말고, 속도를 높여. 아무 일도 없으니까. 속도에 익숙해지면, 운전에도 익숙해질 거야.’ 차 안은 온통 그의 목소리뿐이다.


카페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데, 그녀도 모르게 늘 대던 그 자리에 차를 댄다. 각자 차를 가지고 올 때면, 그는 가끔은 내 옆자리에 차를 댔었다. 늘, 그는 다예의 차를 한 번씩 찾았다. ‘너 저기에 차 댔지?’ 할 것만 같아서, 괜스레 눈물이 났다.


카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려는데, 샌드위치가 원래 이렇게 컸었나, 싶다. 늘 너와 나눠먹었어서 몰랐었나 보다...  다예는 결국 샌드위치를 남긴다. 부드러운 맛에 먹던 샌드위치였는데, 어쩐지 오늘은 목이 막혀온다.


다예는 오늘은 흐린 창 밖 한강을 보며 생각한다.

'나 잘 지내고 있어... 가끔씩 심장에 통증이 오는 듯한 느낌만 빼면 말이야. 근데 있지, 헤어짐이 이렇게 힘든 건진 정말 몰랐어. 이렇게 보고 싶을 수 있는 건지, 정말 몰랐어...‘  


다예는 핸드폰 메모장에 있는 ’두 번째 소설‘이라는 페이지를 열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 너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너무 잘 못 지낼 걸 알아서 묻고 싶지 않다. 나보다 더 아파하고 있을 걸 알기에, 차마 알고 싶지 않다. 그런 너에게 헤어지자고 한 나는, 안부를 물을 자격조차 없는 나는, 평생 너를 그리워하지만 보지 못하고, 연락하지 못하는 벌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나 보다. ‘   


이미지 출처: Unsplash, Redd F





BGM. 신승훈 <언제나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는 것

평소처럼 화분에 물을 주고

읽던 책을 마저 읽는 것


그래야 버틸 것 같아서

흐트러지면 무너질 테니까

혼자여도 괜찮은 척 그렇게

잊으려는 맘도 잊은 척  

근데 말야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

괜찮은 척 해도 괜찮을 리가 없잖아

이만큼은 그립고 이만큼은 아픈 채

또 하루를 살아가


그냥 잘 지내고 싶은데 잘 안 돼  

모든 하루마다 돌아오는 계절이 다 너라서

헤어진다는 건 네가 아닌 모든 게

온통 네가 되는 것


하루 종일 나를 타일러

고작 너 하나만 없는 거라고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어

네가 아닌 모든 것에 대해  

근데 말야


또 하루를 견뎌내 봐도 너잖아

숨을 쉴 때마다 가시 같은 네가 있어

사막 같은 맘으로 갈라진 기억으로

또 하루를 살아가


그냥 살다 보면 살아는 지겠지

시간이 날 가끔 웃는 날도 만들어 주겠지만

헤어진다는 건 네가 아닌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


낮과 밤을 모두 너에게 써도

손 끝 하나 너를 잊을 수 없고

너의 모든 것과 네가 아닌 모든 것들에

매일 처음처럼 아파하겠지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

괜찮은 척 해도 괜찮을 리가 없잖아

이만큼은 그립고 이만큼은 아픈 채

또 하루를 살아가


그냥 잘 지내고 싶은데 잘 안 돼  

모든 하루마다 돌아오는 계절이 다 너라서

헤어진다는 건 네가 아닌 모든 게

온통 네가 되는 것


네가 아닌 모든 게 네가 되어 버리고  

나도 네가 되는 것

                    

https://youtu.be/97ZVr8iGgos?si=NdqyJxx2WD84aw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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