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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독자 Jan 08. 2025

아직 런던 야경을 못 봤습니다

쫄보여행자의 슬픔


혼자 해외여행을 떠난 내게는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함께 야경을 볼 사람. 그리고 홀로 야경을 볼 용기. 누군가 함께일 때는 주저하지 않았던 낯선 곳의 밤. 이제 어둠은 긴장의 대상이다. 나는 런던의 야경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동시에 이곳의 밤은 너무도 무서웠다. 그리우면서 두려운 이중적인 마음. 처음 겪는 난처함이었다.


이 도시가 익숙해지면 용기가 생기겠지.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갔고, 여행이 끝나갈 때까지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을까. 세계적인 도시, 수많은 관광객, 훌륭한 치한. 그 어떤 긍정적 수식어도 내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혹시나’, ‘만약에’, ‘행여나‘라는 부사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맴돌았다.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런던도 예외는 아니야!

엄마표 잔소리를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오늘로 런던 7일째.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난다. 고로 오늘밤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지금을 놓치면 나는 야경도 보지 못한 반쪽짜리 여행자가 되겠지. 더는 미룰 수 없다. 이제는 걱정을 누르고 용기를 내자. 마지막 밤도 숙소 안에서 지낼 순 없잖아.


6월의 런던은 해가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오후 9시가 되어도 살짝 푸르스름한 기운만 느껴질 뿐. 적어도 밤 10시는 지나야 비로소 어둑한 모습이 된다. 밝은 하늘이 오래 지속되는 건 여행자에게 큰 호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야경을 목표로 잡은 오늘의 나에게는 악재나 다름없다. 완벽한 밤의 경치를 보기 위해 나는 더 오랜 시간을 버텨야 했다.


한낮의 따스한 햇살은 퇴장하고, 싸늘한 바람이 빈자리를 차지했다. 하루 안에 한여름과 초겨울 날씨를 모두 보여주는 런던이라니. 광활한 스펙트럼에 또 한 번 놀란다. 숙소에서 씻고 잠시 쉬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다. 나는 간단하게 핸드폰과 신용카드만 챙겨 문 밖을 나섰다. 아무런 짐도 부담감도 없는 상태.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런던 야경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빅벤과 런던아이 아닐까. 마침 두 랜드마크는 템즈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을 정도로 가깝다. 1타 2피인 셈이다. 나는 숙소 근처 정류장에서 빅벤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푸른 물감에 검은 잉크가 몇 방울 섞인 듯, 어설프게 어두웠던 하늘은 정류장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조금씩 검게 물들었다.


며칠 전 아침 조깅을 하며 마주한 황금빛 빅벤이 아직 생생하다. 과연 밤에 마주하는 빅벤은 어떨까? 북적거리던 대낮의 인파는 사라지고, 매시각 울리던 시계탑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두운 하늘, 더 어두운 템즈강 사이에 빅벤이 둥둥 떠있다. 주황색 불빛을 걸친 거대한 무드등이 되어 런던을 밝히고 있었다.


나의 오래된 아이폰이 빛 번짐에 취약한 탓일까. 사방으로 퍼져나간 불빛들이 사진에 남아있다. 카메라를 깨끗이 닦아봐도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이 작디작은 렌즈로 런던의 불빛을 담아내는 것이 무리였나 보다.


그렇게 런던의 마지막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밤의 런던아이
밤의 빅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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