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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꺾이지 않는 버들 Dec 27. 2022

미스터리한 볼마스터리

슛 볼은 누구의 친구? 바로 나의 친구!


축구는 공과 발이, 공과 몸이 친해야만 한다. 공과 친해지는 훈련법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리프팅이다. 리프팅은 주로 발등(무릎, 가슴, 어깨, 이마를 같이 쓰기도 한다)을 이용해 공을 위로 올리는 훈련이다. 클럽마다 리프팅 연습을 강조하는 곳도 있고, 리프팅보다는 드리블이나 스텝 등 다른 훈련을 더 강조하는 곳도 있다. 각 클럽들의 공통점이라면 리프팅만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지는 곳은 잘 없다는 것이다. Why? 리프팅은 혼자서 반복 연습을 통해 터득할 수밖에 없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리프팅 말고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기에 리프팅은 각자가 알아서 연습을 통해 익혀야 한다. 곱셈을 하려면 구구단을 떼야하는데, 구구단은 '집에서 공부해오라'는 식이랄까. 구구단을 외우지 않아도 더하기, 더하기, 더하기를 하다 보면 곱셈 문제의 답은 같은 것과 같이 리프팅을 못해도 축구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이 훈련을 하는 것일까?

 

축구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리프팅을 못해도 축구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 중에 리프팅을 못하는 선수는 없다."

손흥민 선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1년 365일 오직 기본기에만 집중했다. 특히 리프팅을 하며 오른발로 운동장 한 바퀴, 왼발로 한 바퀴, 양발로 한 바퀴를 돌았다고 한다. 그러다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반환점을 코 앞에 뒀더라도 '처음부터 다시'였다고 하니, 월클이 괜히 월클이 아닌 것이다. 그 숨은 땀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어쨌든, 리프팅은 그만큼 공과 몸의 친화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리프팅을 하면서 공에 대한 집념키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구구단을 외우고 나면 곱셈이 훨씬 쉬워지는 것처럼.


축구 초보자에게 리프팅 동작은 쉽지 않다. 나 역시 아직 리프팅은 많아야 5개를 못 넘긴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그지 같기도 하고 요령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리프팅을 해 보겠다고 한 시간 넘게 공과 싸우기를 몇 달을 보내고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다(난 손흥민이 아니잖아,라는 자기합리화와 함께). 리프팅은 내 짝이 아니었다. 리프팅을 체념하고 택한 것이 볼마스터리 훈련이다.




볼마스터리는 공을 바닥에 놓고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여러 가지 발동작으로 터치하는 훈련법이다. 볼마스터리의 동작은 무수히 많다. 공을 그냥 세워두고 양발을 번갈아 올리는 것부터 드래그, 롤링, 팬텀, 비하인드, V자 드리블 등 응용에 응용을 더할 수 있는 것이 볼마스터리 훈련이다. 이 동작들이 연결이 되면 실전 기술이 된다. 


일단, 양발을 번갈아 올리기부터 시작했다. 하낫둘, 하낫둘 세워 둔 공에 폴짝폴짝 발을 올렸다. 다음은 공을 쓰다듬듯 인사이드로 공 바깥쪽을 훑는 드래그 동작, 공을 굴려서 옆으로 이동시키는 롤링, 공을 밀어서 옆으로 옮기는 팬텀, 공을 발 뒤로 보내는 비하인드, 공을 V자(또는 한발 빼기라고 부른다) 모양으로 당기는 동작 등을 반복했다. 매 동작 100회 이상. 리프팅에 거절당했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까, 볼마스터리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 시기 손흥민 전기를 읽고 감동한 터라, '노력만이 답'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채근하며 거의 매일을 연습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내게 볼마스터리는 그런 길이었다. 공을 드리블하는 발이 예전보다 편해졌다고 느꼈을 때 경기 중에 나도 모르게 V자 드리블 동작이 나와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V자 드리블로 상대를 제친지도 모른 채 골대를 향해 공을 몰고 갔고, 나의 첫 V자 드리블 성공을 곁에서 뛰동료들이 보고 알려줬다. 나도 모르게 나왔다는 건, 내 몸에 그 동작이 익었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저 공을 두고 싹, 싸싸삭, 싹, 싸싹 움직이는 연습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역시,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비록 내 땀은 남들의 2배 이상을 쏟아야 응답을 해줬지만.


지루하게 반복했던 볼마스터리는 내게 이런 미스터리한 경험을 하게 해 줬다. 그런데 경기 때 팬텀 동작은 죽어도 안 나온다. 이 또한 언젠가는 응답해 주는 날이 있겠지. 분명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다. 믿습니다!


ㄹ자 볼마스터리 훈련 중입니다.


드래그&팬텀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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