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던 모양입니다. 새벽 한시가 가까워져도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가끔 주위에서 커피를 많이 마셔 잠이 안온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꽤 괴롭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잠을 안자면 되는 것 아니야? 그 시간에 책을 보던가 영화를 봐도 되는 거 아닌가?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 고통은 그렇게 간단한 처방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저의 처방대로 책을 폈습니다. 책을 거의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시계는 일부러 보지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제법 시간이 지났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다음 날 아무런 일정도, 할 일도 없었기에 잠이 줄어든 것의 피로를 책임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내일 피곤하다면 내일 낮잠을 자면 될 일. 가볍게 생각하고 부러 책을 다 읽지 않고 남겨둔 채로 유튜브를 켰습니다. 눈이 아파왔습니다. 눈을 감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눈은 감고 귀는 그 영상의 소리를 저장하는 형태로 얼마간 누워있었습니다. 잠이 왔습니다. 커피를 의도치 않게 많이 마셨던, 공연히 디카페인으로 바꾸어주라고, 당이 없는 다른 차 종류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음료를 접할 때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벌은 그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분명 잠을 잤습니다. 처음 잠을 잤다고 인지한 것은 제가 오른쪽을 보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왼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어진 자각처럼, 오른쪽을 보던 저와 왼쪽을 보던 저 사이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중간 기억이 사라져 있었기에, 그러니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야를 옮기며 가운데 천정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수면 중이었겠거니 추측만 할 뿐이었습니다. 체감할 수 있는 잠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약간의 포근함으로 기인되는 만족감과 개운함같은 것, 혹은 바로 다시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노곤한 상태 비슷한 것 말입니다. 저는 방금 내가 잠을 잤었구나, 하는 인지적 작용만 한 채 다시 말똥한 상태로 천정을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연달아 다섯 개의 꿈을 꾸었습니다. 잠에 들 때마다 꿈을 꾸었고 꿈을 꿀 때마다 잠에서 깼습니다. 침대 맡에서 읽은 책의 영향인지 꿈이 날카로웠습니다. 상황 하나하나마다 현실의 저라면 깊숙이 찔렸을만큼 아찔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평소와 달랐습니다. 꿈에서 괴로우면 깨어난 후에 꿈에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쾌락이 안도감의 형태로 찾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던 탓일까요. 꿈은 정말 현실적이었습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만약 과거의 제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면 펼쳐질 수 있었던 미래의 한 조각 같았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엔, 연달아 다섯 개의 꿈이 너무나 현실적인 밤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안도감도 불쾌감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욕망이 짙은 꿈 뒤에는 욕정을, 비겁한 행동이 들춰진 꿈에는 초라함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단편영화를 본 것처럼 관음한 것이 아닙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건 꿈 속의 저라고 거리를 둘 수 없을 만큼 저와 비슷하고 어쩌면 같았습니다. 이런 밤을 보낸 아침에는 그 꿈들을 떠올려봐야 할까요, 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까요. 꿈들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현실의 저는 어따ᅠ갈까요. 잠깐 들여다본 것만으로 불편하고 소스라쳤던 꿈들과 다를 것 하나 없는 나에 대해서. 아니면 제 현실이 과거의 선택의 결과에 언제나 최선으로 작용한 것이라 믿어야 할까요? 그럼 반면교사가 될까요.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순수가 남아 있으면 꿈같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언어에서 수면 중에 꾸는 꿈과 바라는 이상의 형태인 꿈을 같은 소리로 읽는다고 합니다. 그 두 가지의 격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커피가 가져다 준 체험으로 꿈은 현실을 닮아선 안된다, 꿈과 현실이 거리가 멀어야 그 내용을 이야기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