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단편이고 인생은 단편집이야. 그리고 난 네 편이야.
‘애시당초에 글러먹었다’는 표현이 학창시절 달달 외우던 숙어마냥 입에 달라붙는다. 그렇게나 쓰던 ‘자리를 빛내다’ 따위의 곱상한 숙어들은 생각도 않는다.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십시오. 존경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사랑해 마지 않는 여러분. 세상 미사여구 다 쓰지 못하였으나 그 절반쯤이라도 쓰고 싶었고, 또 그 쓰고픈 절반 중 절반 즈음은 쓰지 않았나 싶으나 생각나는 거라고는 ‘애시당초에 글러먹었다’.
별 헤는 밤처럼 햇발은 ‘등줄기를 훅훅 볶고’ 오늘 해야 할 일, 하고 싶었던 일은 또 ‘애시당초에 글러먹었다’.
머지 않아 해는 질 거고 또 다시 뜰 테다. 작열할 거고 개처럼 헥헥대며 혀를 내빼고 인상을 잔뜩 찌푸릴 테다. 죽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죽고 싶을 거다. 오늘은 날이 더워서 못 죽었다던 내게 내일 또한 덥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덜컥 빙하기가 오면 좋겠다. 날이 추워 옥상에 오르지 못하던 1월의 내가 생각난다. 빙하기가 오면 추워서 죽지 못해. 근데 요즈음 나는 더워서 그래. 죽고 싶어도 냉동실에 처박아 둔 무지개색 생일케이크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책을 보았다. 눈물이 났다. 언니는 ‘나도 그래, 죽고 싶어도 계란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했다. 나는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