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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독자 Jul 21. 2024

외동은 귀하게 자란다는 착각

저는 험하게 자랐는데요?


"귀하게 자랐겠네!"


외동이라고 하면 어김없이 듣는 말.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부모님이 애지중지하셨겠다는 멘트는 보너스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손사래를 친다. 역시나 내 반응은 겸손으로 변질되고 만다. 진짜 아닌데… 아니라서 아니라고 한 건데… 이번에도 믿지 않는 눈치다. 외동이라고 하니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예의상 해준 덕담이겠지. 반박은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진지하게 말하고 싶다(브런치의 글씨체와 다르게 지금 매우 궁서체다). 세상의 모든 외동이, 모든 외동딸이 귀하게 자라는 건 아니라고. 외동도 외동 나름이다. 나는 유일한 자식이기에 ‘희귀’했을 뿐이다. 결코 귀하게 자라지 않았다.


또래의 여자아이들 중에서 나보다 엄하게 키워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딸만 있는 집에서 태어난 친구도, 남동생을 책임지는 K장녀인 사촌들도, 나보다는 널널하게 자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편견대로라면 내가 제일 오냐오냐 키워져야 맞는 거잖아! 그렇게 자라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자랐다는 오해까지 받아야 하는 거야?


이런 오해가 왜 싫은지 나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너 막 자란 것 같아‘라고 하는 것보다는 나은데 말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듯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데, 기어코 야생의 잡초 같음을 증명해야 속이 후련해진다.


그래서 누명(?)을 벗을만한 에피소드를 몇 개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 사건의 담당 판사고, 나는 나를 대변하는 변호인이다.

판사님들, 부디 공정한 판결을 내려주시길.




[사건번호 1] 띠부띠부씰 횡령 사건

나는 어릴 적부터 치과에 자주 갔다. 양치질을 한다고 하는데도 이가 자주 썩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치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이였다는 사실이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묘하게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 입 안을 공사장으로 둔갑시키는 각종 기계 소리. 어린아이들이 싫어하는 온갖 요소가 오감을 자극했지만 울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스티커였다.


치료를 마치고 접수처로 가면 간호사 언니가 스티커 모음집을 촤르르 펼쳤다. 그중에서 내가 원하는 한 장을 고를 수 있었다. 어차피 금방 충치를 머금고 재방문할 텐데, 원 픽(One Pick)을 고르는 작업은 신중했다. 요새 친구들이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마음으로 그때의 나는 치과에서 주는 스티커를 모았다.


(증거품) 당시 나눠주던 스티커와 유사한 모습

그 스티커는 지금으로 치면 ‘띠부띠부씰’과 비슷했다. 띠부띠부씰은 ‘띠’고 ‘부’치는 ‘씰’이라는 뜻이다. 일반 스티커와 달리 떼었다 붙였다가 자유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도 스티커를 떼지 않았다. 새것 그대로의 상태로 보관만 했다. 왜냐? 아까우니까! 고통을 참은 대가로 받은 전리품.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방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하던가. 직감적으로 몇 장의 스티커가 사라졌음을 인지했다. 바로 엄마에게 달려가 그것의 행방을 물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응 그거! 우리 집에 놀러 온 애기가 갖고 싶어 하길래 몇 장 줬어"

콰앙-. 작은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연관된 섬이 하나씩 무너지는데, 나에게도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 나의 ‘스티커 섬’이 무너졌다.


(참고자료) 영화 <인사이드 아웃> 에 나오는 여러 섬들

허무하고 허탈했다. 곧이어 화가 나고 억울했다. 왜 함부로 내 물건을 아무한테나 주는 거지? 아까워서 써보지도 못한 건데… 엄마 마음대로 주면 안 되지! 울었는지 칭얼거렸는지 따졌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울먹이는 나를 달래주며 더 예쁜 스티커를 사주겠다고 약속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꾸짖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했다. 스티커 몇 장 나눠준 게 이렇게 억울할 일이냐고 되물었다.


물론 엄마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엄마의 행동이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자기 자식이라 해도, 그건 내게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맞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사소한 것 하나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나를 더 나무란 것 같다(당시에 스티커는 나에게 사소한 물건이 아니었다).




[사건번호 2] 편식 아동 방치 사건

엄마는 음식에 관해서 유독 엄격했다. 나보다 혹독하게 ‘편식교육’을 받은 아이가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엄마는 내가 잘 먹지 못하는 반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그것들을 만들어주셨다. 일부러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전용 식판에는 할당량의 반찬이 담겼다. 다 먹기 전까지는 절대 식탁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증거품) 당시 사용된 식판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고 해주길 내심 바랐다. 차라리 다른 엄마들처럼 밥그릇을 뺏어가 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남기거나 버리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는 음식이 많았던지. 특히나 미끄덩거리는 버섯을 씹어 먹을라치면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엄마는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거나 애처롭게 보기는커녕 ‘쟤가 왜 저럴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귀한 외동딸을 보는 느낌은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아빠가 퇴근하기 전. 집에는 엄마와 나만 있었다. 이런… 또 내가 싫어하는 반찬이 올라왔다. 기본적으로 밥 먹는 속도가 느린 나는 못 먹는 반찬이 나오면 식사 시간이 배가 됐다. 파생효과로 엄마의 설거지도 무기한 연기됐다. 짜증이 잔뜩 난 엄마는 급기야 나를 현관문 밖으로 쫓아냈다. 편식에 대한 벌이었다.


아파트 복도에 대여섯 살 여자 아이가 혼자 서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귀에는 잔잔한 이명이 울렸다. 살갑지 못한 나는 안 그러겠다며 매달리지도 못했다. 문 앞을 계속 서성거렸지만 문을 두드릴 용기는 없었다. 다가서지도 멀어지지도 못했다. 그저 아빠가 빨리 집에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 방법이 아니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화가 난 엄마와 단둘이 있는 것도 무서웠다. 차라리 복도가 낫다고 생각했다.

 



[사건번호 3] 소고 폭행 사건

다른 친구들이 수학, 영어학원에 갈 때, 나는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마침 동네에 컴퓨터 학원이 있었고, 엄마가 컴퓨터를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했고, 뭔지도 모르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컴퓨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컴퓨터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가서 게임만 하는 거 아니냐고? 그건 아니다. 가끔 자유시간을 주긴 했지만 대부분 수업 시간에는 성실히 컴퓨터를 배웠다. 조작법부터 인터넷 활용법을 넘어 자격증 취득까지 넘어갔다. 흔히 아는 워드프로세서와 컴퓨터 활용능력을 시작으로 온갖 기능사와 운용사를 차례로 격파하며 재미를 붙여갔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게 생겼다. 바로 친구들과 노는 것! 방과 후에 친구들과 시답지 않은 놀이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 가면 나와 놀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학교에는 함께 놀 친구들이 차고 넘쳤다. 한참을 재밌게 놀다 보면 어느덧 학원에 갈 시간이다. 친구들은 아쉬움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말한다.

"오늘 하루만 학원 안 가면 안 돼?"


다들 학원 하루쯤 안 가겠다고 하면 그럴 수 있는 걸까. 너무도 자연스레 땡땡이를 제안한다. 하지만 나에게 학원을 빠지는 건 학교를 결석하는 것만큼이나 큰 일이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다른 제안을 한다.

"그럼 조금만 더 놀다 가! 응?"


어쩌지… 이번에는 방어에 실패했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강단 없는 내 성향 때문이 아니다. 나 때문이다. 지금 제일 놀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다. 그렇게 친구들의 유혹을 핑계 삼아 조금만 더 놀기로 했다. 딱 학원 가기 직전까지만 놀지 뭐! 안일한 생각의 시작이었다.


허억! 지금이 몇 시지? 정신없이 놀다 보니 학원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지났다. 지금 곧장 뛰어가도 지각이다. 온몸의 세포가 각성 상태로 변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학원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땐 이미  수업이 시작된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학원에서는 부모님께 전화까지 했다. 항상 늦는 법이 없던 아이가 오질 않으니 그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많이 늦은 것도 아니니 크게 혼나지 않을 거라 착각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화가 난 듯한 아빠가 있었다. 아무래도 학원에서 온 전화를 아빠가 받았나 보다. ‘왜 늦었어?‘ 아빠는 평소보다 2옥타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와는 다른 아빠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친구랑 놀다가…‘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순간 내 머리에 무언가 충돌했다. 뭐지? 방금 뭐였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아빠의 오른손에 익숙한 물체가 쥐어져 있다. 학교 준비물로 가져가려고 챙겨둔 소고였다.

(증거품) 당시 사용된 소고의 모습

일단 놀랐다. 소리가 너무 컸다. 소고가 아니라 북으로 내 머리를 치는 줄 알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안이 텅 비어있는 소고가 엄청난 굉음을 냈다(빈 소고가 요란했다).

그리고 의아했다. 이 정도 타격음이라면 굉장히 아파야 하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놀라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기다려봤지만 후유증은 없었다.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은 소고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속 빈 소고였다).

곧이어 억울했다. 친구들이랑 다 같이 놀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혼나는 거지? 겨우 한 번, 겨우 10분 늦은 걸로 맞은 아이는 나뿐일 거야.

   

마지막으로 든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항상 나를 혼내는 건 엄마였다. 부모가 당근과 채찍의 역할을 나누어 맡아야 한다면, 엄마가 채찍이고 아빠는 당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당근으로 맞았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아팠다. 달기만 했던 당근에서 쓴 맛이 낫다.




‘귀하다’라는 의미가 추상적이고 막연했다. 귀한 취급을 받는 게 뭐가 있지? 문득 명품가방이 생각났다. 밑바닥에 스크래치가 생길까 아무 데나 내려놓지 않고, 연약한 가죽이 상할까 전용크림으로 닦아주는 명품백 말이다.


살면서 명품가방 같은 대우를 받은 기억이 드물다. 그래서 귀하게 자라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명제에는 큰 오류가 있다. 나는 사람이고 가방은 물건이라는 사실이다. 자식 같은 명품백에 ‘우리 애기’라는 호칭을 달아준다 한들 가방이 사람이 되지 않는다.


가방을 소중히 하는 것과 자식을 소중히 하는 방법은 달랐다.

물건은 쓰는 것이고, 사람은 키우는 것이다.

물건은 쓸수록 가치가 떨어지지만, 사람은 경험할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물건은 새것이 좋지만, 사람은 익을수록 좋다.


잘못된 행동은 바로잡혀야 한다. 안일한 생각은 저지받아야 한다. 내가 빡빡하게 자랐다고 생각한 사건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이었다. 나도 이 글을 쓰다 보니 얻은 깨달음이다.


덕분에 쩨쩨한 인간 취급은 받지 않고 있고, 어디 가서 먹는 걸로 눈에 거슬린 적은 없으며, 학교나 회사에 지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딸바보 같은 부모는 아니었지만 딸이 바보처럼 사는 건 막아주셨다. 엄하다 못해 험하게 키워주신 덕분에 사람들 속에서 사람 구실하며 살고 있다. 나는 귀하지만 귀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명품백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니까.



* 사진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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