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May 10. 2016

정신적 왼손잡이#21.내가 그렇게 틀렸어?

20160410. #21. 내가 그렇게 틀렸어?

#1. 호명


"아, 또 '슬픔이' 나왔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지 않았다. 그래도 대강 어떤 캐릭터인지, 어떤 스토리인지는 알고 있다. 회의 때든, 서로의 기획 원고를 크로스 체크하는 과정에서든 내가 늘 '슬픈 분위기'를 만든다고 해서 동료들이 붙인 별명이다. 물론 기운 없이 다니는 것도 한몫한다. 


팀 내에서 별명이 '슬픔이'라고 했더니, 그녀가 걱정한다.


"외적인 모습도 중요해요, 사회생활이라는 건. 외적 모습을 좀 다르게 해 보는 건 어때요? 지난번에 머리도 밝게 염색했었고."


하긴 사주 보는 아주머니도 내게 같은 말을 했었다.(#13. 믿고픈 거짓말) 많이 웃으라고. 다만 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억지로 웃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웃는 건 '흐트러지는 것'이다. 웃고 나면 다시 표정과 마음을 가지런하게 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아니, 그런 복잡한 건 둘째 치고, 웃을 일이 없다. 웃을 분위기도 아니고. 


웃음은 자주 부끄러움과 잘못의 꼬투리가 됐다. '지금 웃음이 나와?', '웃을 분위기가 아니에요.', 아니면 가볍게라도 '넌 이게 재밌냐?'같이. '눈치 없는 사람'으로 찍히고 싶지 않아서 잘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차라리 '너 오늘 기분이 안 좋니?'라는 물음을 받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무표정을 유지하는 편이다. 특히 부서를 옮기고 나서는 - 예전 부서보다 농담이 오가는 분위기가 달라서 말수를 꽤 줄였다. 다 같이 웃는 분위기라 해도, 맞춰 웃기보단 웃음을 참는 쪽으로 변했다. 

서비스직에서 일할 때의 웃음은 거짓 웃음. 가끔 마음에서 우러나 진심으로 손님에게 웃어 보이고 나면 이내 서러웠다. 저 사람, 나 따위 알바생은 기억 못하겠지. 내가 이렇게 웃으며 일해도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난 진심으로 일하고 있지?


"위잉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여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이전 부서의 직원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현재 팀 동료가 말했다.


"위잉님은 '슬픔이'거든요."


뭐... 될 대로 되라지 싶어서 '네. 맞아요.'라고 쐐기를 박아버렸다.  처음 그 별명으로 나를 부를 땐 '자꾸 슬픔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되어버린다고요. 난 그냥 좀 더 신중하게 원고가 나갔으면 하니까, 잔걱정을 더 할 뿐이에요.'라고 반박하기도 했지만. 


이젠 반박할 기운도 없다. 메신저 사진을 아예 슬픔이 캐릭터로 바꿔버릴까... 



#2. 사랑의 기억


절친한 지인 H형과 지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H형에겐 몹시 애틋한 사랑의 기억이 하나 있다. 밝힐 순 없지만, 평생의 가약까지 약속했을 만큼 깊었던 사랑이었다. 결별한지 2년인가, 3년인가 지났다. H형은 그때 그 사람의 이름을 발음하면, 내 본명과 비슷해서 괜히 흠칫흠칫 한다는 농담을 던졌다.  


"잊고 싶은 기억 아니에요? 안 슬퍼요?"


"아니야. 그 사람은 생각 든다고 해서 기분 나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아. 그냥 '아, 그런 사람을 내가 정말 사랑했었지.'하고 추억할 수 있는 사람... 


... 언젠가 먼 산을 보다가, 비 내리는 창 밖을 보다가, 지는 노을을 보다가도 한 번쯤 슬그머니 생각이 날 거야. 아마 평생 그렇겠지. '그런 사람을 만났었지.'하고 문득문득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묻어날 사람."


H형에게 실례일지도 모를 부분이나, 난 부러웠다. 분명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가장 행복하고 빛났던 시간. 그땐 정말 지구가 반대방향으로 돈다고 해도 모를 만큼 감정에 미쳐 있었다. 진심이었다. 분명 즐거웠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멋지게 빛났던 내가, 지금은 없다는 게 후회스럽고 비참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난 애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안하게도 나에겐- 되새기며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거나 생활에 힘을 얻을 만큼의 좋은 추억이 남아 있질 않다. 



#3. 욕이야 칭찬이야


연애가 끝난지 1년이 되어 간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다. 왜 애인이 없냐고 묻길래, 우스갯소리로 '난 모니터 안에 애인들이 많다', '오타쿠는 외롭지 않다'고 말한 적 있지만...  인간관계 자체가 두렵기 때문에 피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올해 상반기에 잠깐 마음에 두었던 사람은 있었다. 한 번 식사를 했다. 업무 건으로 두 번 정도 얼굴을 본 적 있다. 메신저로 몇 번 소식을 전했다. 나 홀로 좋아했기 때문에 늘 연락은 내가 먼저 했다. 이내 난 그 사람에게 더 다가가기를 스스로 관뒀다. 그리고 혼자서 미워했다. 왜 내 마음을 흔들어서 힘들게 만드느냐고 미워했다. 사는 것도 피곤한데, 왜 그렇게 매력적이어서 날 홀려 힘들게 만드느냐고.(지금 그분은 더 좋은 분을 만나 잘 지내고 있다.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로 미워했다. 

기억이 안 나요. 모르겠어요.

퇴근 후 옷을 갈아입었다. 말끔하게 씻고 편한 복장으로 다시 밖으로 나간다. 먹을거리도 살 겸, 동네를 한 바퀴 휘 돌아본다. 날씨가 꽤 변덕스러워서 짙은 노을 위로 먹구름이 지나간다. 하늘이 무서운 저녁이다. 늘 오르내리는 작은 비탈을 내려가며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환경-여성 비율이 더 높은 회사 환경, 계약직 신분의 나-에서는 힘들겠지만 만약이라도 내가 누굴 좋아하거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건 큰일이다라는 생각. 어린아이만큼이나 서툴고, 이상하리만큼 호감을 피하고, 무심하려 애쓰는 바보 같은 사람. 꼬리를 치는 강아지처럼 애정을 갈구하다가도, 고양이처럼 팔을 할퀴고 도망가버리고, 그러다 슬그머니 맘대로 다가와 등을 기대는 사람. 


그런 게 나라서.





#4. 내가 그렇게 틀렸어?


"내가 사이코패스 같아요,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날 좋아하냐'고 닦달하는 게 우습지 않냐고. 여기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1. 나처럼 하찮고 이상한 사람이 왜 좋은가?

2. 난 호감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왜 당신 맘대로 호감을 주느냐?


"마음을 받아들이고 주는 것이 많이 어렵군요. 그 전엔 어떻게 지냈어요? 혹시 연애 중에 폭력이나 위험한 경험이 있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다 기억이 안 나요. 어떻게 연애했었고 어떻게 사람을 사귀었는지."


작년 여름, 길고 무시무시한 터널을 지나면서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다. 약이 기억의 상실을 가져왔다고 하기보다는, 지나간 것들을 붙들고 있을 힘을 잃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장 오늘이 무슨 요일이고 며칠인지, 가족들의 휴대전화번호가 뭔지 지금은 몇 시인지 그것조차 생각해내기가 버거우니까. (같은 회사로 출근한 지 8개월 째인데, 아직도 버스 노선도를 보지 않으면 번호를 기억할 수 없다.)


아무리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져도, 하루 동안 너덜너덜하게 박살이 나고, 그 속을 뒤져서 그나마 잘한 일이나 성과를 찾느라 바쁘다. 좋은 기억들은 헬륨 풍선처럼, 조금만 손을 놓아도 둥실둥실 날아가버린다. 글이나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고서야 쉽게 기억해낼 수 없는 아득한 공허 속으로 날아가버린다. 슬픈 기억들은 나의 우울함과 반응해 중금속처럼 무겁게 가라앉는다. 

 

"내가 이렇게 좀 살면 안 돼요?"


"네?"


"좀 내 맘대로 좀 살면 안 되나 궁금해요. 내가 그렇게 틀렸어요?"


"우울증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개인이 틀렸거나 망가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개인의 기질도 있지만, 특히 성인이 된 이후의 우울증은 환경과 주변 인간관계의 영향이 커요."


"남에게 보이는 거. 내가 폐만 안 끼치면 되는 건데, 왜 그렇게 신경 써야 하죠? 제가 벌거벗고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잘 웃지 않는 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잔걱정을 많이 하는 게, 잘못이에요?

남에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게 서툴면 안 돼요?

내가 싫으면 감정적으로 교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야만 하는 거죠?
내가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은 되고 나는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내가 놀림받아야 할 만큼 틀린 사람이에요? 

이렇게 사회인 실격이에요?


그녀는 차트에 뭔가를 더 적는다. 키보드 소리가 책상을 가볍게 울린다. 

책상 위의 갑티슈. 그걸로 충분하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적 왼손잡이 #우울은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