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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an 20. 2018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사람들은 사는 게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회에는 경쟁으로부터 시작해서 경쟁으로 끝이 난다. 물질적 수단을 획득하기 위한 욕구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명예를 갖기 위해, 안전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한정된 재화를 지배하기 위해 싸우며 투쟁하고 전쟁한다. 역사는 모든 경쟁으로부터 서술되었고, 다툼으로부터 지속됐으며 투쟁을 통해 발전했다. 때문에 인간의 근원적 성격 자체를 ‘싸우는 인간’이라고 정의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허물어진 성곽을 통해 미래를 배우고, 여전히 시퍼렇게 빛나는 검에서 교훈을 얻고, 그 검들로 또렷하게 나뉘어진 나라 간의 경계를 걸으며 살아간다. 이렇게 비극이 주는 교훈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오늘도 싸운다. 그 싸움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잊어버린다. 우리가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 이 싸움의 끝이 무엇인지. 그저 탐욕과 불만에 눈이 멀어 치열하고도 비열한 피의 싸움을 지속한다. 전쟁의 끝에는 영광스러운 승리자도, 자랑스러운 보상도 없다. 총성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프고 쓰라린 상흔만이 자욱할 뿐.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한 때 이런 삶을 증오했던 적이 있다. '싸우는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부아가 치밀고 끝없는 무기력에 빠졌다. 인간의 모든 역사가 끔찍한 싸움과 적대심을 기반으로 쓰여졌다면, 나의 삶 역시 나도 모르는 새 갖은 혐오와 질투의 싸움으로 얼룩덜룩 물들어 갔을 테니까. 이 부끄러움과 치졸함의 원망은 바깥으로 표출됐다.
 '역사'와 '정치'에 심드렁했던 연유도 그런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나는 정부나 국가의 개념을 부정하는 대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집중하고 질문했다. 물론 이런 고민 역시 늘 변변찮았지만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나를 둘러싼 가시적인 세계는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깨지고 망가져 있었으니까, 부정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옹졸했으니까.


세계는 결코 천국이었던 적이 없다. 
옛날은 더 좋았고 지금은 지옥으로 된 것이 아니다. 
세계는 언제 어느 때에도 
불완전하고 진흙투성이어서
그것을 참고 견디며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랑과 신념을 필요로 했다. 

- 헤르만 헤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헤세의 문장만큼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  축약하는 말은 없으리라.  나는  문장을 읽으며 그런 무기력에서 나를 구원한 힘은 정말 '사랑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계속되는 총성과 자욱한 연기 모든 비극을 참아내고견디고 끝나게 하는 것은 '사랑' 힘이었다소피는 겁쟁이 하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왕궁을 찾아가며하울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위험스러운 전쟁을 막기 위해 자기  몸을 끝없이 희생한다사랑으로 서로를 보살피고 연민으로 걱정하는 하울과 소피그리고  사람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인간은 언제나  연약한 존재다그런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원동력은 오직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지도 모른다일생 곳곳에서 마주하는 소중한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힘을 꿋꿋이 믿고 지키며 더불어 살아가는 . (게다가 사랑은 언제나 무시무시한 마법 혹은 저주를 풀어내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힘이 아니던가.) 

음침하고 어두웠던 하울의 성이 점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움직였던 것처럼무시무시한 전쟁을 그칠 있는 힘이 되었던 것처럼사랑을 통해 내가 사는  곳이 질투와 미움의 총성이 아닌 정겹고 안락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탐욕과 이기심으로 무장한 폭탄이 아닌 인내와 배려로 가득찬 사랑이 흐르는 곳이기를 바란다그곳이 바로 나의 나의 그리고 '우리'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망가진  삶을 세계를 다시금 구원할  있기를 바라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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