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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독자 Jul 14. 2024

혼자 자란 아이는 최약체다

싸움을 못하는 아이, 화해를 못하는 어른


기업 입사전형에는 여러 종류의 면접이 있다. 토론면접과 임원면접이 가장 대표적이다. 토론면접은 지원자들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다. 임원면접은 여러 명의 면접관과 한 명 혹은 다수의 면접자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자리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은 임원면접을 가장 어려워한다. 불편한 정장을 입고 더 불편한 면접관들과 대면하는 과정. 예비 사회인들에게 썩 익숙한 상황은 아니다. 특히 내가 취업한 시절에는 일명 '압박면접'이 성행했다. 상대를 검증하기 위해 엄청난 질문세례를 퍼부어 영혼까지 탈탈 털어내는 방식이다. 이런 면접이라면 부모님이 면접관이어도 멘탈이 나갈 것 같다(압박면접은 최근 들어 지양하는 추세다).


하지만 나를 압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토론이었다. 경쟁자들 사이에서 손을 들고, 발언 기회를 얻고, 유리한 변론을 선점하는 과정은 나에게 너무 벅찼다. 눈에 띄기 위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를 주목하게 만드는 행위는 몸에 난 두드러기처럼 징그럽고 간지러웠다. 취업을 준비하는 순간에도 나의 외동 성향은 어김없이 두드러졌다.




어릴 때부터 발표에는 잼병이었다. 유치원에서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앞에는 선생님, 뒤에는 학부모들이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는 나와 친구들이 둥글게 앉아 여느 때와 같이 선생님을 바라봤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다. 집 안에 들어서자 갑자기 엄마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너는 왜 다른 애들처럼 발표를 안 해? 몰라서 그런 거야?"


엄마는 왜 화가 난 걸까. 내가 다른 애들과 달리 행동해서? 발표를 안 해서? 그것도 아니면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표정이 무서운 게 첫 번째 이유, 엄마의 물음에 마땅한 답이 생각나지 않은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선생님이 '이게 뭘까요?'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한다. 대답은 입으로 하는 건데 꼭 손을 먼저 들어야 했다. 공평하게 한 명씩 말하게 하면 될 텐데. 왜 나서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제공하는 걸까?


유치원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은 어렵지 않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물을 법한 심도 있는 내용이 아니다. 7살이면 모를 수가 없다. 심지어 까마득하게 어린 6살 동생들도 알 법한 문제다. 그 물음에 손을 들고 정답을 맞히라니. 오히려 그에 응하는 친구가 꼴사나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는 게 중요하지 아는걸 티 내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겸손은 미덕이고, 발표는 그에 반하는 것이라 여겼다. 외국에서는 수업 참여도가 점수의 기준이라고 하더라. 내가 만약 해외로 유학을 갔으면 모든 과목에 낙제를 받을 뻔했다.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건 타고난 성향인가, 길러진 성향인가.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외동으로 자란 환경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거다. 인간이 태어나서 하는 최초의 경쟁은 뭘까? 나는 ‘형제간의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한 본능적 겨루기 말이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엄청난 배신감과 질투를 느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치 그 강도가 배우자의 외도를 목격한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첫째의 전투력은 상승하는 걸까. 그렇다면 둘째는 어떤가?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째는 대게 애교가 많다고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주한 첫째라는 경쟁자. 그를 대적할 기술을 자연스럽게 탑재한 거 아닐까?


나의 경쟁 상대는 집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다들 형제들과의 투쟁 경험을 쌓고 집 밖으로 나온다. 나만 아무 스펙도 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냉장고 안에 있는 요구르트 하나로도 수없이 많은 전쟁을 겪은 아이들. 그 무리에서 나는 최약체였다. 


크면서 친구들과 우열을 다퉈야 하는 때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 어색해서 피하고, 피하다 보니 못하고, 못하다 보니 두려워졌다. 똥은 더러워서 피했고, 경쟁은 무서워서 피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나는 점점 약육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피할 수 없고 즐길 수도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배웠다. 한두 번 하다 보니,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 않는 법은 알게 됐다(그럼에도 아직 종종 지는 편이다). 그런데 더한 놈이 나타났다. 싸움이라는 녀석이다.


경쟁이 기피 대상이라면 싸움은 혐오 대상이다. 싸움은 정말이지 배울 곳이 없다. 일단 집 안에서는 나와 싸울 사람이 없다. 유일한 존재인 부모님은 나와 체급이 맞지 않는다. 고로 싸움의 조건이 성립되지 못한다. 엄마, 아빠한테는 그냥 혼나는 거다. 딸이 엄마와 싸우는 것도 최소 고등학생 이상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살면서 누군가와 싸운 적이 없다. 심지어는 다툰 적도 드물다. 그래서일까?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순간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크게 모나지 않은 성격은 어쩌면 싸움을 외면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호색 일지도 모르겠다. 평화롭게 잘 지내는 게 뭐가 문제냐고? 진짜 문제는 화해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다.


화해는 싸움 뒤에 일어나는 과정이다. 싸움을 회피하다 보니 화해라는 존재를 만난 적이 없다. 엉켜본 적이 없어서 엉킨 실을 푸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그 순간을 마주할까 봐 극도로 겁을 낸다. 이 관계가 꼬여버리면 어쩌지? 서로 감정이 얽히면 어쩌지? 풀지 못하면 잘라내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엉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발표도 싸움도 싫어하는 아이는 자기주장 하나 제대로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발표는 잘난 척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싸움도 부정적인 모습만 갖고 있진 않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듣고 대립할 수 있는 용기, 인정할 수 있는 포용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내 멋대로 나쁜 것이라 단정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나를 감췄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숨기던 가림막은 점점 커져갔다. 어느 순간 햇빛도 들어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았다. 갈수록 답답해졌다. 이걸 걷어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가림막은 나를 가두는 동시에 나를 보호해 준다. 최약체인 나를 지켜주던 장막을 단숨에 걷어낼 배짱은 없다.


대신 작은 구멍 하나를 뚫었다. 괜찮으면 구멍을 조금 더 크게 키울 예정이다. 그래도 괜찮으면 슬며시 가림막을 치워볼 생각이다. 그렇게 점점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최약체를 벗어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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