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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Dec 01. 2021

왜 나는 바쁜 것인가?

211201_백수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할 때쯤에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첨단 문명과 함께 두 분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업그레이드해드릴 거라고.

진짜 그런 건 일도 아닐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살아보니!

노인분들의 삶이라는 건 의외로 '절대적 물리 시간의 총량"이라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_-


가장 쉬운 예가 '병원'입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가는 건 뭐랄까 '지루함과 인내심의 싸움'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번호표를 뽑고 멍하니 30분.

혹시 진료 대기목록에 부모님 성함이 보이는지 목을 빼고 기웃거리는 것 외에는 뭐 할 게 없습니다.

아파서 진료받으신 분들 사이에서 화기애애하게 떠들어 댈 수도 없고,

혹시 모를 호출을 듣기 위해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이어폰을 꽂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거죠.


진료를 받기 전에 이런저런 들러야 할 곳은 얼마나 많으며

진료가 끝난 후에도 수납이니 약제실이니 뭐니 들를 곳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부모님을 모시고 집에서 나갔다가 병원을 들러서 약을 받아오면 하루 반나절이 그냥 지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오면 이제 부엌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병원에 다녀오면 그럭저럭 3시간은 지나있어서 어떻게든 끼니때가 되더라고요.

그저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고 만들어진 음식을 데울 뿐인데도,

밥을 차리고, 식사하고, 설거지 하고, 음쓰 버리고..

그러면 또 한두 시간은 휙 지나가 있습니다.

병원 갔다가 밥 한번 먹었을 뿐인데 창 밖에 해가 지는 걸 보면,

이게 뭔가 싶을 때도 있구요.


어떤 날 부모님이 각자 병원에 가셔야 할 때가 있거나, 중간에 장을 보거나 하게 되는 등의

한 가지 할 일만 추가가 돼도 그 날은 뭐 한 것도 없는데 정신 차리면 해가 지나가 있습니다.


전문성이나 민첩함 따위가 필요한 게 아닌,

그저 루틴한 업무를 천천히 시간을 들여 해결해야 하는 일들.  

제가 하지 않았으면 부모님이 했을 약간의, 하지만 엄청 시간이 드는, 번거로움을 해결하느라

오늘도 하루가 휘익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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