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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 독자의 탄생

by 연꽃 바람

한 권의 책을 썼다. 책을 쓰기 전과 후에 뚜렷한 변화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스스로 분명하게 느끼는 커다란 변화다. 책을 바라보는 나의 손길과 눈길에 전에 없던 다정함이 생겼다.


서가에 옹기종기 꽂힌 책들을 천천히 살핀다. 처음 보는 저자의 이름은 한번 더 다정하게 불러 보게 된다. 책을 살펴볼 때 맨 뒷장에 적힌 서지 정보를 꼼꼼하게 살핀다. 편집, 디자인, 마케팅, 교정에 이르는 모든 이름들을 다정한 눈길로 불러 본다.


표지의 광택도 살펴보고 손으로 쓸어 질감을 느껴본다. 책날개가 있는 책은 날개도 넓게 펼쳐 전체를 살펴본다. 내지가 백색인지 미색인지 살펴보고 글씨가 명조 계열인지 고딕 계열인지 살펴보며 저자와 편집자의 취향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쪽수 표기를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다. 상단, 가장자리, 밑줄, 점, 동그라미, 색깔, 홀수 쪽만 표기, 짝수 쪽만 표기, 크게, 작게, 독특한 폰트 등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듦새를 향해 궁리했을 그들의 다양한 결정이 그려진다.


한 권의 책 안에 책의 활자를 읽기 전에 읽을거리가 이토록 많은지 책을 쓰기 전에는 몰랐다. 보물 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책의 만듦새를 위해 고민하고 결정했던 흔적들을 찾아보며 편집, 디자인, 마케팅, 교정, 저자의 이름으로 이 책의 탄생에 기여했을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참 잘했어요!"


그렇게 한 권의 책과 대화를 하다 보면 책을 고를 때 매의 눈이 아니라 다정한 소의 눈이 된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는 것이다. 한 권의 책과 그 책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진심과 기대와 바람에 '나쁜'이라는 형용사는 가혹하다. 만듦새가 다소 부족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들지 않을 것 같은 책을 발견하면, 그 책을 어루만지고 읽으며 작가와 출판사에게 '다음'이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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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의 앞마당과 뒷마당을 고루 살핀 후 비로소 저자의 소개란을 펼쳐 본다. 나의 경우, 본문보다 더 쓰기 어려운 것이 저자 소개였다. 책에 담고 싶은 것은 '나'의 존재가 아니라 나의 '글'이기에 나를 떠난 '글'이 나로 인해 오해받는 것이 두려워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너무 어려웠다. 나에 대한 정보들을 나열하는 것이 진정한 소개인지, 글에 이미 담겨 있는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 소개인지, 수많은 '나' 가운데 글 쓰는 '나'에 대한 설명만 하면 되는 것인지 마음이 복잡했다.


다른 작가들이 쓴 소개란을 보면 그저 몇 줄로 재치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고, 탄생부터 현재까지 세세하게 모든 정보를 다 담은 소개란도 있었다. 주로 책의 날개에 작가 소개가 들어가는데 어떤 책은 책의 날개가 없어서 작가 소개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책의 맨 뒤의 부록을 살펴본다. 인용을 꼼꼼하게 정리한 작가나 편집자의 책은 왠지 더 믿음이 간다. 글을 읽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친절함이자 자신의 글에 기여한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과 도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과 성실함이 믿음직하다. '저작물'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으로 연결되는 그 순간이 좋은 때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만들기 전에는 지나쳤을 책의 주변부를 충분히 살피는 일은 본문을 읽을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책에 더 깊숙이 첫 발을 담그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금 괜찮은 독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진짜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느끼는 한 명의 독자로 다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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