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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꺾이지 않는 버들 Dec 25. 2022

죽어도 안 되는 일을 죽자고 하는 일

축구는 어려운 운동이다. 공을 간수하고, 시야를 확보하고, 판단을 빨리 해야 한다. 직접 공을 차보니 몸보다는 머리를 더 많이 쓰는 스포츠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상대팀의 골대를 향하여 공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팀원들이 어디에 서있는지 확인하고, 그 팀원들이 어떻게, 어디로 움직 일지를 예측해야 한다. 그 뒤 패스를 한다. 축구에서는 이를 '패스 길을 읽는다', '패스 길이 열렸다' 등으로 표현한다.


우리 팀 골키퍼에서부터 시작된 공이 최전방 공격수의 발끝에 닿기까지는 무수한 가시밭길을 지나야 한다. 골키퍼-수비수-미드필더-윙-포워드로 연결(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이른바 빌드업 축구)되는 그 험난한 과정을 알기에, 공격수들은 그 어떤 포지션보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는 팀에서 주로 윙포워드를 맡았다. 이건 축구를 하면서 느낀 건데 수비수와 공격수는 타고난 개인의 성향, 기질에 따라 나뉘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 구분하자면, 지는 게 죽도록 싫은 사람은 수비, 무조건 이겨야 하는 사람은 공격 성향에 가깝다. 내 경우에는 무조건 골을 넣어야 내 몫을 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수비에 세워둬도 나도 모르게 공격을 하러 앞으로 돌진했다. 그렇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윙포워드가 되었다.


사실 내가 윙어가 된 배경에는 수비를 하기에는 동작이 느리다는 것도 작용했다. 상대팀 공격수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서 수비수는 악착같아야 하고, 상대 선수를 따라붙는 발이 빨라야 하는데, 나는 그 부분이 약했다. 대신 나는 공격 포인트에서 슈팅을 하기 좋은 위치를 빨리 눈치챘다. 어시스트를 받자마자 슈팅. 나의 장점이자 역할이다. 어렵게 내 발끝까지 굴러온 공을 몸 안에 안전하게 받고, 빠르게 슈팅을 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첫 번째 퍼스트 터치. 내게 날아오는 공을 안정적으로 트래핑하는 것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연습 또 연습했다. 반복 훈련을 통해 퍼스트 터치의 성공률을 높여갔다.

복병은 슈팅이었다. 무언가를 세게 차 본 적이 없는 내 다리는 축구에서 정말이지 무용했다. 힘 없이 날아간 공은 아무리 좋은 위치에서 받아 좋은 타이밍에 차더라도 골키퍼의 손이나 발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슈팅을 잘하고 싶었다. 


혼자 공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와 평일 오전 시간 비어있는 풋살장에서 차고 또 찼다. 개인 레슨을 받으며 자세를 교정받기도 했다. 슈팅 연습 전에는 몰랐다. 슈팅은 차는 발이 아니라 공 옆에 놓는 디딤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디딤발이 먼저 무너지면 공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공을 차는 순간까지 디딤발이 공 옆에 버텨주지 못해서 내 슈팅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 날아간 것이다.


디딤발. 

단어만으로도 막힘과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반대발이라고 칭하면 차는 발 옆에 붙은 발 정도의 형태에만 국한되고, 딛는 발이라고 하면 순간의 동작으로만 의미가 좁혀지는 것 같다. 디딤발이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슈팅이라는 동작, 슈팅의 운명을 좌우하는 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삶을 결정하는 많은 부분이 사실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내면의 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내게 디딤발은 그토록 '고귀'했으며 까다로웠다. 그만큼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죽도록 안 되는 슈팅을 죽자고 연습했다.


이제는 디딤발이 딱 버텨주고 뻥 차게 되었냐고? 그렇게 바로 되면 나는 이미 손날시(손흥민+호날두+메시)이겠다. 여전히 나의 슈팅은 약하다. 디딤발도 종종 무너진다. 하지만 연습하기 전보다는 강해졌다. 디딤발이 무너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공을 차기 전까지 디딤발이 흔들리지 않는 일. 나의 밖에서 일어나는 숱한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일. 그건 결국 나를 딛고, 나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죽도로 안 되는 일을 죽자고 하다 보면, 반드시 온다. '전과는 달라진 나'라는 결과물이.



디딤발은 공 옆에 두 주먹 정도 크기의 간격을 두고 딛어야 한다. 슛슛슛을 외치며 연습 또 연습했던 지난봄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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