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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May 15. 2016

정신적 왼손잡이 #22.탈출구와 도화선

20160418. 탈출구와 도화선


#1. 두 번째 침묵


  가장 괴로웠던 작년. 그때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마구 찾아 헤맸다. 갖은 일로 바쁘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어디야?', '오늘 밥 먹을래?'하면서 친구를 불렀다. 없는 돈에 신용카드까지 꺼내가며 밥을 살 테니 제발 만나 달라고 애걸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 바쁘니까. 특히 청년 빈곤율이 최고치를 달리는 지금은 다 같이 굶는 적자인생이라 버스 한 번 타는 차비도 아쉬운 것이다.

  그렇다고 줄곧 외톨이였던 건 아니다. 대학 동기 P는 내 집에 들러 하루를 보내주었다.(#05. 남자와 여자) 글 속에서 수차례 언급된 약대생 D와 사범대생 J 또한 그랬다. 오랜 고등학교 친구들도 서울에 용건이 있어 상경할 때 늘 나의 집에 머물렀다. 지금도 자주 온다.


표현 수단이 퇴화한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신호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어느 날부턴가 우울의 신호-자살 시도, 만나서 하소연한다던가, 과음하는 일 등등-가 사라진다면 유의하길. 나아졌기보다는 이젠 그럴 기운도 다해버려서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느낀 바로는 - 정말 그쯤 되면 '자살할 기력도 없다.'

지금은 그때와 좀 다르다. 내 고통을 딱히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면에서 표현의 정도가 줄어들었다고나 할까. '당신이 알아서 뭐하게?'같은 삐딱함에, '날 이상하게 여길 거야.'라는 두려움에, '우울증을 핑계 삼아 문책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라는 소심함의 혼합. 아마 내 자기소개서를 읽어본 사람-이전 부서의 팀장님과 사원분들, 지금 팀의 부팀장(반차만 쓰면 병원에 간다고 하니 '실례가 아니라면 물어도 되느냐'고 조심히 묻기에 간단히 대답했다. 지금 팀의 팀장은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다행이다.) 정도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리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분위기의 회사라 해도 이런 부분까지 공공연히 알려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나? 주제넘은 사람 같나? 너무 나대는 것 같나?

그리고

딱히 날 이해해줄 것 같지도 않고, 이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지도 않다.



#2. 어서 말을 해


"그런 생각으로 인내하고 참는 걸 굳이 나쁘다고 할 순 없어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언젠가는 못 견디게 될 거라고 봐요." 


그녀는 누누이 말한다. 나는 모든 감정을 속으로 쌓는 사람이다. 특히 분노나 언짢음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모두 속으로 쌓는데 그런 것들을 잘 털어내지 못한다. 그게 어쩌다 폭발하는데, 그것조차도 늘 내 안에서 폭파를 시켜버린다. 머릿속으로는 수만 가지 욕을 해도, 타인에게 무뚝뚝하게 군다고 해도 그건 폭발의 축에도 못 낀다. 진짜 위험할 만큼의 폭발은 나를 향한다.   

  도화선에 불을 댕기는 건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외부인일 수도 있다. 폭탄은 내 뱃속에 있다. 도화선이 타들어가기 시작하면 어서 폭탄을 떨쳐내버려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운동, 게임, 각종 취미활동이나 인간관계 등을 통해 그걸 해소, 해체한다. 

  난 항상 그 폭탄이 터질 때까지 꼭 끌어안고 있다. 나도 그걸 해체하려 별 짓을 다 해본다. '해체가 되었나?; 싶어서 안심하고 침대에 누우면, 어중간한 새벽이나 술자리에서 폭발해버린다.(무슨 부비트랩도 아니고) 


"어떤 형태로든 확실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게 좋겠습니다. 사회생활, 즉, 일에서요. 중간 관계자를 거치지 말고, 해당 업무의 최고 책임자를 찾아가 물어보세요."


급여 사건 이후 (#18. 인정해줘, 칭찬해줘.) 팀장을 찾아가 물었다. '난 누구냐'라고. 다짜고짜, 참 당돌한 질문이다. 팀장은 그의 확실하고 깔끔한 성격과 답을 줬다.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내가 회사 내에서 꿈꿔왔던 역할은 더 바랄 수 없게 되었다는 건 확실해졌다. 


"아직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 좌절하지는 말라고 하고 싶지만,  어느 정도 본인이 희망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게 심적으로 더 편안하다면 말리진 않을게요."


"......"


"몇 번 더 폭발해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지금 위잉씨 입장에선."


날은 더워지고 있다. 슬슬 소매가 짧아지고 있다.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3. 사소한 탈출구


그런 농담이 있다.

오타쿠는 자살하지 않아. 다음 주에 나오는 애니 봐야 하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만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기보단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서 따라 그리고,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더 많이 그리고. 그렇게 그림으로 가득 채운 연습장이 수십 권이 됐다. 머리가 커져 소년만화와 소설을 읽을 줄 알게 되자 그때부터 더욱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음악도 들었다. 음악이 좋으면 그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를 찾아 다른 앨범도 들었다. 어쩌다 캐릭터송을 들으면 애니메이션을 더빙한 성우도 찾아봤다. 그 성우가 출연한 다른 작품도 봤다.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수록된 게임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걸 알게 됐다. 


조금씩 돈벌이가 커지자, 자취방에 중고 만화책을 사들였다.  한동안 그 만화책의 책 비닐을 바꿔 끼는 게 저녁 일과였다. 중고 책방에 가면 그림을 참고할 만한 책들은 몇 권 집는다.(그러나 한 권을 사면 전권을 사고 싶으니 내려놓고 오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피규어를 모은다. 이젠 피규어 종류와 퀄리티, 도장 재료와 브랜드도 알아가고 있다. 침대 머리맡에 조악하게나마 장식장을 꾸며 나란히 두었다. 좋아하는 만화는 계속 늘어나고, 예쁜 피규어도 매달 출시된다. '매달 한 세트씩 사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4종을 샀는데 각 4~7만 원 정도 썼다. 물론 한 번에 쓴 건 아니지만, 가난한 나에게 꽤 큰 금액인 건 분명하다.


'돈 없으면 굶지 뭐. 어차피 입맛도 없는데 먹어서 뭐해.'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밥을 먹는 일보다, 만화를 보고 게임하고 피규어를 모으는 게 더 즐겁다면 그걸 하는 게 맞으니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을 먹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기로 했다. 

아마 어떤 만화인지 아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무튼 이런 연유로 침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뱃속에서 크게 꼬르륵 소리가 난 것, 태블릿에서 신작 애니메이션이 재생되고 있었던 것, 내가 침대 머리맡에 있는 피규어를 쓰다듬은 것은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 문득 저 농담이 생각났다. 

- 오타쿠는 자살하지 않는다. 다음 주에 나오는 애니 봐야 하니까. 



#4. 그래서, 내가 웃겨?


"위잉님 완전 오타쿠 같아요."


한동안 회사에서 까칠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거다. 무슨 원고를 써서 내도 '너무 오타쿠 같다', 참고자료를 찾아서 주면 '자료도 오타쿠 같다', 트위터를 한다고 하면 '트위터 하는 사람은 다 오타쿠예요?'. 한두 번이면 웃어넘기는데 여러 번이면 좀 골 아프다.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고객사 광고가 있다. 원고는 내가 썼다. 컴퓨터 기기 관련한 내용이었다. 그 제품을 이해할 수 있는 팀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팀장님이 공대 출신이긴 했지만 업무가 급해 내게 맡겼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카메라에 꽂혀서 왼갖 카메라 기종은 다 알아보고 다녔다. 게임 아트워크에 빠져서 PC게임을 하던 시절엔 고사양 게임을 하고 싶어서 컴퓨터 부품을 직접 알아보고 조립한 적이 있다. 조금 싱거웠지만 휴학생 때는 게임 개발 공모전을 해본 적도 있다. 게다가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가 매킨토시라, 두 가지 OS를 써본 사람이기도 하다...


... 즉 모든 건 내가 오타쿠라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반 사람들에게 오타쿠라는 말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지 대충은 안다. 그래서 여간해선 팀에서도 말하지 않으려 했다. 이럴 줄 알았으니까. 그래도 내가 다방면에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줄 것 같아서 은근히 어필한 것이지만. 괜히 말했나 생각이 든다.


"위잉님, 피규어 사셔서 점심 컵라면 먹는 거예요?"


"네."


"역시 오타쿠네요."


"네."


그냥 웃어 넘기기로 한다.


누군가는 비웃을 지 몰라도, 어리석고 비합리적이라고 할지라도 난 이것 덕분에 살고 있다. '오타쿠라서 자살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만큼 때론 필사적이다. '그냥 노는 것 같아도 난 이거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 내 능력과 지식도 다 여기서 시작됐다고. 나에게 의미 있어.'라고 외치고 싶다. 그래서 농담으로 놀려도 기분이 괜스레 크게 상하는가 보다 싶었다. 뭐, 이해해줄 것 같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내용이니 넘기기로 했다. 나 역시도 누군가의 열정적인 포인트(여행이라던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네게 중요하지 않다고 내 중요한 걸 함부로 말하지는 말아줘...) 



#5. 이렇게 살아도 됩니까


만화와 피규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환하게 웃는다. 말하면서 나도 좀 웃었던 것 같다.


"위잉씨가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지금까지는 보통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뭔가를 끄집어내는 것들이었잖아요.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그러다 보면 그것마저도 힘에 부쳐요."


확실히 예전보다는-치료를 시작하기 전 보다 그림이나 글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보고만 있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게 하나쯤은 있는 게 좋아요. 위잉씨는 그걸로부터 얻은 다른 감각으로 또 창작을 하고야 마는 사람이겠지만."


"만약 돈이 없어 피규어를 못 사게 된다면, 어쩌다 PC가 고장 나거나 해서 만화를 못 보게 되면 난 또 불행해지지 않을까요? 이런 소비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동력 삼아 삶을 이어간다는 건."


"위잉씨는 지난 치료 기록에서도 나오지만 당 중독부터 알코올 의존, 흡연 등 중독될 만한 것들이 꽤 많아요. 그래서 단 한 번도 중독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똑바로 걷기' 어려워요."


"......"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도 중독만큼 몰두할 수도 있는 사람이거든요. 만화나 작은 인형에도 심장이 두근거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점이 모이면 선이 된다. 기분이 묘해진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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