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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y 07. 2016

정신적 왼손잡이#20.내성, 나에게.

20160402. #20. 내성, 나에게.


#1. 내가 너무 많아


난 어떨 때 소심한 사람일까. 난 어떨 때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일까. 난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일까. 어렴풋이 윤곽이라도 있던 그것들이,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너무 흐릿해졌다. 다층의, 다중의 '나'가 존재하는 건 알지만 너무 그 격차가 크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문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회사에서 쓰는 달력의 모습. 오늘을 제외한 날짜를 모두 가린다. 숫자를 헷갈리는 일이 잦아서 택한 방법.

진한 우울을 오늘 아침에도 한 숟갈 떠먹는다. 잠에서 깨어나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를 계산하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아침. 모두가 신경이 곤두 설대로 곤두서서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출근버스 속의 기운.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만나는 내 존재의 하찮음과 무능함까지. 


마시면 위장에 구멍이 나 버릴 것처럼 독한 커피에 삶은 계란으로 어쭙잖게 아침을 때우고 모니터 속으로 고개를 다시 처박는다.  



#2. 중독의 고리


며칠 내내, 계속해서 사사건건 시비 걸고 싶다. 아무것도 마음에 안 들고 모든 게 걸리적거린다. 업무보고 때문에 사람을 만나야 하면 거울을 보고 두어 번 웃는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는 배우처럼 한번 더 모습을 가다듬는다. 1분도 되지 않는 대화를 마치고 나면 기가 빨린다. 먹기 싫은 반찬을, 혹은 오물을 억지로 먹기를 강요당하는 것처럼. 머릿속과 입 속에선 쉬지 않고 '싫어', '죽어', '꺼져'같은 말들이 맴을 돈다. 


"자기 자신을 가볍게 둬보세요."


그녀가 늘 내게 했던 말이다. 안 된다, 그게. 이렇게 날 휘어잡고 내몰아도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데,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지는 너무도 뻔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안으로 계속해서 쌓일 거예요. 아직 그걸 해소하는 적당한 방법도 모르고 있는데. 그게 폭력성으로 나타났을 때가 위험한 건데, 위잉씨는 그게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사람이에요."


"...... 이러다가 정말로 죽어버릴까 봐, 나를 찾아온 거였잖아요."


식이장애가 찾아온 건, 강박증과 당 중독이 동시에 발생한 것에 있었다. 단순한 스트레스일 거라 생각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보기도 하고 취미생활에 더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나 뜻대로 해소되지 않을 때마다 모든 좌절감은 내 탓과 몫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려왔다고 하는 게 맞겠다. 


매일 화장실에 달려가 그날 먹은 음식을 토해내고, 다시 목을 추슬러 우울을 마시고.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또 슬픔을 꺼내 씹어먹고. 부조리함과 서운함에 울며 냉소를 한 방울 한 방울 흘리고. 



#3. 나에 대한 내성


퇴근. 하루의 긴장과 짜증을 모조리 씻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씻는다. 개운한 기분으로 침대에 눕는다. 이불에선 피곤과 잠의 냄새가 짙게 난다. 이불 옆의 책상엔 약봉지가 산재해있다. 시계를 보고 저녁 약을 뜯어먹고, 약봉지를 책상에 휙 던져놓는다. 


늘 그녀와 말해왔던 것이 생각난다. 20년 넘게 살아온 나를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다. 언제부터일진 몰라도 오래도록 중독되어 있던 우울로부터 탈출하는 것도 결코 쉽진 않다. 온몸에 뿔이 돋친 괴물 같은 내가, 이제야 신경질이 좀 가라앉는지 식식 숨을 몰아쉬며 내 옆에 눕는다. 그래도 이 모습도 한 보름을 보니 꽤 익숙하다. 


그래도 사람들과 잘 지내보고 싶어서. 혼자가 좋고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람과 살아야 하기 때문에-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뭐라도 해보려는 나를 가만히 본다. 신경질에 시달려 눈이 벌개진 나가, 나를 본다. 

"나를, 언제까지 낯설어할 거야?"


낯설어하다니. 내가 나를 낯설어할 리가 없잖아. 

사실 낯설다. 정말 싫을 때도 있다. 조용하고 차분한 걸 좋아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건 - 때때로 스스로도 귀찮고 번거롭다. '사회 부적응자'라고 도장 찍히기 정말 쉽다. 취미를 공유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하든 어설프다. 


"넌 나에 대한 내성이 너무 없어. 서운하다."


사람이 붐비는 정류장과 교차로에 다다르면, 신경이 곤두서다 못해 온 핏줄을 찢어버릴 것처럼 몸이 아파와서 고개를 푹 숙이던 나. 그 벌개진 눈이 이내 사라진다. 태블릿 PC로 틀어놓은 만화의 음량이 조금씩 들려온다. 



#4. "버틸 뿐인" 생활


나 자신에 대한 내성이라니, 좋은 말이네.


나는 나를 감당하는 것에도 평균 이상의 힘이 드니까. 적응이라고 해야 할까, 내성이라고 해야 할까. 적응해버리면 안 되는 모습도 있으니까. 내가 나를 '조련'한다고 해야 하나? 음, 내가 둘로 분열되어 있다고 느끼진 않지만, 예전과는 다른 나를 생경하게 보고 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코트를 걸치자 목 뒤쪽 언저리가 찡하고 아프다.
오늘도 버스에서 목이 조이려고 그러나. 아니면 가시가 나려고 하나.


'아직도 내가 낯설어?'


조금 더 버티며 살다보면 그 답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만큼 의연하고 당연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현관문이 오늘따라 무겁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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