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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Jan 12. 2022

돈을 버는 백수가 되기로 했습니다

행복한 백수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 시작

어둑어둑하던 하늘이 어슴프레 혈색이 도는 아침, 거리가 환해질수록 조금씩 많아지는 도로 위 차량들의 불빛. 추운 날씨에 조금은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는지 고개를 도로 쪽으로 살짝 빼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나.. 나?!


거의 1년 만에 출근이라는 걸 하기 위해 버스 정거장에 서있으면서, 오랜만에 해뜨기 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움직이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싶더라구요. 행여 늦게까지 잠들어있을까 봐 알람을 열 개나 맞춰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새벽녘에 자서 느지막이 일어나는 최근의 수면 패턴 덕분에 거의 몇 시간 자지 못했거든요ㅎ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마음먹고 백수의 삶을 시작할 때에는, 한 달에 이 정도의 금액을 쓰면서 3년 정도는 이렇게 살 수 있겠다 싶었더랍니다. 병원에 다니며 부모님의 신체 컨디션을 좋게 만들고, 두 분이 집에만 계시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조금 더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몇몇 시설에 두 분을 등록해드리기도 하려고 했구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그냥 백수로 3년을 보내기에는 2가지 문제가 있더라구요.


우선, 돈이.. 제 계획보다 엄청 많이 들더라구요?^^” 물론 그 주범은 이사 관련 비용과 부모님의 병원비입니다만, 제가 백수로 놀면서도 이전 버릇을 버리지 못해 쓰는 ‘품위 유지비(?)’도 계획대로 줄여지질 않더라구요. 되려 부모님이 알뜰하게 사용하시는 집안 생활비가 제 예상보다 훨 덜 나가는 편이구요. 부모님의 병원비도 그렇고 제 씀씀이도 그렇고 처음 계획보다는 조금 더 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좁은 공간에 3명이 계속 어울려 있는 피로함이었습니다. 어찌 됐든 다 큰 성인 어른 3명이 각자의 일생을 살며 생긴 생활 패턴이 있지 않겠습니까? 부모님 두 분이야 평생 같이 사셨으니 그나마 괜찮지만, 거기에 제가 더해지며 서로의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 있더라구요(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요ㅎ) 게다가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과 백수인 제가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가끔 (백프로 저 때문에) 투닥투닥거리게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하루에 3번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나는 날엔 가끔, ‘난 무얼 하고 살고 있나’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부모님을 돌봐드린다는 목표는 뚜렷하지만, 그래도 지금껏 제가 살아오던 삶과는 너무 다른, 남의 삶을 사는 느낌?


그래서 저와 부모님의 건강한 ‘백수 라이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백수 생활을 위한 자본을 조금 보충하고, 집을 벗어나 저도 사회적 생활이라는 걸 조금 하며 리프레시도 하려구요. 그래도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니 업무책임감이나 근무시간이 정규직처럼 타이트하진 않은 아르바이트가 낫겠다 싶어, 계획한 금액에 맞춰 몇달만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합니다. 2월부터는 어머니도 주간보호센터나 아파트 노인정 같은 곳에 보내드리고, 아버지도 소일거리를 만들어 드릴 예정인데, 그러면 저희 가족이 지내는 삶에도 조금은 신선한 바람이 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구요 :)


하,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이동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는 삶은 참 힘드네요. 직장생활을 20여 년이나 했음에도, 마치 처음하는 것처럼 피곤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자신의 자리에서 매일 규칙적인 삶을 묵묵히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 존경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생겨나요ㅎ 앞으로 제가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투덜거리는 글을 올릴 것도 같은데, ‘아르바이트 하면서 웬 유난이야’하며 너무 어이없어하지는 말아주시길 미리 부탁드리며 줄이겠습니다. 다들 하루 기운차게 잘 보내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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