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발로 하는 스포츠다. 발이 빨라야 유리한 운동인 것이다. 어떤 클럽이든 축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면서, 매 훈련마다 강조하는 것이 스텝이다. 현역 선수들도 빠지지 않고 이 훈련을 한다.
바닥에 사다리나 콘을 놓고 발을 앞으로, 옆으로, 뒤로 번갈아 놓는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게 익숙해지면 조금씩 속도를 올린다. 스텝 훈련을 반복하면 다리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다리 근력도 강해지며 공을 터치하고 나아갈 때의 균형감도 길러진다.
양팔을흔들면서 무릎을 올리는 피치 동작은 앞으로 발을 옮기며 나아가는 움직임으로, 우리가 뛰는 동작과 비슷해서 어렵지 않다. 사다리 옆에 서서 발을 앞으로 넣었다 뒤로 뺐다, 다시 앞으로 옮기며 옆으로 이동하는 스텝도 크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몸은 앞으로, 다리는 옆으로 움직이는 사이드 스텝.
사이드 스텝은 오른발을 사다리 안으로 넣는 동시에 왼발을 사다리 안으로 옮기고, 그와 동시에 오른발을 바깥쪽으로 빼야 한다. 그다음 역으로 왼발을 안으로 넣으면서 오른발을 옮기며 왼발을 바깥으로 뺀다. 이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사이드 스텝이다. 이 스텝을 처음 할 때는 양 발이 서로 꼬이고 '뇌 정지'가 온다. 분명 코치가 보여준 시범을 보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발을 디디면 왼발이 먼저 나가거나 오른발이 안 떨어지면서 대환장 스텝이 된다. 첫 사이드 스텝을 할 때 자괴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 몸은 어찌하여 이리 몸치인가. 내 다리는 왜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건가. 내가 이 스텝을 해낼 수 있을까. 내 몸이 원망스러웠고, 내 몸을 의심했다.
사이드 스텝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러자 몸에 익는 요령을 터득하게 됐다. 사이드 스텝을 할 때는 마음속으로 원, 투, 쓰리를 되뇌어야 한다.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이 세 박자를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이 리듬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양 발이 움직인다. 정말이다. 정말 신기하게 발이 움직인다. 왼발 넣고 오른발 옮기고 다시 왼발 넣고... 식으로 텍스트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곧바로 발이 꼬인다.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무리 현명한 결정이라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삐걱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시간의 흐름에 마음을 맡기고 시간의 리듬대로 한 발씩 내딛을 때 상황은 자연스럽게 원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마음속으로 이 리듬을 떠올린다.
그러니 시간의 리듬을 믿고 발을 내딛자.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를 되뇌다 보면 이 또한 통과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축구 훈련의 시작은 사다리나 콘을 놓고 스텝 훈련을 하는 것이다. 개인 훈련 때 축구 친구들은 이 사다리를 '공포의 사다리'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