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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 노튼 Jun 28. 2019

떡볶이 먹을래?

노튼의 두 번째 수기


저는 오늘 처음 본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녀의 집은 정돈이 돼있지 않았습니다.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대용량 종량제 봉투에서 흘러나온 찝찝한 냄새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고 옷가지와 각종 이름 모를 물건들은 제 자리를 빼앗긴 듯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정말 웃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눈을 마주치고 있지만 또렷한 초점이 없고, 미간을 찡그리고 있지만 입꼬리는 귀에 닿을 듯 올라가 있는 기묘한 느낌의 표정도 웃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요. 마치 제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투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갓 20살을 넘긴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에 상당히 능숙했습니다. 보통의 또래 여자애들과 달리 손과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실는지요. 우리는 좁은 매트리스 위에서 혀로 서로의 성감대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녀는 서랍 어딘가에서 콘돔을 꺼내와 저에게 씌워주었고, 첫 번째 사정이 끝나자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콘돔을 꺼내어 씌워줬습니다. 분명 다른 남자들이 쓰고 남은 콘돔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까지 된 마당에 그녀에게 조금 미안한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녀의 집에 간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음식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같이 먹으러 가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자연스레 라기 보간 제가 은근히 유도했다는 쪽이 더 맞겠군요. 하지만 그때는 식당이 이미 모두 문을 닫은 시간이라 집에서 배달을 시켜야만 했습니다. 즉, 우리는 같이 잠자리에 들지 말지에 대해 무언의 합의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호기심이라 한 이유는 제가 그녀의 이목구비나 젖가슴에 매력을 느꼈다기보다, 떡볶이로 이어진 이 돌발스러운 상황에서 그녀를 꼬실 수 있을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젊은이들의 타락에 분노하던 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육체의 욕망에 이끌려 처음 본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은 가장 나쁜 짓 중 하나였지요. 세상은 악하고 더러운 여자가 많으니 꼭 교회 다니는 여자를 만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지만 힘없는 옆머리만 길게 길러서는 탈모에 걸린 지 너무 오래되어 빤질빤질 해져버린 윗머리를 -설교를 하실 때면 조명이 머리에 비치는 모습이 꼭 반반한 청동거울같았습니다- 겨우 넘겨 덮은 목사님께선 두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지 않으셨던가요? 붉은 벽돌로 된 정겨운 교회 건물을 헐어버리고 옆 교회처럼 큰 건물을 세우기 위해 헌금을 많이 내라고 신도들에게 성질을 내시지 않았던가요. 부목사님에겐 15년 동안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게 하셨으면서 자신은 은퇴 후에도 품위유지비로 매달 수백만 원을 달라고 요구하시지 않으셨나요. 목사님에게 한방 먹인 것 같아 오히려 짜릿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팔 베개를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연약함을 과시하는 듯한 기묘한 웃음으로 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촌내가 팍팍 풍기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그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기묘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살던 시골마을은 폐쇄적인 분위기가 강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범죄와 자살 사건의 대부분은 외지인들에 의해서 일어나니까요. 초등학생 아이들도 시내에 있는 모텔 방 중 사람이 안 죽은 방이 없다는 말을 그 의미도 모른 채 떠벌리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원래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그들을 배척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줄 보호막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중학교에서 그녀가 집단 따돌림을 당하지만 않았었더라면요. 왕따의 이유가 대개 그렇듯이, 잘난 척을 한다는 진부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작은 동네일수록, 나쁜 소문은 더욱 쉽고 멀리 퍼집니다. 소문이란 놈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다른 아이들에게 무덤덤한 얼굴로 다가와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던져놓고 떠나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녀처럼 홀로 돌을 맞던가, 다 같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던가. 안타깝게도 그녀와 함께 돌을 맞아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버티기 힘들었던 그녀는 선생님과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를 받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더러운 외지인들이나 일으키는 '사고'를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나고 자란 고향땅에서 외지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녀는 서울로 대학을 왔습니다. 어떻게든 고향을 벗어나려 했던 발버둥이었겠지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외지인이었습니다. 지역 사투리의 특성인지 외지인으로 너무 오래 살아서 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말투는 어눌했습니다. 고향으로부터의 탈출이 목적이었던 대학생활은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도 어설프게 퉁퉁한 손과 타인의 지적에 과민 반응하는 약한 멘털로는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마약에도 손을 댔습니다. 전주에 사는 친구에게서 대마초를 재배하는 외국인을 소개받아 한동안 대마초를 공급받았다고 했습니다. 야릇하게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론 오늘 처음 본 저에게 너무도 많은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지랖을 십분 발휘해 다른 사람에겐 이런 이야기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약물을 한꺼번에 하다가 응급실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이를 그만둘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너무 궁금해서 가봤던 거거든. 너를 만날 수 있어 좋긴 했는데 다시 가고 싶지는 않네. 너는 거기에 왜 갔던 거야?

 혼자 집에 있으면 할 게 없어. 안 좋은 생각만 계속 들고. 너무 심심해.


외로움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그녀는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극히 중립적이고 어중간한 어조였습니다. 말끝마다 히죽거림을 빼먹지 않으며 자신의 무장해제를 각인시키려 애썼습니다.


 그래도 너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친구는 좀 있는 거 같던데?

 사실 친구들이라 해봐야 학교 친구들은 거의 없어. 1학기 다니고 휴학했잖아. 지금 있는 친구들은 거의 '그곳'에서 만난 애들이야. 연락 한지 오래된 애들은 지금도 가끔씩 만나는 거고.

 그럼 거의 남자애들이겠네. 여자도 있어?

 여자애들도 친구처럼 만나보려고는 했는데. 다들 그냥 가더라고. 그런데 있잖아. 남자들은...... 아니야.


그녀는 화제를 돌리려 애썼습니다.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저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겠죠. 하지만 저는 그저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관용의 과시가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자신의 진짜 치부를 드러내는 사람을 찾기란 힘든 일이니까요. 저는 더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그녀가 입을 떼길 기다렸습니다.


 나는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서 만난 거였는데 남자들은 한번 만나고 나면 날 차단해 버리더라고.


저는 이 남자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지도, 그렇다고 같이 욕해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녀와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저 역시도 프라이버시의 문제나 가벼운 시작의 필연성을 핑계로 그들과 똑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사람들은 나에게 인간적인 정도 느끼지 못했던 걸까?


그녀는 허공을 쳐다보고는 나지막이 읊었습니다. 지독히도 중립적이고 담담했던 그녀의 목소리에 균열이 일어나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뭐랄까. 그녀의 고독함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제 몸을 마구 짓눌렀습니다. 빨리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방바닥에 떨어진 알약 봉지를 발견하고는 감기라도 걸렸냐고 물어보며 주의를 돌렸습니다.


 정신과 약이야. 조울증.


흐트러졌던 담담함을 금방 회복한 그녀는 묵직한 직구를 던졌습니다.


 그냥 감정이 움직이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로 쭉 가게 만들어주는 거야. 매일 먹어.

 오늘도 먹었어?

 너 만나기 30분 전에도 먹었는걸.


그녀의 기묘한 웃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상체를 들어 그녀와 누워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랫도리를 홀랑 벗은 채 성기가 옆으로 축 늘어진 사내의 옆에는 그저 곁에 있어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가장 여리고 소중한 것까지도 쉽게 내어주는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는 큰 죄를 저질러버린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결백한 인간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최초의 인간이 그랬듯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몸을 휘감습니다. 구원. 저에겐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저를 구원해줄 수 있습니다. 저는 누워있는 그녀를 아주 깊게, 깊게 껴안았습니다. 그녀의 몸에 베인 고독한 온기를 들이마시자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녀를 안은 채로 그렇게 한참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매로 눈물을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우리 다음번엔 집 말고 카페에서 볼까? 심심할 때 이야기나 하고 놀자. 너랑 있으면 행복해지거든.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처음으로 웃음을 보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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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책은 자주 읽어?

 요즘엔 한 가지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잘 못 읽어. 넌 최근에 뭐 읽었는데?

 <인간실격> 읽어 봤어?

 그거 들어봤지! 다자.. 이..? 뭐였더라.

 다자무 오사이!

 키킥.. 다자무가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잖아.

 그래. 다자이 오사무. 내가 다자무라고 했나? 키킥. 근데 여기 커피 진짜 맛있다 쪼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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