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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꺾이지 않는 버들 Dec 18. 2022

넘어질 듯 일어선다.
축구는 리듬이야

앞서 사이드 스텝 중 리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리듬은 사실 스텝 훈련뿐만 아니라, 축구 전반에 걸쳐 중요한 요소이다.


헛다리 왕 이영표, 치달의 왕 손흥민, 축구의 신 메시, 지난 2022 월드컵 때 날강두에서 한반두로 격상한 호날두, 삼바축구 황제 네이마르 등 수많은 축구의 달인들이 가진 가장 공통된 장점이 무엇인 지 아는가. 바로 공을 자기 발에 터치하는 순간부터 골망을 흔들기 직전까지, 혹은 같은 팀 선수에게 어시스트를 하기 직전까지 무수한 수비수들의 방해에도 공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축구를 '구경'만 할 때는 몰랐다. 공을 끝까지 놓지 않고 드리블을 한다는 것이 그저 공을 앞으로 밀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죽일 듯이 달려드는 수비수의 태클, 몸싸움, 온갖 진로 방해 속에서도 공을 내 몸 안에 지키고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디페인팅, 시저스, 비하인드, 접기, 브이자 드리블 등으로 상대 수비수를 속이면서 내달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공격수의 균형 감각인 것이다.




우리 몸은 가만히 서서 몸을 한쪽으로 기울거나 발을 빠르게 옮기는 동작만 해도 쉽게 휘청인다. 이 위대한 선수들은 전력 질주를 하면서 속임수 동작을 하고, 상대 수비수를 제쳐버리며 팀의 공격 포인트를 올린다. 균형감각은 넘어질 것 같아도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다. 아무리 강한 수비수가 밀어붙이더라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공을 소유하는 능력. 균형감각이 좋은 선수가 곧 좋은 선수이다.


마치 오뚝이처럼,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다시 일어선다. 이 균형감각이 축구의 리듬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국대패밀리 감독을 맡았던 조재진도 주옥같은 어록을 남겼다.

"나는 공을 차는 게 아니야. 90분 간 리듬을 타는 거지"라고.


축구는 공을 밀고 달리는 경기가 아니다. 무작정 공을 몰고 달리면 상대 수비수에게 쉽게 저지당한다. 축구는 공을 소유하며 리듬을 타는 운동이다. 어떠한 악조건에도 휘청이지 않고 자신의 균형을 잃지 않는 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적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일. 아 이 얼마나 숭고한 스포츠란 말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내 몸은 타고나길 이런 균형감각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면 어떻게 균형감각을 키울까? 예상했다시피 반복 훈련밖에 답이 없다. 수많은 드리블 훈련과 연습 경기를 통해서 내 몸은 조금씩 리듬을 타게 됐다.  넘어지고 넘어졌다. 그러다 한 발에 힘을 딱 주게 되거나 몸을 바로 역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균형을 잡게 됐다. 좀 많이 '서서히'이긴 하지만. 분명 그렇게 변화했다.


잊지 말아 달라. 나는 38살이 되기 전까진 공과는 친밀도가 1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바뀐다. 아니 바뀌어진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되는 단계'는 사실 멀었다. 중요한 것은 처음보다는 달라졌다는 것. 달라진 모습에 스스로 좀 뿌듯해졌다는 것.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며 쉽게 포기하던 '주눅이'가 내가 가는 길이 내 길이라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축구를 하면서부터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사건들이 나를 강타했을 때 일상을 지켜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축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축구하기 전의 내가 가진 속성이 그러하듯이, 지레 포기하고 멀리 도망쳤을 것이다. 축구를 하였기에, 삶을 송두리째 흔든 사건들을 똑바로 마주 보고, 맞서 싸우고,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스포츠가 아닐 수가 없다. 축구는 그런 운동이다.  



집 앞 개천 다리 밑은 내 전용 연습장이었다. 콘크리트 벽을 향해 볼을 차기도 하고, 콘을 놓고 드리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산책하는 뭇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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