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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Apr 14. 2024

(이별편) 꿈에

BGM. 박정현 <꿈에>

민영은 커다란 아파트 단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높은 아파트 건물들 사이에서도 나무와 풀이 적절히 자라고 있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곳. 저 쪽에서 큰 키에, 흰 얼굴, 편안한 츄리닝 차림의 그가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오고 있다. 장 보고 오는 건가...? 오랜만이네 정말... 아,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이 뒤따라 온다. 어머니랑 같이 다녀왔구나... 민영은 차마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그래도, 봤으니 됐어, 이렇게라도. 몸을 돌려 아파트 단지만큼이나 큰 상가로 들어간다.


민영은 그 아파트 상가의 세탁소에 가서 맡겨두었던 세탁물을 찾는다. 꽤 오래 못 찾아서 오늘은 꼭 찾아야 해... 그런데 무인세탁소라, 세탁물을 찾으려면 각각을 동전으로 계산해야 하고, 동전을 바꿔주는 기계를 찾으려고 또 상가를 한참 빙빙 돈다. 아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마침내 동전교환기를 찾아서 두 손 가득, 아니 두 손이 다 부족해서 주머니에 가득 넣고도 또 두 손이 꽉 찰만큼의 동전을 바꿨다. 그리고 다시 세탁소로 향한다. 아후, 무거워... 동전으로 손이 꽉 찼네. 떨어뜨릴 것만 같이 위태롭게 동전을 옮겨서는, 겨우 세탁물을 찾았는데, 앞도 안보일만큼 한 짐이다. 어떡하지 너무 많은데... 습관적으로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연결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민영은 세탁물을 손에 한가득 들고 또 어깨에 메고, 상가 출구를 찾는데 어디가 출구인지 찾을 수가 없다. 깊고 어둡고 낯선 상가... 상인들에게 묻고 또 물어서 위로 올라가 보지만, 여전히 헤맨다. 한 명 한 명의 상인들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데도, 길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여러번 묻고 또 묻다 보니, 친절한줄 알았던 그들의 얼굴이 악마처럼 변해간다. 이 큰 상가에 나 혼자 뿐인가... 슬슬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민영은 세탁물을 모두 바닥에 내팽개치듯 던져버리고는 안도하며 전화를 받는다.


“응, 나야.”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내가 힘들 때 어려울 때 그렇게 의지가 되었던 그 낮은 목소리. “응, 나 여기 아파트 단지 왔거든. 세탁물을 찾았는데 너무 많고, 무겁고, 출구를 찾을 수가 없어...”


그런데 사실은 민영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수민아, 나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 나 좀 도와줘, 수민아 넌 항상 그랬잖아, 내가 힘들 때 날 도와줬잖아...’  그러나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심장에서 멈춰있었다. 민영의 말에 그는 반응이 없다, 마음에 있는 또 다른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도...


“누나, 우리 집 앞엔 왜 왔어? 이럴 거면 왜 헤어지자고 한 거야? 헤어지자고 했으면, 누나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왜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해 놓고... 왜 그렇게 누나가 먼저 떠나 놓고... 왜... 겨우 맘 잡았는데... 왜 지금...”


수민은 흐느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민영은 가만히 전화를 끊는다, “정말 미안해.. 이제 다시는 전화 안 할게...” 하는 말과 함께. 사실은 너무 힘들다고, 죽도록 너무 보고 싶었다고, 딱 한 번만 얼굴 보여주면 안 되냐고... 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도 심장 앞에 멈춰서는, 차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아픈 마음에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는데, 눈앞에 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로 나가면 되는구나,

수민아 너는 나를 밀어내는 순간까지도,

오늘도 나를 도와줬구나...


출구를 찾은 안도감과, 그의 말에 가슴이 쥐어짜지는 듯한 찌릿함을 그대로 느끼며, 민영이 눈을 떴다.


아. 꿈이었구나!!!


어쩐지.. 아파트 단지며, 길을 잃어버리는 깊은 상가며, 이상한 상가 상인들이며, 갑자기 동전이며, 세탁물이며, 말도 안 되는 스토리였어. 진짜 개꿈이네. 꿈꿔서 머리만 아프고 잠만 제대로 못 잔 느낌이야.



근데, 수민아, 널 봤어 정말. 그렇게 꿈에서라도 널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드디어 나왔구나. 꿈속에서의 너는 참 냉정했는데, 그 안에서조차도 힘겹게 날 잊으려는, 잊고 잘 지내보려는 너의 마음이 느껴졌어. 우리 헤어지려면 나한테 매몰찬 말을 해야만 하는 너의 다정한 마음을 너무 느낄 수 있었어. 너도 지금 많이 힘들지... 그래도 다시 눈을 감아 꿈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딱 한 번만 너를 다시 보고 싶다. 지금 이대로 깨지 않고 딱 한 번만,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다.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정말 그리웠어...



image: benjamin davies on unsplash



BGM. 박정현 <꿈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난 너무 가슴이 떨려서

우리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고 있네요


이건 꿈인걸 알지만

지금 이대로 깨지 않고서

영원히 잠잘 수 있다면


날 안아주네요. 예전 모습처럼

그동안 힘들었지 나를 보며 위로하네요

내 손을 잡네요 지친 맘 쉬라며

지금도 그대 손이 그때처럼 따뜻하네요


혹시 이게 꿈이란 걸 그대가 알게 하진 않을 거야

내가 정말 잘할 거야.

그대 다른 생각 못하도록

그대 이젠 가지 마요 그냥 여기서 나와 있어 줘요

나도 깨지 않을게요. 이젠 보내지 않을 거예요


계속 나를 안아주세요. 예전 모습처럼

그동안 힘들었지 나를 보며 위로하네요

내 손을 잡네요 지친 맘 이젠 쉬라며

지금도 그대 손은 그때처럼 따뜻하네요

대답해 줘요 그대도 나를 나만큼 그리워했다고


바보같이 즐거워만 하는 날 보며

안쓰런 미소로

이제 나 먼저 갈게 미안한 듯 얘기하네요

나처럼 그대도

알고 있었군요

그래도 고마워요. 이렇게라도 만나줘서

날 안아주네요. 작별인사라며

나 웃어줄게요

이렇게 보내긴 싫은데

뒤돌아 서네요 다시 그때처럼

나 잠 깨고 나면

또다시 혼자 있겠네요 저 멀리 가네요

이젠 익숙하죠 나 이제 울게요

또다시 보내기 싫은데 보이지 않아요

이제 다시 눈을 떴는데 가슴이 많이 시리네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난 괜찮아요 다신 오지 말아요


https://youtu.be/kY-Qj3kMYGw?si=_tbVG8b9X1HMtM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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