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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꺾이지 않는 버들 Dec 14. 2022

꼬리뼈를 잃고 축구 글을 쓴다

김혼비의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를 읽은 게 화근이었다. 이 책의 책장을 덮자마자 내 두 손은 '귀신에 홀린 듯' 당장 가입할 수 있는 여성 축구클럽을 바쁘게 검색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30대 후반의 직장맘이, 생애를 통틀어 가장 다이내믹하게 한 운동이 핫요가였던 내가, 운동거부자이자 기껏해야 월드컵 때나 축구경기를 보면서 "오프사이드가 도대체 뭐야?"라고 말하던 축알못인 내가, 겁도 없이 축구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2019년 5월. 막 오픈한 풋살클럽인 ㅈㅇㅇ에서 처음 공을 찼던(사실 발로 공을 굴렸다는 표현이 더 적확한) 그날을 떠올려본다. 실내 풋살장에서 코치님과 1대 3 게임을 했던 그날. 공에 발을 대보기는커녕, 쫓아다니기도 힘들었던 그날.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헉헉거리고, 땀은 소나기를 맞은 마냥 뚝뚝 떨어지는데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짜릿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이제야 안 거야!' 축구계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김혼비 작가는 내 삶의 은인이다. 축구는 남자들이나 운동신경이 엄청나게 좋은 여자들만 하는 건 줄만 알았던 내게 김 작가는 '야 너도 찰 수 있어!'라는 용기를 줬다.


그렇다. 내 인생은 공을 차기 전과 공을 찬 후로 나뉜다. 


공을 찬 이후 나는 분명 변화했다. 몸도 마음도. 이 경험을 여러 번 글로 남겨보려고 했으나, 일하랴 집안일하랴, 운동하랴, 하루하루 사는 게 바빠서 짬을 내지 못했다. 그 사이 인생을 흔드는 여러 사건들도 있었다.


지금은 꼬리뼈 부상으로 축구를 쉬고 있다. 초겨울 풋살 중 마지막 공격 타임에서 있는 힘껏 공을 찼는데 인조잔디 바닥의 살얼음을 밟고 뒤로 꽈당 넘어져버렸다. 내 생애 가장 아픈 엉덩방아였다. 엉덩방아 슈팅은 골망을 흔들었지만 천추 3번과 미추 1번, 두 군데가 부러졌다. 영광의 상처가 아닌 영광의 골절.


거의 매일 공을 차다가 강제 휴식에 들어가게 됐다. 꼬리뼈의 균열은 집, 회사, 운동장이던 내 삶에 균열을 일으켰다. 축구 중독자가 축구를 못하게 되니 무료하면서 초조한 금단현상이 왔다. 공을 찰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결심했다. 축구를 하면서 느낀 점을 글로 남겨보자.


공을 처음 찬 그날이나, 부상으로 쉬고 있는 지금이나 내가 축구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재미있어서'. 재미있으면서 뿌듯했고, 재미있지만 분노했으며, 재미있는데 펑펑 울었던 순간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뻥 차는 일에 대해, 뻥 조금 보태서.


유니폼도 나오기 전. 티셔츠 색깔처럼 햇병아리 시절의 드리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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